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도움의 질서와 절제
김이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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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28 [01:3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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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슬 선교사(아프리카 말라위 북서진선교회)

캄보디아의 관광 안내문에는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돈이나 사탕을 주지 말라”는 방문객 행동수칙이 있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주는 사탕이나 돈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관광지로 구걸하러 나오게 되고, 결국에는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렇게 구걸하여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이 대물림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들었다. 

 

최빈민국에 속하는 말라위도 별로 다르지 않다. 특히나 우리는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혹은 선교사라는 이유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빈번하다. 

 

한 번은 길에서 경찰이 내 차를 세웠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내가 선교사이고 시골에서 이러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하니 난데없이 본인에게 비어클(vehicle, 자동차나 오토바이 같은 탈 것)을 하나 사달라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어이없는 말을 했다.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결국 그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자기가 돈이 없다, 먹을 것이 없다, 일자리가 없다 등등의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낯선 현지들과의 대화를 기피하는 증상이 생겨버렸다. 

 

시내의 어느 주차장이든지, 심지어 신호대기 하는 도로 위에도 늘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과 노인들, 장애인들까지 데려와 손을 내민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왜 도와야 하나? 어떻게 도와야 하나? 어디까지 도와야 하나? 지금 도와야 하나? 무엇을 도와야 하나? 

 

예전에 단기선교 팀이 방문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유치원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아이들이 평소의 반 정도 밖에 없길래 이상하다 싶었다. 곧 들어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 밖에 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사탕을 받아 들고 기쁜 마음에 교실로 뛰어 들어왔고, 교실에서 수업 중이던 아이들은 그 아이들을 보고 뛰쳐나가 사탕을 받아 들고 다시 들어왔다.  아이들은 사탕을 받아 기뻐했지만 나는 더이상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수업을 할 수 있는 교실 안의 분위기와 질서가 이미 무너졌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지만, 현장에서 사역하는 사람들은 이 질서를 세우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만 한다. 무심코 나눠 준 사탕 하나가 최소 몇 달 간의 공든 탑을 무너뜨린 것이다.

 

말라위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이든 육적인 것이든 무언가를 나누기 위해 이곳까지 온다. 우리도 같은 이유로 여기에 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엇이든지 다 주고 싶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보면 모든 사람에게 다 줄 수도 없고, 그것이 말라위를 지독한 가난에서 구제하는 방법이 아니고, 내가 가진 것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줄 때에도 규칙과 원칙이 있어야 하고, 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단기로 방문하는 분들은 우리가 이곳에서 오랜 시간 경험하며 배운 것들을 미처 배우지 못한채 주고자 하는 열정으로만 가득하다. 그래서 때로는 왜 더 주지 않는지, 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다 도와주지 않는지 우리를 비판하거나 비난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주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선교사니까 무조건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고 싶으면, 돕고 싶으면 그냥 마음대로 해버린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우리가 이 곳에서 배운 것은, 줄 때도 내 마음대로 주면 안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선교사이기 때문에 단순히 생활의 필요를 돕는 차원에서 끝나면 안된다.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한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께 “도와줄까요, 말까요?” 여쭈어야 한다.

 

우리 센터 직원들이나 성도들은 문제가 생기면 먼저 우리를 찾아온다. 도움을 요청한다. 그래서 때로는 돕기도 한다. 그런데 한 두 명이 아니다. 그리고 한 두 번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문제가 생기면 먼저 기도하거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우리를 의지하게 되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를 찾게 된다. 

 

이러한 까닭으로 도와줄 때에도 먼저 하나님께 여쭈어야 한다. 내가 보기에 아무리 선한 일 같아도 하나님께 먼저 여쭈어야 한다. 줄까요 말까요? 도울까요 말까요? 

 

하나님이 도우라고 하시면 그 문제는 액수에 상관없이 돕게 된다. 그래서 몇 천 만원이 드는 교회도 짓게 되고 학교도 짓고 병원도 열게 된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기에 그 돈도 하나님이 공급해주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도우라고 하시는 경우가 아닌데 내 마음대로 내 마음이 앞서 도와주면 문제가 생긴다. 때로는 우리의 재정에 어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내가 내 마음대로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어려움이 생기고,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어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돕는 일에도 질서와 절제가 필요하다. 질서를 따르지 않고 도와주게 되면 나는 좋은 일 한다고 했는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돈 몇 푼, 사탕 하나 쥐어 주는 것을 참지 못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게 된다면 과연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실까? 그것이 정말 좋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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