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피터팬의 자화상
장덕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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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7/02 [00:02]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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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덕영 수필가

사람들에게 동안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내 나이를 말하기라도 하면 태반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같은 연배의 사람을 보고 ‘나보다 연상이겠지’ 속으로 생각하는데 그럴 때마다 여지없이 반대인 경우가 많다. 내가 동년배보다 생각이 어리다는 느낌이다. 신체검사에서도 신체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적게 나오니 동년배보다 생물학적으로 천천히 늙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거울 앞에서 전신을 잘게잘게 뜯어본다. 눈가에 주름은 있으나 카프카와 링컨마냥 움푹 파인 눈은 아니다.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나 친구들 중에선 없는 편이고 턱밑에 나잇살도 없다. 어디 턱밑뿐이겠는가. 배 둘레는 물론 몸 어디에도 군살 한 점 붙어있지 않다.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되려는지 모르겠다. 내 나이엔 너그러운 인상을 위해 배가 살포시 나와야 점잔 떠는 아저씨로 보이는 법이고 연륜과 경제 수준에 걸맞는 몸매임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렵하다. 감성마저 청년 때처럼 여전하여 아무래도 내가 어른 되기는 쉽지 않을 테다. 청년에 머무는 삶, 나쁘지 않다고 본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110:3)

 

이스라엘은 물이 귀한 나라요 비도 자주 오지 않기에 새벽 이슬을 귀하게 여겼으리라. 새벽 이슬은 맑고 신선하다. 파릇한 생기와 생명에 없어서는 안 될 수분이다. 예수께서 40일간 머문 광야는 이슬이 얼마쯤 있는 곳이요 그나마 없으면 사막이다. 다윗이 주의 백성을 노래한 이 시편 한 구절에서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은 광야의 삶을 견뎌내는 생명력의 사람들, 생물학적 나이를 잊은 채 하나님의 소명을 이어가는 자들로 해석하고 싶다. 그들은 영적으로 영롱한 교회 성도들 내면이요 육적으로 강건한 주의 백성들 외양이다. 하여 부르시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게끔 몸과 맘이 강하고 가벼워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한 백성이요 주의 백성이기에 거룩한 옷을 입는다.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뚯도 성립한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을 (롬13:14) 뿐이다. 거룩한 옷으로 외양을 갖추고 즐거운 맘으로 내면을 채워 Coram Deo 곧 하나님 앞에 헌신하니 다윗이 그러한 주의 백성들을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같다고 한 게 아니겠는가.

 

내 의상은 귀가 후 전혀 다른 스타일로 변한다. 모든 이들이 다 그러하나 나는 노동 차림이어서 더욱 변신을 실감한다. 옷을 갈아 입으면 하루 삶을 다시 시작하는 느낌마저 얻는다. 세계적 판타지 소설 < 나니아 연대기 > 저자이기도 한 C. S. Lewis가 그리스도인의 변화(1)에 대해 우선 가장해 보라고 말한 그거다. 가장하고 그런 척하면 그리 되는 법이다. 의복 치료 suit therapy 라는 말도 있다. 어떤 옷을 입는냐에 따라 행동거지가 달라지고 육신 너머 영혼의 치료까지 가능하다는 말일 테다. 고급진 옷도 아니요 거룩한 옷임에랴 무슨 설명과 수식이 필요하겠는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옷부터 입고 나서 행할 일이다.

 

몸이 잽싸고 가벼우며 생각이 바르고 정의로우면 삶도 건강하다. 날개 달린 모자 페타소스(2)를 쓰고 하늘을 떠다니던 피터팬은 열두 살에 나이가 멈춘 청소년으로 살아간다. 어쩌면 이리도 나와 같은가. 피터팬이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항상 좋은 생각을 하면 나처럼 날 수 있어 !"

 

이 말은 늙지 않기 위해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말로도 들린다. 좋은 생각을 하면 영혼이 흐려지지 않고 신체도 시들지 않는다. 세상을 다 얻은 듯 마음이 넉넉해지고 하늘을 날듯 육신이 가벼워지는데, 어른들은 좋은 생각보다는 그저 많은 것을 소유할 방법에 한평생 몰두한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기는 부자가 천국에 들기보다 쉬우며 (마19:24 막10:25 눅18:25) 사용하지 못할 재산은 짐만 될 뿐인데도 죽어라고 벌어 쌓아두기만 한다(3). 여행 다닐 시간이 없다며 돈자랑이나 늘어놓고 운동할 시간이 없다며 튀어나온 배를 거들먹거린다. 어른들의 일반적 자화상이다.

 

욕심을 버리면 몸이 가벼워지고 좋은 생각을 하면 마음이 젊어지는가. 새벽 이슬처럼 맑고 아이들처럼 순수하며 모든 이의 친구가 되어 인생을 살 수는 없는가. 다 그만두고 어른 안 되어도 좋으니 평생 좋은 생각만 하며 삶을 가볍게 유지하고 싶다.

 

네버랜드.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나라로 가서 놀자며 피터팬이 내 서재 창가로 날아든다.

 

●  (1) 그의 저서 < 순전한 기독교 > 중에서 (2) 페타소스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신속 전달을 위해 착용한 모자 (3)괴테 < 파우스트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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