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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인해 소원해진 관계 복원
교회출석 못하면서 소원해진 관계회복은 이렇게…
황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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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6/14 [04:5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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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고충 알아주고 용기주는 목회자 행동 필요

 

▲ 내가 생각하는 것이 상대방과 같다는 가정에서 오해와 스트레스가 온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A 집사는 며칠 전 초인종 소리에 놀라 문을 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찾아올 이도 없을 텐데 누군가 싶었다. 문을 열자 체리와 딸기 등 제철 과일 상자와 함께 작은 손편지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손 인사를 건넨 이는 다름 아닌 A 집사가 출석하는 교회 담임 목사였다. 코로나 19로 인해 한동안 직접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목사님. 두 달 가까이 교회 출석도 하지 못하니 점점 거리가 느껴지고 온라인 예배 참석에 대한 열의도 처음만 못하게 변했지만, A 집사는 목사님의 손편지와 과일을 보고선 마음 한편에 따뜻함과 왠지 모를 미안함도 밀려왔다. 그리고 조금 서먹서먹해진 관계를 다시 이어가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고 한다.

 

요즘 주변을 돌아보면 코로나19로 인해 자택 대피를 하면서 교회를 더 그리워하는 경우도 있지만, 점점 멀어지는 가정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물리적으로 교회를 나가지 못하는 기간 동안 서로 말 못할 쌓인 감정의 골들은 목회자와 성도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결국 교회에 다시 나가기가 조금 껄끄러운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교회 출석이라는 끈이 잠시 떨어진 동안 목회자와 성도 사이 감정의 틈과 금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원인 찾기다. 일본의 유명 심리상담사인 고코야로 진노스케가 쓴 <나한테 왜 이래요?>라는 책은 “타인도 나와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생각과 행동, 말투가 결국 “당연히 상대방은 나의 마음을 알아줘야 해”라는 가정을 낳으면서 오해와 스트레스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목회자와 성도 사이의 관계를 논할 때 우리는 <히브리서> 말씀을 살펴보곤 한다. 여기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 대한 순종과 그 따름이 낳을 유익에 대해 전하고 있다. 목회자에 대한 순종과 그에 따른 목회자의 옳은 행동이 낳을 성도의 행복. 말씀대로라면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는 소원해질 틈이 생길 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때론 성도의 순종이라는 것이 그릇된 방향으로 변질하고 그에 따라 목회자의 사역 결과도 성도의 행복으로 귀결되지 않을 때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는 오해가 생기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결국 “나한테 왜 이럴까?”라는 의문의 싹을 심게 만들 수 있다. 이 질문은 목회자와 성도의 시각에서 볼 때 각각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코로나 19로 교회를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로 간 소통의 끈이 끊어진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 앞에 더 나와야’라는 목회자의 생각에 성도의 생각도 같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우게 되고 그것이 따라지지 않을 때 목회자는 순종하는 성도와 그렇지 않은 성도로 편 가르기를 할 수 있다.

 

반대로 성도 역시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알고 있을까?’라는 마음, 그리고 ‘당연히 목회자라면 이런 마음을 알아줘야 해’라는 일종의 기대와 가정 또한 결국은 오해를 낳게 된다. 

 

심리 상담가들은 관계에서 서로 겹치지 못하는 생각과 가정은 결국 ‘상대방이 서로의 시각으로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목회자가 성도의 자리에서 생각해보거나, 성도가 목회자의 시각에서 헤아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볼 기회가 얼마나 될까? 특히나 한인교회의 특징 중 하나인 다소 수직적인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 속에서는 서로의 입장 또는 역할 바꾸기를 통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각을 길러 보기는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코로나 19 이후 미주 한인교회는 어떻게든 갈라지고 소원해진 관계를 복원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야 할지 모른다. 교회를 떠나 있는 동안 쌓인 오해와 풀리지 않은 앙금은 교회가 다시 문을 열었을 때 성도가 출석하기를 원치 않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 관계 회복을 위해서 서로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본지가 이달 조사한 특별 설문조사에서도 당장 교회 문이 열어도 출석을 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절대 적지 않았다.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우려도 있겠지만, 이참에 껄끄러운 관계를 정리할 기회로 여기는 경우도 있을 줄로 안다. 그리고 이것은 꼭 목회자와 성도 간 문제가 아닌 성도와 성도 사이의 그어진 금일 수도 있다.

 

<관계행복>의 저자 조현삼 목사(서울광염교회)는 ‘관계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관계 회복을 위한 방법 중 첫째로 ‘연약한 것은 도와줄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필요는 채워주고, 허물은 덮어주고, 좋은 것은 말해주고 등의 방법을 말한다. 이를 통해 교회 내 구성원 간 관계는 싫다고 떠남이 아닌 안에서 해결해 사이좋게 다툼을 멀리하고 지내야 함을 강조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목회자뿐만 아니라 성도의 생활도 힘들고 고단하다. 이럴 때 성도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목회자의 허물은 덮고 성도간 서로의 좋은 것을 말해주는 분위기와 행동이 필요하다. 목회자라면 힘든 시기를 보내는 성도의 어려움을 알고 그들에게 용기가 되는 행동과 말씀을 전해주는 일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앞서 소개한 문 앞에 놓고 간 과일박스와 손편지는 소원해진 성도와 소통의 끈을 다시 이어 맬 수 있는 매개체로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 

 

성도 역시 교회를 지키고 예배를 이어 나가려는 목회자의 신념을 이해하고 힘든 시기에 무엇을 붙잡고 기대야 할지에 대한 신앙인으로서 가치를 생각하자. 사정상 예배 참석이 힘든 경우는 목회자와의 전화 또는 화상 메신저 등을 통한 안부 물음과 격려와 응원이 지금 시대에 필요한 순종일지 모른다. 그것을 통해 목회자가 사역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 나갈 때 곧 성도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필요가 있다.

 

관계란 맺기도 쉽지 않지만, 한번 깨진 것을 잇기란 더욱더 힘들다고 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목회자가 성도에게 바라는 것, 그리고 성도가 목회자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줄로 안다. 서로의 시각에서 보지 못하면 코로나 19 이후 교회 구성원들의 관계는 오해와 스트레스로 인한 반목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자택 대피 행정 명령이 완화되면서 주마다 예배를 다시 드릴 수 있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본다. 교회의 울타리 밖에서 서성대는 양들이 있다면 다시 울타리 안으로 올 수 있게 만들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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