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족보 이야기
장덕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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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26 [03:2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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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덕영 수필가(미주장신 신대원, 에세이 에디터)    

학창시절 구입한 서적이며 신혼 때 장만한 가재도구 그리고 애지중지 키운 동양 난은 바다 건너올 때 내 곁을 떠난, 내 손이 가고 내 땀이 스민 유형의 영혼들이다.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판국이라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역대기만큼은 갖고 와야 그나마 서운함이 덜하리라 생각했을까. 오랫동안 발길조차 끊은 종가댁 찾아 문안드리고 어렵사리 족보 빌려다 사본 만들어 온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뭔지 모르고 들어온 '인동장씨창승공파35대손'이라는 저 타이틀이 도대체 뭐기에 40년간 한 번도 뒤져본 적 없는 족보를 바다 건너는 그 시점에 찾으려 했는가. 2000년 전 마태의 생각을 그려본다.

 

마태복음 위치는 구약의 끝이면서 신약의 시작이다. 성경에서 40번째에 놓인다. 40은 고난의 숫자다. 이제 고난의 역사를 뒤로하고 새 시대의 메시아를 맞이하여 나아가자는 의미가 담겨있는지도 모른다. 유대인들이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연착륙에 실패하면 성경의 연속성이 어렵게 된다. 이를 고려한 듯 마태는 믿지 않는 그들을 대상으로 강한 유대적 분위기를 풍기며 서두에 두 개의 툴을 사용하여 책을 써 내려간다. 족보와 게마트리아가 그거다.

 

레위 마태는 왕으로 오신 예수를 입증하기 위해 다윗 왕가의 족보를 가져다 쓴다. 이 족보가 곧 마태복음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된다. 역대기에 기록된 아담의 후손 중 아브라함부터 다윗을 거쳐 내려오는 왕가의 혈통을 끌어다 몇십 년 전 십자 형틀에 처형당한 예수를 그 끝에 올려놓는다. 족보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이로써 유대인들의 Tanakh 안에, 그 타나크 내의 역사서 안에, 그 역사서 내의 왕실 족보 끝에 예수님이 있음을 체계적으로 밝혀낸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000년, 다윗부터 바벨론까지 400년, 바벨론부터 그리스도까지 600년간을 각각 14대로 구획하여 짜맞춘다. 각 기간마다 상당 차이가 있음에도 14대씩 인위적 획일적으로 구분한다. 나름 의미 부여를 위해 마태가 유대 전통의 게마트리아를 투입한 게다. 곧 다윗의 게마트리아 14 (달레트4 바브6 달레트4 모음 없는 히브리 이름 석 자 דוד, David)에 착안한 산술 기법이다. 다윗의 숫자 14를 반복하여 다윗을 드러내고 다윗 혈통 끝에 야곱 요셉 그리고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를 끄트머리에 기록한다. 다윗왕을 최대 강점으로 자랑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마태가 활용한 툴이다. *바브 / 와우

 

헬라어 원문에는 다윗이 아브라함 앞에 놓인다. υἱοῦ Δαυεὶδ υἱοῦ Ἀβραάμ (son David son Abraham) 한글번역 성경이 천편일률적으로 연대기 순서인 것은 마태의 의도를 놓친 결과다. 족보가 누구의 이름으로 시작하는가와 다윗을 아브라함보다 먼저 기재한 목적을 안다면 이런 실수는 없겠다. ‘다윗 자손’은 유대인이 자부하는 호칭이기에 마태는 복음서 내내 십여 차례나 인용한다. 그만큼 강조함은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임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는 데 있을 테다.

