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두 사람의 운명
최데보라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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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11 [05:5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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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데보라 선교사(EGF 다민족선교회)

얼마 전,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남가주(Southern California)에 들린 소식은 모든 한인들의 마음을 놀라게 하였고 특별히 나는 충격적인 그 소식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해외에서의 선교활동 후에 한국에 돌아가서 외국인선교를 하는 동안, 몇 번의 사건들을 접한 일이 또 다시 내가 아는 사람에 의해 도무지 예측할 수 없던 장소에서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즉 ‘권력형 성범죄’와 ‘정치인들의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 짓는 잘못된 정치행태’인데 한국에서만 유독이 일어나는 이 두 사건으로 인해 나는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1950년대에 경남 창녕군 장마면 동장가리에 두 남자아이가 년도를 달리해서 각자 다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같은 마을에서 자라며 국민(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녔고 그들 중 나이어린 아이는 열심히 공부한 탓에, 그리고 부모의 뜨거운 학구열 때문인지? 서울로 유학을 가서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를 입학한 모범생이 되었다.

 

그 시골마을에서 서울의 경기고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십리도 넘는 중학교 통학 길에 그 어린 학생은 늘 영어단어장을 들고 다녔다니 과히 착실한 모범생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후에 인권변호사로서 활약하다가 서울 시장의 자리에 8년도 넘게 지위를 유지하였음이 당연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나이가 몇 살 많은 또 다른 남자아이는 그 당시에 별로 공부도 두드러지지 못했고 별 볼일 없는 청소년이었다. 그는 ‘밀양박씨‘ 집성촌인 그 마을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친척이 사는 함안군, 칠원 읍으로 이사를 했고 그 일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두 청소년이 나이차이가 좀 나서 별로 친하지는 않았어도 한 마을에서 자랐고 초, 중학교를 같은 학교에 다녔기에 충분히 아는 사이였을 것이다. 그래도 썩 친한 편이 아닌 이 두 소년이 함께한 시간이 있었단다. 둘 다 불교를 신봉하는 가정에서 자라났고 어느 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그 인근마을의 소문난 점쟁이 앞에 간 두 소년을 그 점쟁이가 장래의 복을 빌어주었다고 한다. 그 후에 한 사람은 서울로 유학길에 오르고 다른 사람은 인근의 다른 군으로 이사를 옮긴 후로 그들이 다시 대면한 일은 없었다고 한다. 단지 마을어른들에 의해, 그리고 가끔 동창회에서 서로의 소식을 간간히 들은 것 이외에는 서로 잊고서 바쁜 삶을 살았으리라.

 

세월은 흘러서 그들은 각기 가정을 이루고 한 사람은 인권변호사, 그리고 서울시장이 되었으며 또 다른 사람은 이사 온 후로 공놀이를 하다 다리를 다쳐 몸을 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친지의 전도로 예수를 믿고 건강을 회복하여서 신학교를 졸업하여 목사가 되었고 먼 나라에 선교사로 갔다는 소문만 그 고향마을에 들리게 되었다.

 

그 선교사가 이슬람선교와 다민족선교를 뒤로하고 고향이 가까운 창원시로 20년 만에 돌아온 이유는 홀로 계시는 어머님을 가까이서 모시려고 귀향하였다는 소문이 친구들에게 들렸다.

 

그런데 그 때에 이미 한국에는 외국인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많이 들어와 있었고 또 다른 선교의 ‘패러다임’을 한국에 펼쳐주신 것은 그 선교사도 몰랐고 한국의 교회들도 몰랐다.

 

자연히 고향친구들과 선, 후배들의 소식도 접하게 되었고 세상출세로써 성공을 가늠하는 상황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된 그 어린 시절의 이웃동생이 크게 성공하였다고 그 선교사는 생각하였다. 진정으로 그 사람이 맡은 소임을 잘 감당하여 앞으로 대선의 가도에서도 탄탄대로가 펼쳐지길 대부분의 그 고향사람들은 소원하였고 또 그 선교사도 마음으로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들려오던 소식은 그 선교사와 대부분의 기독신자들에게 많은 실망감을 주었다.

 

특히 동성애, 퀴어 축제를 몇 번이나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펼쳤기에 그 선교사는 트윗터를 통해 수 없이 그 고향동생인 서울시장에게 권면하였다. 그 행사는 예의를 중시하는 우리 한국의 보편적 가치관에서도 바르지 못한 일이며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많은 해악을 끼치는 죄라고 알렸건만 아무런 대답도 그로부터 듣지 못했다. 그 선교사는 고향동생을 불쌍히 여기며 자주 기도하곤 했는데 다행히 그의 부인이 기독신자라는 말을 듣게 되어 한편으로는 안심했단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사건, 권력형 성범죄에 자살로 이어진 이 번 사건의 주인공이 그 고향 동생일 줄이야! 수 없는 추측과 그로 인한 분노와 비애가 가족과 그 사건의 피해자, 그리고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절망케 하였다. 비가 오던 그 날, 장지에서 울며 외치던 그 마을주민의 “대통령이 되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고 온 동네를 울음바다로 만든 그 통곡이 이역만리, LA에 사는 그 선교사의 귀에도 들려오는 듯해 마음이 괴로웠단다.

 

주예수가 바꾸는 인생의 순간들을 그 박시장도 여러 번 접했을 테지만 세상의 출세와 야욕이 그가 진심으로 구세주를 영접치 못하게 막았을 것이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던 그 마을의 형은 온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려고 오늘도 그의 아내와 함께 기도하며 수고하고 있다. 

 

* 이 글에 나오는 선교사는 현재 LA에서 사역 중인 인죠잉갓펠로쉽(EGF) 대표 최수일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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