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소박한 꿈
김송자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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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10 [08:4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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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찾아온 아름다운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대강 절 촛불도 밝히기 전에 세상은 먼저 부산을 떨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절실한 사연들은 일찍부터 우편함에 들어앉아 있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상투적인 축하 메시지는 눈길도 끌지 못한 체 수북이 쌓여갑니다. 허울 좋은 인사치레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운 것은 하 수상한 시절 때문일까요?  요란한 세상 풍조가 그저 을씨년스럽습니다. 

 

사부작사부작 눈이라도 내리면 창 넓은 찻집에 앉아 삶을 도란도란 되짚어 보고 싶습니다. 벽난로 속의 마른 장작이 활활 타고 사그라지듯 모든 것을 용서받고 용서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꿈길도 너무 멀어 닿을 수가 없으니 그리운 이들을 품고 성소로 나아 갑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이 놀랍고 복된 소식이 실체가 되어, 모든 것이 풀어지고 참 자유를 누리는 영혼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주의 자비를 구하겠습니다. 

 

온통 어지럽고 혼란한 시대를 살고 있으니 어디라고 풍경이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광기 어린 축제 준비로 시끌벅적 한 가운데 누군가는 숨을 곳도 없는 잔인한 겨울 강을 건너고 있을 것입니다. 사방을 돌아보아도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잡을 지푸라기도 없이 홀로 신음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겠지요. 어쩌면 포인세티아보다 더 붉게 타는 가슴을 풀어헤치고 하늘을 우러러 고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는 나도 그래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아주 대단한 일이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타성惰性에 젖어 속 빈 강정처럼 실체는 잃어버리고 부질없이 동동거렸지요! 그야말로 심신이 파김치가 되도록 치러야 하였던 “연중행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호젓한 빈들에 서 보니 애석하게도 그 자리에 주인공이 부재不在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으로 가슴이 서늘해지는 일입니다. 

 

예루살렘을 등지고 슬픈 영혼들이 모인, 벳바게로 베다니로 나가셨던 마음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흑 암에 앉은 자들에게 빛으로 임하시어 억눌렸던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지시는 다함이 없는 사랑과 긍휼하심을 말입니다. 화려하고 대단한 것을 원하셨던 것이 아니라 주만 기다리는 지치고 상한 심령이었습니다. 정죄의 화살을 맞은 세리와 창기들에게 하늘이 찾아 들어 움츠러든 그들을 일으켜 세우시던 큰 자비를 이 계절의 길목에서 깊이 묵상합니다.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으로 오신 주는, 버림받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시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어떤 권위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인애를 보이셨습니다. 법조문의 잣대로 씌워준“저주의 멍에”를 지고 성전으로 올라갈 수도 없었던 이들에게, 영원한 기쁨의 나라가 먼저 임한 것이지요.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은총과 위로를 덧입고 어찌 찬양하지 않겠는지요!

 

간 세월 뒤돌아보면 송구하기 그지없고 무한한 은혜로 오늘을 살아가지만. 계절이 돌아오면 깨뜨릴 옥합도 없는 심사는 노심초사합니다. 광야의 초롱 한 별은 머물 곳이 없고, 왕은 머리 둘 곳이 없어 마구간을 찾으시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이지요. 몰약도 향유도 없고 빈방을 준비하지 못한 분분한 속내를 돌아보며 눈시울이 젖습니다만, 낮고 천한 곳으로 임하시는 내 주의 발아래 일렁이는 심사를 슬그머니 내려놓습니다. 

 

이제 변방을 떠돌며 머뭇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베푸신 은혜를 갚을 길도 없습니다. 남은 시간은 어리석은 자의 결박을 풀어 주시고, 눈물을 씻어 주시며, 변함없이 후대하시는 분과 함께 호젓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의 허다한 허물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가난한 심령의 사모하는 마음만으로도 기뻐하시는 님의 넓은 품에서 천국을 맛보며 영생하도록 솟아 나는 생명 수를 마시겠습니다. 

 

이 거룩하고 복된 계절에 임이 걸어가신 빈들로 나가, 우리들의 고요하고 거룩한 밤을 위하여 소박한 꿈 하나를 조신하게 걸어 둡니다. 깨어지기 쉬운 맘 깃을 여미고 낡은 등경위에 작은 불 밝혀 놓고 빗장을 열어 놓겠습니다. 바람길로 오시는지 구름 길로 오시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철없는 신부는 머리를 조아리며 오시는 여울목에 꽃등을 달겠습니다. 행여 더디 오실지라도 감람산의 눈물을 기억하며 잠잠히 기다리겠습니다. 

 

▲ 김송자 선교사

필자를 소개하는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선교사로 지칭될때가 가장 그녀답다고 느껴진다. 필자는 20세에 브라질로 이민가서 억척으로 일해 부를 일구었으나 극적상황을 통해 부부가 함께 빈민촌 선교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헌신적으로 상파울 판자촌 빈민들을 섬겼으나 그 판자촌 강도들에 의해 남편은 처참히 살해되어 저수지에 던져졌음에도 그녀는 그 판자촌으로 되돌아가 빈민구제에 한결같이 임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이 훌쩍 흘러 필자는 이제까지의 삶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남편 없이 세 아이를 키워 낸 엄마, 사업체를 이끌어온 CEO,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라질 현지 선교에 한결같이 임해온 김송자 선교사의 글은 시인의 섬세한 필력도 돋보이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강인함으로 일궈 왔다는 점에서 문학을 뛰어넘는 큰 영적 감동과 도전이 있다.  

 

저서로는 자서전인 <광야 40년>과 산문집인 <풀꽃의 노래>, <상파울에서 부르신 하나님>, <작은 빛이 되리라> 등 총 6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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