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선교
선교현장의목소리 ㉚ 키르기즈스탄 김학중 선교사
“키르기즈스탄을 사랑한 선교사로 남고파”
피터 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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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31 [06:3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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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사역 대부분은 극빈아동 돌보며 소수 정예 기독청년 양육

 

▲ 김학중(파벨) 선교사는 안양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선교사를 거쳐 예장 백석대신 총회 파송으로 키르기즈스탄 선교사로서 21년차를 맞고 있다. 가족으로는 아내 전하리 선교사와 딸 나래가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키르기즈스탄은 이슬람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전 국민의 약 70퍼센트 가까이가 이슬람을 믿는 나라다. 키르기즈 민족의 정치가들은 이슬람 지도자들과 다수의 무슬림 국민을 무시할 수 없고, 거의 모든 정책을 이슬람 우선정책으로 이끌어 간다.

 

따라서 기독교가 발붙일 공간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 기독교 교회를 개척하려면 정부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200명 이상의 동의서를 받아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슬람 문화권인 이 곳에서 교회 등록에 동의해줄 사람 200명을 찾아 서류에 사인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또한 키르기즈스탄은 아직도 국제사회에서 원조를 받는 나라다. 재작년 기준으로 북한보다 한 단계 위의 경제력인 나라이니 경제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06년 키르기즈스탄에 왔을 때만 해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지 15년이 지났음에도 공산주의 잔재가 어디를 가도 남아 있었습니다. 하루는 오젠에 있는 백화점에 갔는데 청소를 하고 있는 종업원이 보이기에 찾고 있는 물건이 어디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때 그 종업원은 ‘당신은 지금 내가 청소를 하고 있는 것이 안 보이느냐? 청소가 끝나면 그때 다시 찾아와라’고 대답하는데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모습이 저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여러 상황으로 볼 때 복음을 전하기 열악한 땅에서 교회를 개척해 그리스도의 씨앗을 심기에 혼신을 다하는 이가 있다. 오늘 소개하는 김학중 선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10여년 전 시골의 한 학교를 방문했던 김 선교사는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이혼 등으로 무너진 가정의 아이들이 돌봄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을까 모색하던 중 김 선교사는 한국 안양에 위치한 새중앙교회에서 설립한 ‘돕는 사람들(굿헬퍼)’이란 NGO 기구를 알게 되다. 그리고 이 곳을 통해 쉬콜라(멕텦)라 불리는 11학년제 학교의 학생들과 1:1 결연의 다리를 놓기 시작한다.

 

“공산주의였던 소련 지배시절 다른 것들은 다 통제를 했지만, 성문제의 통제로 인한 국민들의 스트레스는 통제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억압의 출구로 성을 개방해 놓았기 때문에 그 때의 문화가 아직도 이어져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결과물이 지금의 방치된 아동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 시골 3개 학교 중 찻쾰 마을의 카이나자로보이 학교의 아이들에게 후원금과 후원품을 전달하고 있다. 

 

김학중 선교사는 키르기즈스탄의 수도인 비쉬켁에서 차로 약 1시간 30분가량 떨어진 한국의 군단위인 소쿨룩 라이온 내의 찻쾰 아이을(마을)을 거점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그는 이곳의 방치된 아동들을 돕기 위해 키프기즈스탄 정부에 정식 등록한 ‘겨자씨’라는 NGO를 설립했다. 그리고 찻쾰 아이을과 이곳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셀렉지야 아이을, 그리고 15분 정도 거리의 샬타 아이을이라는 시골 마을의 3개 학교에서 극빈아동 결연사역을 하고 있다.

 

현재 김 선교사를 통해 결연되어 있는 아동은 공식적으로 36명이다. 물론 인원수는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연인원으로 볼 때 430여명으로 지난 9년간 약 3,880여명에게 후원을 한 셈이다. 그는  예비신청을 한 아동 중 생활이 너무 어려워 후원이 급한 아동 5-7명에게는 매달 결연이 이루어 질 때까지 김 선교사 자신이 후원을 한다.