 

1장 1절에 다윗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시작하더니 17절 마무리에서는 반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순서를 바꾸어 처음과 끝을 다윗으로 장식하여 맞추려는 치밀함을 놓치면 안 된다. 구약의 메시아 사상에 근거함이 철저히 드러난다. 메시아의 씨앗 계보를 이어 메시아가 오신다는 메시아 대망 사상이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대망했으면서 그들 스스로 처형한 자가 메시아였음을 말하려는 의도일까. 이를 부각시키기 위한 가장 정확한 툴이 그들의 족보이기에 마태가 족보 인용을 서두에 내건 이유겠다.

 

사람 숫자에도 포함시키지 않는 당시 유대 문화에서 마태는 다윗 족보에 다섯 명의 여성을 등장시키는 점도 특이하다. 다말, 라합, 룻, 밧세바와 마리아다. 다말은 유다의 자부이며 유다와 근친상간한 유대 여인 아닌가. 라합은 여리고성의 창녀로 이스라엘 정탐꾼을 믿음으로 감추어 준 이방 여인이고 룻은 나오미의 자부로 모합 땅 이방 여인이나 나오미와의 관계를 신앙으로 승화시킨 사람이며 밧세바는 다윗의 부하인 헷족 우리야의 아내로 다윗이 범한 이방 여인이다. 유대인은 순혈을 추구하며 모계사회 (모친이 유대인이면 자식도 유대인)임에도 정작 족보는커녕 인구수에도 제외시킨다. 이런 사회 배경 하에 마태는 관례를 깨고 다섯 명의 여성을, 다말과 마리아 외 이방인인 그들을 족보에 싣는다. 그 의도가 심오하다.

 

부정한 여인들과 이방 여인들을 통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공포한 족보는 여인을 포함한 모든 인류를 위하고 죄인을 위한 선언이요 어찌보면 만민을 위한 인권선언으로 보인다. 메시아의 신적인 측면, 하나님의 아들이나 그리스도나 사람의 아들 같은 호칭과 달리 '다윗의 자손'은 우리 삶에 더 가까운 인간적 측면을 드리운다고 보겠다. 구약을 끊고 신약으로 넘어가야 하는 그 중대한 시기에 혈통적으로 분명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심어주려는 마태의 신학적 의중을 알아야 한다.

 

가문의 역사, 족보를 (원본에는 '세보'라 칭한다) 참 등한시하며 산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30년 넘었으니 경을 쳐도 할 수 없다. 2000년 후, 어느 후손이 내 사본을 동굴 항아리 속에서 찾아내 최초 인동장씨창승공파 희귀 사본이라 주장하며 연구에 매진할까나 싶다. 간만에 넘겨보는 족보에서 신학이 나오고 역대 기록이 나오며 쓸데없는 공상까지 마구 쏟아져 나온다. 

 

PS 

성경에 기록된 족보의 역사는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의 자손'이란 타이틀로 최초 혈통을 기록하다가 장을 바꾸어 아담으로 돌아가 계보를 정리해준다. 이어 6장 노아의 족보부터 11장에서 데라의 족보를 끝으로 누가 누구를 낳는 이야기는 일단락 맺는다. 역대기에 와서야 아담부터 다시 계보를 제대로 족보답게 엮어 무려 아홉 장에 걸쳐 사울 족보까지 내려온다. 

 

역대기와 마태복음은 위로부터, 누가복음은 '요셉의 아들이니' 곧 아래로부터 다윗을 지나 아담을 거쳐 하나님께 올라간다. 누가가 솔로몬을 빼고 그의 형 나단을 통해 다윗으로 올라가도록 엮은 방식이 이채롭다. 나단과 솔로몬은 예루살렘에서 다윗이 낳은 아들 중 셋째와 넷째다 (대상3:5, 눅3:31,마1:6). 마태는 유대인의 자부심 중 다윗과 아브라함을 택해 거기서부터 기록을, 누가는 예수께서 요셉 아들이 분명하니 그 윗대를 찾고찾아 다윗 아브라함 아담을 거쳐 하나님께 이르는 라인을 밝힌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유대왕이 절대 분명함을 신학적으로 공식적으로 족보적으로 밝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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