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거장
(4)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346년-399년)
조대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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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6/30 [06:1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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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욕∙명상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된다”

‘물질∙열정∙생각∙귀신’영성추구법으로 정의
수도사 제도에 큰영향…현대인은 기도할때 적용

 
 
에바그리우스는 기독교 영성신학의 중요한 인물중의 하나이다. 현대 신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영성을 추구하는 신자들은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인물이다. 오리겐의 신학 사상과 사막 교부들의 금욕주의와 영성을 조화시켜서 후세의 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별히 수도사의 삶과 기도에 대한 가르침은 후세의 교회의 수도사 제도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지금의 터키에 위치한 이보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의 대도시인 콘스탄티노플에 가서 세상 권세와 즐거움을 맛보았으나 꿈에 그의 영혼이 위험에 처했다는 경고를 받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금욕주의 삶을 사는 멜라니아라는 장로의 제자가 되었다. 이 당시에는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합법화 한 후라 많은 신자들이 피가 없는 순교 즉 금욕주의의 수도사의 삶을 추구했다. 에바그리우스도 이집트의 니트리아 지방에 가서 사막에서 독거하며 수도사의 삶을 살았다.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데오필루스는 에바그리우스를 주교로 만들려고 하였으나 그는 여자와 주교를 멀리하라는 수도사들의 좌우명을 따라서 주교의 자리를 거절하고 마지막까지 사막에서 수도사의 삶을 살았다. 에바그리우스는 신자는 금욕주의와 명상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상태에 들어간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신자가 그 상태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네 개의 적이 있는데 즉 물질, 열정, 생각, 귀신이라는 것이다. 신자가 세상을 떠나서 사막에 와서 수도사로서 금욕주의의 삶을 사는 것은 먼저 첫 번째 적인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수도사는 열정과 생각을 통하여 수도사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귀신과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당시에 깊은 영성을 추구하는 신자들은 귀신과 싸우기 위하여 세상을 떠나서 사막으로 나갔던 것이다. 왜 귀신과 꼭 사막에서만 싸워야 하였는지에 대하여는 잘 모르겠다. 여하간 에바그리우스는 귀신과 싸우는 수도사의 삶을 실제화 시키고 여기에 대한 훈련 교과서를 펴낸 사람이다. 현대 교회에도 귀신과 싸운다는 신자들이 꽤 있는데 평생 귀신과 싸우면서 살았던 에바그리우스의 책을 보면 배울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먹을 것 다 먹고, 잘 것 다 자고, 상수도 하수도 시설이 잘된 집에 살고, 자동차 타고다니면서 귀신과 싸운다는 현대 신자들을 볼 때 에바그리우스가 뭐라고 말 할지 모르겠다.
 
또한 에바그리우스는 신자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열정을 무열정(apatheia)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여기서 무열정은 감정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이성의 지배를 받아 어떤 한 극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특별히 명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기도는 영혼이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연합하는 것이라고 에바그리우스는 말한다. 그는 잡념에 방해받지 않고 하는 기도는 매우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그는“마음을 굳게 잡고 기도하는데 모든 것을 집중하라. 기도하는 동안 일어나는 생각과 걱정에 신경을 쓰지 말라. 이것들은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고 기도하는 목적을 흐리게 한다. 가서, 당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당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라. 그러면 잡념없이 기도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에바그리우스는 또한 기도할때에 상상하지 말고 생각을 버리라고 말한다.

에바그리우스는 또한 신자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열정적인 생각을  맞아 싸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는 이 열정적인 생각을 여덟 개의 적으로 나누어 가르친다. 이것들은 폭식(식욕), 정욕, 물욕, 슬픔, 노여움(화), 나태(게으름), 허영심, 교만이다. 에바그리우스는 먼저 신자에게 폭식을 하지말고 음식을 최소한으로 섭취하여 영혼을 깨끗이 지키라고 권한다. 그는“신자여, 배가 이끄는 여물통에 들어가지 말라, 그리고 매일 밤을 잠으로 채우지 말라. 그러면 당신은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의 영이 당신에게 오실 것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로 신자들은 이성 관계에 있어서 깨끗해야 하며 특별히 수도사는 여자를 멀리 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하며 특별히 수도사의 삶을 살고자 하는 신자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금욕의 삶을 살아야 한다. 네 번째 대적인 슬픔은 자아 동정이며, 이것은 하나님 안에서 가질 수 있는 기쁨을 앗아 간다. 슬픔은 삶의 초점을 자기 자신에게 둘 때 일어날 수 있다. 노여움은 인간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것도 삶의 초점이 자시 자신에게 있어서 일어난다. 자기 자신을 처 죽이는 금욕의 삶과 명상과 자비를 통하여 이것들을 물리칠 수 있다.

여섯 번째 대적은 나태인데 에바그리우는 이 것이 여덟 대적 중에 가장 강한 대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것을 정오의 귀신이라고 불렀다. 이 나태는 정오를 전후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에바그리우스는 이 정오의 귀신은 한 오전 10시쯤에 찾아 온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기록한다. “이 정오의 귀신은 오전 10시쯤 찾아 와서 수도사를 무력하게 만든다. 이때부터 수도사는 하루가 50시간인 것 처럼 생각하게 된다. 그는 창문 밖을 바라보고, 밖에 나가 누가 나오지 않았나 둘러 본다. 그러다가 그에게 앞에 보이는 매마른 사막과 매일 마다 있는 노동이 지겹게 보인다. 그는 이렇게 사는 것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지 않냐고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 그는 예전의 삶이 생각나고, 집이 생각나고, 가족이 그리워진다. 그러자 그는 자기 방에서 뛰쳐나와 수도사의 삶을 포기하고 집으로 향하게 된다.”
 
일곱 번째 대적은 허영심이다. 허영심은 세상의 명예와 권세를 추구하는 것이다. 에바그리우스에게 주교의 자리가 주어졌을 때 이것을 거절한 것은 그가 허영심과 치열하게 싸웠던 것을 보여준다. 현대 교회에서는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에게 큰 교회 목회 자리가 주어지면 큰 교회로 옮기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는데 에바그리우스가 여기에 대하여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교만은 자시 자신을 사실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교만의 귀신은 고통과 고난을 통하여 처 죽여야 한다. 에바그리우스가 가르친 수도사의 여덟대적은 후세의 신학자들에 의해 정리되어 카톨릭 교회에서 일곱 개의 대죄가 되었다. 이 일곱 개는 교만, 물욕, 정욕, 시기, 폭식, 노여움, 나태이다.
 
에바그리우스는 신자가 깊은 영성을 갖기 위해서는 꼭 거쳐 가야 할 자신 안에 일어나는 생각과의 싸움을 실제화 시켰고 또한 이 것들과 싸워 이길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기도 방법은 마음을 비우는 공허적인 방법으로 너무 치우쳐서 현대 신자들은 그의 기도 방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현대 신자들도 기도할때에 일어나는 잡념과 싸워 이기는 방법은 에바그리우스에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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