 

또한 후원을 하던 아동 중 전도를 해서 주님을 영접한 아이들이 전문학교나 대학에 입학 시, 한국인 선교사가 설립한 학교(현재 2개의 전문학교와 2개의 대학이 있다)에 추천해 전액 또는 일부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 있도록 주선하고 있다. 이 경우도 등록금 일부를 김 선교사가 개인적으로 부담하기도 한다.

 

▲ 샬타라 마을의 학교에서 3개 학교 극빈아동들에게 ‘사랑의 가방’ 전달식을 갖고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그는 이슬람 문화권인 이곳에서 한 명을 전도하는 일이 매우 귀한 일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정예 청년 지체를 세우는 일에 집중한다. 그는 현재까지 3번의 개척을 했다. 지금의 교회는 개척한지 3년째로 교회의 지체는 7명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학생들을 주축으로 수도 비쉬켁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 이름도 ‘겨자씨교회’입니다. 시골 아이들이 수도까지 와서 예배드리는 일이 쉽지 않은 경우는 주거지 근처 다른 현지 교회 또는 한국 선교사님에게 인계해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철저하게 전도해서 예수를 영접한 새신자만 교회의 지체로 받아들입니다. 수평이동 신자는 다니던 교회를 계속 다니게 하거나 다른 현지인 교회로 인도합니다.”

 

김 선교사가 아동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필요를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를 9년, 그는 드디어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고, 낙망하지 않고 때를 기다린 세월이 고마울 뿐이라고 말한다. 다만 한국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아동들을 위한 후원자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고, 후원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는 아동들이 매번 찾아와 후원결과를 묻고, 힘없이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그의 가슴은 먹먹하기만 하다.

 

“사역을 통해 배출되는 차세대 지도자들을 사회에 투입시켜 기독교세계관과 가치관으로 키르기즈스탄을 변혁하는 지체로 세우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혜 있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복음과 접목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각도로 실행하고 있습니다. 양계와 양 사육, 메추리 사육 등을 이미 진행하고 있으며, 사료공장 사역과 함께 또 한 가지는 지난해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의 GMAN 대학의 냉동관련 포럼에 참여해 이와 관련해 연계 사역 준비와 GMAN 대학 키르기즈스탄 분교사역도 병행하려고 합니다.”

 

▲ 김 선교사와 전하리 전교사 부부가 두 번째 개척한 교회에서 성도들과 예배 후 함께 한 모습.

 

김 선교사의 사역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묘지가 없어서 다시 무슬림으로 돌아가는 현지 기독교인들을 위해 현지 선교사들과 한국교회가 함께 기독교묘지를 조성했다. 물론 김 선교사 자신도 그곳에 묻히기를 원한다.

 

“이슬람 장례문화는 매장뿐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소천을 하면 이슬람 지도자들이 묘지매장 허가를 불허합니다. 심지어는 매장된 시신을 파헤쳐 길바닥에 던져버리는 만행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평생을 살던 사람이 자신이 죽고 난 후 자신의 매장지가 없다는 사실과 혹시 자신의 시신도 파헤쳐 질 수 있다는 생각에 직면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두렴움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많은 기독교개종자들은 죽기 전에 이슬람 지도자를 찾아가 다시 무슬림이 될 테니 자기에게 매장지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사실을 접하고 김 선교사는 “어떻게 전도한 영혼인데…” 라는 참담한 심정으로 기독교들이 매장될 수 있는 묘지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한국인사역자협의회(한사협) 회장을 자청해 맡아 가장 먼저 이 일을 추진했다.

 

그는 한국에 아는 교회들에게 후원을 부탁하고, 한사협 자체 바자회를 열어 모금된 돈으로 묘지를 구입했다. 현재 9기의 성도가 잠들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금액이 모자라 구획정리와 조경, 그리고 한국인 선교사 묘원을 묘지내에 따로 조성하는 일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키르기즈스탄의 ‘양화진’을 만들어 키르기즈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 선교사묘원이 아쉽게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낙망하지 않고 때가 되면 거둘 열매를 바라보며 한 가지 한 가지를 성실히 준비하려 합니다.”

 

“키르기즈스탄 기독교 역사 속에 키르기즈스탄을 사랑한 선교사”로 기억되고 싶다는 김 선교사의 마지막이 말처럼 키르기즈 크리스천들의 마음속에 그의 이름 석 자가 오래도록 기억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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