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버팀의 덕목
김이슬 선교사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20/10/22 [02:17]  최종편집: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김이슬 선교사(아프리카 말라위 북서진선교회)

1년 간의 안식년을 마치시고 시아버님께서 말라위로 돌아오셨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가지고 오실 선물들을 기다리느라 부푼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자체적으로 방 안에서 자가격리를 하시는 통에 보고싶었던 할아버지를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어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 그 아쉬운 마음을 할아버지가 몸이 부스러질 정도로 힘들게 가져다 주신 한국 음식, 과자, 장난감 등의 선물로 달래고 있다. 먼 여정에 가방 속에서 다 찌그러진 초코파이 하나가 우리 가족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급격히 확산된 COVID-19 사태로 우리 선교센터에 단기 선교팀의 방문이 다 취소되면서 3월 이후로 우리는 거의 고립된 상태였다. 그 결과 그동안 한국에서 선교팀들이 공수해 오던 많은 식자재들이 동이 나기 시작했다. 각종 건어물, 김, 한국과자, 라면, 카레와 짜장가루 등을 최소 몇 달 동안 먹을 수 없었다. 입덧 기간에 가장 먹고 싶었던 것들 중의 하나가 초코파이와 새우깡이었을 정도였다.

 

2년 전 아이들과 함께 한국에 갔을 때, 친정아버지께서 아이들이 과자 한 봉지를 가지고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시고 깜짝 놀라셨다고 했다. 아이들이 각자 과자 한 봉지씩 들고 먹어도 모자른 요즘 세상에, 4명의 형제가 과자 한 봉지를 저렇게 사이좋게 ‘오빠도 먹어봐, 언니도 먹어봐’ 하면서 먹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하셨다. 말라위에서 한국과자란,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이 가져다 주시지 않는 한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기에 한 봉지를 뜯어도 왠만해서는 한 번에 다 먹지 않는다. 아이들도 이미 수년간 몸소 체험한 바이기에 더 달라고 떼쓰지 않는다. 오히려 묻는다. “엄마, 한꺼번에 이렇게 다 먹어도 돼?”

 

사실 말라위에서의 선교는 이런 환경을 견디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곳은 아프리카 동남부의 내륙 국가이고 최빈민국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모든 물자가 비싸기도 하고 부족하기도 하다. 한국 식료품은 커녕 돼지고기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고 소고기는 질기기만 했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어쩔 수 없이 절제해야만 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모든 낯선 환경, 정전과 단수의 불편한 환경, 각종 벌레, 외로움, 고독함, 언어의 문제, 복음을 전해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사람들, 강도와 도둑 같은 안전의 문제, 언제나 외국인을 등쳐먹으려는 수많은 사람들 등 우리에게 익숙한 환경과는 전혀 다른 많은 문제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주님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다는 믿음 하나로 버텨내는 것이 선교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실 그 ‘버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말라위에 온 지 1달여 만에 넷째를 출산했고 그 후로 아이들을 돌보고 밥 해먹는 일 외에 사역적으로는 전혀 하는 일이 없었다. 당시에는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않았기에 집 밖을 나설 일도 거의 없었다. 새벽예배와 저녁예배, 오전 중 아이들과 30분 예배를 드리고 혼자 기도하다가 애들 돌보다가 하루가 지나갔다. 우리 선교센터에 함께 계시는 몇 분의 선교사님들 외에는 만나는 사람도 만날 사람도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목회자 세미나에 오는 현지인 목회자들과는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그분들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많았고 또 영어를 해도 내가 못 알아들었다. 아프리카식 영어가 익숙해지는데 6개월이 걸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지, 하나님은 왜 나를 여기에 보내셨는지 하나님께 묻고 또 물으며 혼자 생각의 싸움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주님께서 우리를 속히 선교지로 보내시기를 무척 사모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선교지에 나와서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 열 두 번도 더 했다. 그러다가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 시간을 통과하며 배운 것이 바로 ‘버티는 것’이었다. 예배자로서, 기도자로서 이곳에서 버티어내자!

 

이런 생각의 싸움에서 ‘주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믿고 또 다시 믿으며 버텼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과 기도 속에 선교지로 파송을 받아 왔는데 1년 만에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돌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버티자, 이겨내자, 말라위에 뿌리를 내리자’ 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버티고 나니, 변함없는 똑같은 상황일지라도 전과 같은 힘든 느낌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나의 상황도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 단기선교팀들을 속속 보내주시기 시작했다. 그 후 몇 년간 한 달에 최소 한 팀, 많을 때는 세 팀까지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이 움직이게 하셨다.

 

비단 선교지에서만 이렇게 버티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한국일지라도, 혹은 더 좋은 어느 곳에 있을지라도, 선교사가 아닐지라도 우리는 각자 처한 환경에서 많은 어려움들을 마주하게 된다. 건강의 문제, 재정의 문제, 관계의 문제, 직장에서의 문제 등 각자의 환경 속에서 오늘 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특별히 세계적인 재난사태를 통과하고 있는 2020년의 우리들에게 이 버팀의 덕목이 더 필요하지는 않을까.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 이 곳으로, 이 상황으로 보내셨다는 믿음이 있다면 오늘을 버텨내자. 하루하루 버텨내는 힘이 쌓이면 그것이 실력이 되고 능력이 된다. 그 힘은 결국 모든 상황을 넉넉히 이기는 힘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버텨보자. 주님이 우리를 인정하실 때까지 버텨보자.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응원하시며 힘주시는 분이 있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우리가 오늘 하루를 버텨내며 승리하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 크리스찬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