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영란 선교사, "선교사들에게 안식터 제공"
휴스턴 소재 '미주 사랑누리 선교회'
크리스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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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3/17 [00:0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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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후 재충전 기회 없어 안타까워 하던 남편 간암으로 사망
김 선교사“오가는 선교사 돕겠다”
선교사들에게 안식터 제공

 

고 김종일 목사(사진 왼쪽)와 김영란 선교사(사진) 부부는 1989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총회 소속으로 태국선교사로 파송받아 10년간 현지에서 현지인들을 복음화 하는 일에 전념했다. 교회를 세우고,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던 김종일 선교사에게 열병이 찾아온 것은 사역 10년째를 맞이하던 해. 좀처럼 낫지 않는 상황을 지켜본 방콕의 의사들은 쉼을 권유했고, 주변분들도 안식년을 제안해 한국을 찾았지만 당시 IMF라는 경제상황에서 선교사로서 교회를 찾아 안식을 누리기에는 적잖은 부담이 되었다.
 
마침 휴스턴한인장로교회(당시:김성남 목사)에서 안식년의 쉼을 얻을 기회를 마련해 주었고, 휴스턴의 여러 지인들의 도움으로 미들랜드교회로 파송을 받아 선교관에서 선교사로 사역을 도울 수 있었다. 안식년 중임에도 김종일 목사는 현지 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역과 여러교회들을 돌며 사역을 계속했고, 1999년에는 금식을 하며 태국 선교사로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간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복귀를 미루면서 김 목사는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그나마 안식년을 얻고도 마땅히 쉬면서 영적인 재충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점을 늘 아쉬워했다.
 
그런 도움이 절실한 선교사들을 위해 구상한 것이 지금의 사랑누리선교센터였다. 그동안 휴스턴에서 교회 사역에 치중한 나머지 안식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김 목사는 총회 선교국에 휴직서를 내고 쉼을 얻으려 했지만, 이미 그 시점에 간암말기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게된다. 온 가족이 독감을 앓고 난 후 김 목사에게 찾아온 감기 증상은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더니 결국 입원 한 달만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된다. 그 때가 2002년 1월이었다.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 앞에 망연해 하던 부인 김영란 선교사는 남편의 장례를 치루고 남은 5000달러를 쥐고 문득 남편의 뜻을 이루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오갈곳 없는 선교사들의 어려움을 걱정하던 고인의 뜻을 기억하던 휴스턴의 한인교회들과 성도들이 힘을 합쳐 고인이 하늘나라로 간지 만 2년만에 오늘의 선교센터를 오픈하게 된 것이다.
 
2,800여 스퀘어피트의 공간에 3개의 숙소와 회의실, 세미나실을 고루 갖춘 선교센터는 이제 남미와 그밖의 여러나라에서 선교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의 안식처이자 영적 재충전을 위한 공간으로 탄생했다. 김영란 선교사는 교육학을 전공하고 태국현지에서도 교회와 유치원을 개설해 지금도 매년 지원 사역을 위해 오가고 있다. 4개의 교회와 유치원을 개척하고 두 곳은 현지인과 미국인 선교사에게 관리를 위임한 상태. 하지만 두 곳은 아직도 직접 사역을 관장해야하는 상황이다. 오는 6월에는 다시 태국에 복귀해서 단기선교팀들을 돌보고 이들의 훈련과정을 마련할 계획이다.
 
태국에 있는 동안 휴스턴의 사랑누리선교센터는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장남에게 관리를 잠시 맡길 생각이다. 전문의료인들이 선교사들의 건강을 점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한 상태이다. 그동안의 선교사로서의 사역을 통해 얻은 귀한 체험이 다른 선교사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귀한 정보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고인의 유업을 이룰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는 김 선교사는 무엇보다 이번 사역을 위해 도움을 준 휴스턴지역교회와 성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전종천 jcc@christiantoda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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