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선교
베트남 보고서 ①
조영철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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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1/20 [04:5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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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 사회분위기는 활기 넘쳐
 
▲베트남 하노이에서 학교가 끝난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위한 엄마 아빠들의 오토바이 자전거 부대.  
베트남,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나라입니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맹호부대와 백마부대의 환송식 노래를 부르며 자랐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습니다. ‘베트콩’하면 무조건 나쁜 작고 마르고 죽어도 싼 사람들로 생각되었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난 후 그들이 외국 세력의 침략에 대한 스스로의 방어였음을 알고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직접 와서 보고 싶었던 나라입니다.


빨리 보고자 하는 마음에 급히 밤버스를 탔습니다. 23시간만에 하노이에 도착했습니다. 오는 길의 모습은 풍요로운 시골 농촌의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강을 따라 널리 펼쳐져 있는 농토와 그 가운데서 삿갓 밀집모자를 쓰고 일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초록색 정글모자, 보통은 베트콩 간부의 모자로 알고 있는 모자를 쓰고 일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기대했던 가난한 농촌이나 억압받고 있는 사회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다 행복해 보이고 활기차 보였습니다. 버스가 베트남의 중부로 들어와서 북부로 이동했기 때문에 그곳의 모습들을 볼수 있었는데 거리는 오가는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물결 속에 밝고 힘찬 학생들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은 등교 때와 하교 때 거의가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먼 거리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학생들의 모습은 전통적인 아오자이 모습을 볼 수 없었고 바지와 하얀 와이셔츠 차림이었는데 눈에 띄는 것은 여학생들이나 여자들은 마치 복면 강도처럼 온통 얼굴을 수건으로 감싸고 눈만 내놓고 또 머리에는 커다란 밀집모자나 하얀운동모자를 쓰고 다녔습니다.


2만동(1달러는 15,700동)을 주고 약20분 정도를 달려 배낭객이 많이 모여 싼 숙소가 많은 호안 케이 시내중심 호수가로 갔습니다. 이태원처럼 복잡한 거리에 많은 상점들이 있었습니다. 신발 가게, 국수 음식점, 옷가게, 보석상 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 한가운데 화룡관이라는 한국음식점 간판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거리에 여럿 있는 호텔들을 들르다가 우연히 라오스에서 들은 프린스 호텔이라는 곳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도미토리 2불에 독방이 5불부터 시작되는데 방마다 샤워실과 텔레비전이 있는 괜찮은 곳이었습니다. 짐을 풀고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녁의 호수는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도심의 가장 번화한 곳에 있는 호수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많은 관광객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하노이 사람들의 저녁 나들이는 한가한 호수 주변에 앉아 소박한 정담을 나누는 것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하노이에 살면서 가족들과 같이 나와 손을 잡고 거닐거나 공원의 벤치에 앉아 조용히 정담을 나누는가 하면 그 옆에는 시골에서 배트남의 서울인 하노이 구경을 하러 온 가족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의 눈을 크게 뜨게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호수 주변은 가로등으로 밝습니다. 또한 많은 차량이 다니고 사람들이 산책을 하는그런 공공연하고 개방되어 있는 장소입니다. 그런 공원에는 긴 돌의자들이 여럿있습니다. 그 부분을 젊은 남녀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moses57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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