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
문화로 성경읽기(40) - 디베랴와 예루살렘의 아침
빼앗긴 봄에, 봄을 기억합니다.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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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3/28 [05:3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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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리 호수에, 건너편 골란 고원 위로 떠오른 아침빛이 번져간다. 


‘교과서적’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합니다. 좋은 뜻도 있고, 답답한 마음을 담을 때도 사용합니다. 좋은 뜻이야 모범적인 것, 정답 같은 뜻이 그렇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을 모르는, 판에 박힌 어떤 것을 드러낼 때도 사용합니다. ‘책으로 배운 현실’ 같은 것 말입니다. 우리의 성경 읽기도 때때로 너무 교과서적으로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단어 풀이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의 봄은 어떤 느낌과 그림 언어로 채워져 있는지요? 사는 곳, 이제까지 살아 온 삶의 자리에 따라, 지금 살고 있는 형편에 따라 다양할 것입니다. 성경에 무대에서 그때 그곳에서 살던 이들의 봄은 어떤 풍경,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봄은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차올랐을까요? 늘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 시대 고대 유대인과 이스라엘인들은 로마의 지배하에서 오늘날 우리의 달력과 같은 1월 1일을 새해로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의 전통은 가을의 한 날, 일반적으로 9월과 10월 사이의 하루를 새해로 맞이했습니다. 가을, 겨울, 봄, 여름 이렇게 사계절이 한 해의 흐름이었습니다.

 

성경 속으로

 

▲ 디베랴 가까운 뒷산으로 하루가 저물고 있다. 노을빛이 호수위에 가득하다. 

 

갈릴리 호수의 다른 이름은? “갈릴리 호수의 다른 이름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많은 이들은 곧장 답합니다. ‘디베랴 바다’, ‘게네사렛 호수’, ‘긴네롯 바다’ 등이라고요. 그런데 게네사렛 호수는 게네사렛 앞 갈릴리 호수를, 디베랴 바다는 디베랴 앞 갈릴리 호수를 지칭하는 것일 뿐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수많은 선착장이 있었습니다. 예수 시대 기준으로, 최소한 15개 이상의 선착장이 존재했습니다. 고깃배가 아니라면, 여객선이나 화물선의 경우라면, 그 노선(뱃길)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물결과 바람 등에 따라 형성된 길이었습니다. 

 

사전에 담긴 뜻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의미로 특정 단어, 장소, 사람, 사건이 있습니다. 말하는 이, 듣는 이, 글쓴이, 읽는 이 사이에 자리한 공통의 경험이 안겨주는 아주 섬세한 의미, 공감이 담겨있을 때가 많습니다.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면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이 두 책의 이야기에서 디베랴와 엠마오는 어떤 그림 언어로 사용된 것일까요? 사도 시대에 이 두 도시는 교회 공동체에 어떤 존재감으로 다가와 있던 것일까요?

 

요한복음은 갈릴리 지방의 작은 로마이기도 했던 디베료(가이사 티베리우스) 황제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던 티베리아스 성 앞 호숫가에서 열린 결론을 맺습니다. 이 이야기는 날이 새어가는(요 21:4) 시각, 먼동이 트는 시간부터 대낮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루가 밝아오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가 전개됩니다. 로마를 닮은 작은 도시 디베랴 성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호수 건너편 골란고원에서 밝아오는 먼동과 햇살 덕분에 다 사라집니다. 호수는 붉은빛으로 번져갑니다. 온 세상이 잠시 붉은 물결 그 자체입니다. 

 

▲ 욥바 앞 지중해 바다가 노을빛에 물들고 있다.

 

예수께서 떡을 구워놓고, 생선도 구워놓았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 등이 막 잡은 생선도 더 구운 것만 같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떡과 생선을 함께 먹었습니다. (요 21:9, 10, 13) 식사 후에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가 이어집니다.“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후일담에 따르면 베드로는 로마까지 들어갔다고 합니다. 점점 날이 밝았고, 해는 중천에 떠올랐습니다. 하루가 밝아오는 가운데, 베드로의 새로운 삶이 밝아오는 것만 같습니다.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베드로의 삶과 죽음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한편 누가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욥바를 잇던, 로마가 닦은 길을 따라 이어지던 대표적인 도시 엠마오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엠마오에서 예루살렘에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간 이 두 제자의 시선을 따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시 의기투합하는 전환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엠마오 이야기는 대낮에 예루살렘을 떠나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10~12킬로미터, 눅 24:13), 걸이서 2, 3시간 떨어져 있던 엠마오로 가면서 이어집니다, 엠마오에 도착할 무렵이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다(눅 24:29)는 표현에서 예루살렘을 출발한 것이 오후였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문득 동쪽 예루살렘에서 고도 차이가 4, 500미터는 족히 되는 서쪽 엠마오 지역으로 이동하는 두 제자를 떠올려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저멀리 지는 해를 바라보고 가던 두 제자를 연상할 수 있는지요? 그리고 날이 저물고 밤이 되어버린 그 깊은 밤에, 예수님과 두 제자가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문득 예수님이 사라지고, 두 제자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이제 서쪽에서 해뜨는 동쪽으로, 예루살렘 산지로 올라가는 두 제자, 멀리서부터 먼동이 터오고 있는 장면을 연상할 수 있는지요? 새로운 아침, 새로운 하루, 새로운 날이 밝아오는 것을 이 이야기를 듣던 이들은 넉넉히 느꼈을 것입니다.

 

다시 생각하기

 

▲ 모압 산지로 먼동이 트고 아침 햇살이 밝아온다. 

 

누가복음이나 요한복음 둘 다, 새로운 시작, 어둠이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이야기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시간이 지나고 날이 밝았고, 새날이 익어가고 있음을 그려내는 것만 같습니다. 새로운 날, 새로운 계절, 새로운 시작... 우리에게는 새해 못지 않게‘봄’이 그런 존재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그런데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던 백성들에게 수확의 계절이었던 유월절이나 무교절(유월절)과 맥추절(칠칠절) 그리고 수장절(장막절)은 수탈과 착취, 상대적 박탈감에 더 빠지는 계절이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유월절은 더더욱 로마로부터 독립에 대한 갈망이 커지곤 했을 듯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이제와는 전혀 다른 일상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2020년 봄과 이전의 봄이 너무 다른 듯합니다. 빼앗긴 봄, 아니 전혀 새로운 일상과 봄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 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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