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문화로 성경 읽기(45) - 포도원 품꾼과 포도원 주인 그리고 포도원 청지기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누구일까요?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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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8/27 [03:26]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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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으로 덮인 헤브론 산지의 포도원. 고대 이스라엘 시대는 물론 지금도 가장 대표적인 포도원 지역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전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어머니한테서 들은 옛날이야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많은 경우, 현실과 다른 결말을 담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아주 강렬한 갈망을 이야기로 담은 경우가 그것인 듯합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 이야기는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빗댄 것으로 봐야 합니다. 역설적이죠. 반어법이 풍성하게 담긴 이야기이며, ‘판타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담긴 이야기도 역설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실과 다른 이야기,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포도원 품꾼의 비유로도 알려진 포도원이 배경이 된 이야기입니다. 2천 년 전 로마 제국의 식민지, 그 땅에 자리한 포도원으로 공간 이동을 하고, 시간 여행을 떠나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나의 배역을 정하고 이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보지 못한 것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 눈으로 덮인 헤브론 포도원의 포도나무 가지. 봄이 되면 가지 치기를 시작한다. 

 

성경 속으로

 

오늘 함께 읽는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마태복음 20:1) 아주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설교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포도원 주인’, ‘집 주인’입니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보다 포도원 품꾼의 이야기로 주고받습니다. 왜 포도원 품꾼의 비유로 더 알려져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2천 년 전, 포도원은 어떤 존재감이었을까요? 포도원 주인은 누구였을까요? ?포도원의 소유주는 누구였는가, 이것은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합니다. 로마 식민지 이스라엘에 있었던 포도원은, 식민지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국책 사업의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의 포도주 내수 증대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따라 식민지에서 포도원을 계속 늘려나갔습니다. 왜, 였나요? 로마 시민들 포도주 수요를 채워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포도원에서 생산된 포도주는 내수용이 아니라 제국으로 보내질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임금으로 운영되는 전 세계의 일차 산업1차 산업 현장이 그것입니다. 커피 원두 재배 농장 같은 것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커피 원두 생산자가 커피를 즐기지 못하듯이, 포도 재배 농부들도 그것을 누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포도원의 존재는 이와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 포도 나무에 가지가 뻗고, 잎은 무성해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기 시작한다.

 

또한 현실 속의 포도원 주인은, 로마인이거나 로마에 충성하던 이스라엘인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일용직 노동자에 대해 어떤 배려를 할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로마인이 직접 포도원을 소유했지만. 점차 비 로마인에게도 포도원 권리를 넘겨주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식민지에서 권력자, 권세가, 유지였습니다. 그가 로마인이든, 로마에서 인정받은 이스라엘 백성이든 간에. 일제 치하의 주요 기간 산업 소유자, 운영자 같은 존재 말입니다.

 

포도원 재배의 중심지에는 당연히 유대 산지의 헤브론 지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들어진 시기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지금 이스라엘에서 발견한 고대 포도원에 자리했던 포도즙 틀은, 고대 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지방과 헤브론 등 유대 산지, 갈멜산 지역, 골란고원 등에 흩어져 있습니다. 전통적인 포도원이 있었던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포도원을 새로 만들고 직접 관리했을 개연성이 큽니다.

 

배경을 짚어보는 것이 조금 길었습니다. 포도원의 존재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포도원 주인, 포도원 청지기, 포도원 품꾼들을 떠올려봅니다. 품꾼, 날품을 팔려고 해도 일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인력 시장은 노는 인력이 넘쳐납니다. 이 이야기 속에 보면,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노동을 하는데, 아침 6시, 9시, 12시, 오후 3시, 5시에도 날품을 팔지 못하고 있던 이들이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날품을 팔 수 있다는 것 자체도 큰 복이었을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의 품삯이라는 것, 그것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푼돈이라도 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했을 듯합니다.

 

직접 인력 시장에 가서 품꾼을 모으는 포도원 주인의 존재도 현실에서는 없는 존재입니다. 비현실적인 장면은 또 있습니다. 한 시간을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는 포도원 주인의 존재는 더더욱 비현실적이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고 불평하는 품꾼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조차도 아주 후하게 받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터로 부르면서 품삯을 미리 약속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조건을 갖고 포도원에서 일하던 이들, 이들 모두는 한 데나리온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 포도나무 가지에 포도가 영글고 있다. 여름철 포도원 풍경이다.

 

다시 생각하기

 

이렇게 비현실적인 이야기 속의 포도원 주인의 됨됨이가 천국을 그려준다고 말합니다.  그들 모두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필요를 따라 대우하는 포도원 주인을 만나는, 그 황당한 이야기처럼, 천국은 황당하게 다가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율법에 정통하고, 예루살렘 성전 제사에 충실하며, 십일조를 제때 바치고 사는 이들이나 갈 것만 같은 그 나라에, 하루 벌어 하루 살 수도 없었던 무지렁이 백성도 천국에서 차별받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꿈꾸는 천국의 모습, 우리가 일상에서 보여주는 천국의 됨됨이는 어떤가요? 혹여라도 차별을 당연시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차별을 당연하다며, 정당화하는 시대를 살면서, 이 이야기 속의 포도원 주인과 같은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는 것일까요?

 

▲ 날품을 파는 노동자들이 인력 시장에서, 한낮에도 일자리를 기다리고 있다. 예수 시대에도 일자리는 없고 인력을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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