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엄마 때문이야!
김이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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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20 [02:3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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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슬 선교사(아프리카 말라위 북서진선교회)

지난 2월, COVID-19이 말라위까지 확산되기 전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려고 운전대에 앉았는데 전화기를 안가지고 나왔다. 아뿔싸! 급한데... 그때 넷째가 “학교에 늦으면 엄마 때문이야”라고 한마디 툭 던졌는데 그 말이 어찌나 서운하던지 폭발해버렸다. 부리나케 뛰어가 전화기를 가져와서 차에 앉으며 잔소리를 폭풍처럼 쏟아냈다. 

 

학교에 보내기까지 1시간이 조금 못되는 시간 동안 혼자 얼마나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는지 모른다. 

 

나는 새벽예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먼저 나와,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아이들 넷을 깨워 옷 입혀야 하고, 간식과 물통을 준비해 주어야 하고, 날마다 특별히 챙겨야 할 것들을 다 챙겼는지 네 명 것을 다 점검해주어야 한다. 그러는 사이 아침도 간단히 먹여야 하고 막내가 깨면 저지레를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이미 저지른 일을 수습도 해야 한다. 게다가 내가 직접 데려다 주어야 하면, 나도 옷 갈아입고 면허증이 들어있는 지갑과 전화기까지 챙겨야 한다. 

 

7:10까지 등교해야 하는데 집에서 학교까지 최소한 20분이다. 그런데 아침 길은 좀 위험하니 30분이 걸린다 치면, 나와 아이들은 40분 이내에 이 모든 일들을 완수해야 한다. 

 

매일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전쟁이 따로 없는데 “늦으면 엄마 때문이야”라고 한 마디 들으니 서러웠다. 그래서 “누구 하나 엄마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엄마가 얼마나 바쁘게 움직이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 말이나 하면 그만이야?!” 라며 버럭 성질을 내버렸다. 

 

학교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7살짜리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에 너무 흥분한 것 같았다. 왜 나는 “그래, 엄마 때문이야” 라고 쿨하게 넘겨버리지 못했을까?

 

너 때문이야! 

 

크든 작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한다. ‘내 잘못은 아니니까 괜찮아’ 라는 혼자만의 위로가 필요해서일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으셨을 때, 아담이 처음으로 한 말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였다. 한 마디로 ‘하나님 탓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저 여자를 데려다 주셨잖아요!’

 

하와 역시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창3:12-13)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죄성(罪性)은 늘 이렇게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려고 한다. 나는 결백한데, 나는 잘 했는데, 다른 사람이 문제를 만들었다. 언제나 남편 탓, 아내 탓, 부모 탓, 자녀 탓, 남 탓에 익숙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나 자신이 보호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의 습관일 뿐이다. 

 

“너 때문이야”라는 말이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그리고 “누구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꼭 책임을 물을 누군가를 찾는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라고 하나님 앞에 즉각 죄를 시인했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 탓하지 말고 그냥 나 때문인 걸로 하자. 내 잘못을 즉시 정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자. 그러면 주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요일 1:9)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의 연약함과 잘못을 인정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그 순간, 영적인 판도는 뒤집히게 된다. 전세 역전이다. 

 

남 탓하는 우리의 죄성에 지지 말고 내 탓임을 인정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보자. 그때부터는 성령께서 일하신다. 

 

억울한 것으로 따지자면 예수님만큼 억울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을 생각하며 나의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을 주님께 털어놓고, 그냥 내 탓인 걸로, 나 때문인 걸로 하며 살아야겠다. 곰곰이 따져보면 내 탓이 전혀 없는 일은 거의 없다. 

 

‘난 잘못 없고, 난 잘 했어, 난 괜찮은 사람이야’ 라는 자존심을 내려놓으면 예수님 닮기가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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