목회·선교
중앙아시아 / 키르키즈스탄
조영철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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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5/12 [05:3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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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키즈의 수도 비수켁의 선물상점들. 한국의 남대문상가와 같은 곳으로 인심이 좋지만 물건들은 많이 없었다.    
카작스탄 알마티와 키르기즈스탄 비쉬켁의 차이는 경제적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정감의 차이입니다. 키르기즈스탄으로 넘어오자 거리는 좀 더 낡아 보였지만 사람들은 더 정다워 보였습니다. 실제로 국경에서 한 30분 정도 가자 수도 비쉬켁이 나왔습니다.비쉬켁의 거리는 알기 쉽게 가로 세로로 되어있고 전차나 미니버스가 어디든지 다니기 때문에 아주 편하고 쉽게 다닐 수 있습니다.


드디어 오쉬행 택시를 타러 갔습니다. 분명히 어제 1,000 솜에 알고 갔는데도 내가 배낭을 지고 나타나자1,500으로 뛰었습니다. 어치피 15시간 가야하니 버티기로 작정을 하고 아침밥을 먹고 오기로 했습니다. 압둘라가 1,200 솜에 사람들이 이미 다있고 나만 가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떠난 합승택시에는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와 젊은 부부가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한 시간을 여기 저기 다니다가 산을 넘는 검문소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검문소의 바리케이드가 내려져 있고 경찰들이 막고 서서 차량의 통행을 막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넘어야 하는 산꼭대기 즉 우리나라 같으면 한계령 꼭대기가 눈에 덮여서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무려 4-5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니.


이것도 하나님의 배려다 하는 마음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마치 근처에 간이식당이 있어서 들어가 차를 시켰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드디어 바리케이트가 올라갔습니다. 서로 뒤질세라 앞다투어 갑니다. 구비구비 붉은 계곡을 지나갑니다. 그렇게 달리다가 거의 산을 다 내려와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압둘라가 나보고 자꾸 외국 신문기자라고 얘기하랍니다. 무슨 영문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전부 나와 길에 돌을 깔아 바리케이트 삼고 깔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몽고인의 이동주택과 같은 것을 길 한 가운데 설치해 막고 있고, 한 지도자라고 하는 상원의원의 사진을 걸고 양쪽 차량의 통행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차의 보낼 것과 막을 것을 지시하고 있었는데 사뭇 선동적이고 째지는 목소리로 귀가 거슬리게 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정부에 무슨 불만이 있는 모양인데 이렇게 무력으로 실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엇습니다. 그것도 선량한 일반 차량들을 붙잡고….

 
6시간 동안이나 기다려도 답이 없기에 할수 없이 갖고 있던 이라크에서 얻은 신문기자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우리차가 저 뒤에서 앞으로 나와 바리케이트를 넘어갈 즈음에 있었습니다. 나중에 방콕에 와서 인터넷을 보니 바로 그 키르기즈에 무혈 구테타 ‘오렌지 혁명’이 일어나서 대통령이 쫓겨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며칠만 더 있었어도 문제가 될 뻔했습니다. 국경이 막혔을테니…. 착한 국민들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moses5706@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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