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기다림의 정점에서
김송자 선교사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19/11/27 [07:27]  최종편집: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기다림의 정점에서

 

 “저것은 스포츠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귓전을 두드린 낮 선 음성이다. 산책을 나온 커플이 자기들끼리 한 이야기다. 보도블록의 잡초를 정리하는 것이 운동이고 치료라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쪼그리고 앉아있는 것도 부끄럽지도 않다. 약초를 캐내듯 돌 사이에 박힌 묵은 뿌리들을 꼼꼼히 뽑으며 지난날을 회개한다. 허락하신 환경을 스스로 가꾸며 누리지 못하고 남의 손에만 맡겨 놓았었다.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라 힘은 들지만, 심중에 깊이 박힌 해묵은 죄의 쓴 뿌리들이 뽑혀 나가는 듯 후련하다. 손길이 닿는 곳마다 변해가는 집 안팎의 정갈함은 심령을 단정하게 하며 작은 아가의 동산처럼 천국을 맛보게 한다. 하루만큼의 수고들이 모여서 새로움을 연출하고 새집으로 이사를 온 듯 상쾌하고 즐겁다. 왜, 진작 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였을까? 내 어리석은 열심이 탱천하여 한 생을 광야로 사막으로 끌고 다녔을 것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머물다 간 자리가 향기롭도록 깔끔하게 정돈하고, 삶과 영혼을 가다듬어 님의 열매를 맺도록 까지 신부의 등불을 밝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음성을 들으며 새벽을 깨우는 이 동산으로 그리운 자식들이 돌아올 것이다. 그날 이곳에서 은총을 입은 영혼들이 하늘의 기쁨을 맛보도록 꽃을 심고 가꾸며, 나를 흐르는 생명 수가 차고 넘치도록 주님을 더욱 구하는 것이다. 이 복된 날을 주시려고 그토록 오래 참고 기다리셨나 보다. 

 

  “주”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 이 비밀이 풀어지니 사사로운 감정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비워지고 세월이 훑고 지나간 것처럼 잊을 것도 버릴 것도 없으니 홀가분하다! 하룻밤 꿈길 같은 여정에서 무엇을 그리 집착하고 연연해하였었는지 더듬어 보아도 어느 골에 묻었는지 기억에도 없다. 절절했던 사연도 아리던 추억도 낮 선 초가집 문지방 위에 걸린 흑백 사진처럼 생경하다. 

 

그렇게 나도 익어가는가 보다! 홍엽 같은 그리움이 맴돌다 사라져도 애절할 것도 없고 궁금한 것도 없어졌다. 영원한 오늘이 너무 소중하고 매 순간 주어진 분복을 누리는 것처럼 큰 복락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젠 어떤 상황도 심령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지 못한다. 세상 바람이야 끊임없이 불어오겠지만,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주안에서 참 자유를 얻고 평강을 누리며 문제의 답과 결국을 알기에 때문이다. 

 

풀잎 같은 인생이지만 범사에 초연하고 담담하다. 눈동자처럼 보살피시는 주가 동행 하시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그 은혜가 내게 족하다. 한량없는 자비를 베푸시는 주가 계신데 무엇을 낙망하고 좌절하며 탄식할 것인가 말이다. 그 영광의 날개 그늘에서 쉼을 얻고, 생명의 길로 인도함을 받는 것은 참으로 존귀한 일이다. 이 은총을 누리는 나날이 감사하고 복되고 가득하다. 

 

요즘은“시”를 쓰지 않나요? 얼마 전 만났던 지인의 질문이다. “네, 너무 행복해서 시상時相이 떠오르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에 모두 의아해하였다. 

 

그렇다, 억새처럼 잉잉거리며 날밤을 지새우던 날들이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곰삭을 슬픔을 퍼 올리며 보낼 곳 없는 편지를 쓰며 가슴앓이를 하던 날이 남의 일처럼 급할 것 없이 스쳐 간다. 고난의 깊음을 지나온 심중은 하늘이 찾아 든 호수처럼 잔잔하고 고요하다.  

 

속 울음을 삼키며 낳는 것이 시詩일까? 밀려오고 사무치는 설움을 토하며 절절한 노래를 불러 주님의 마음을 참으로 아프게 하였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갯바위처럼 우두커니 부대끼며 밤마다 만리장성을 쌓았었다. 부질없는 모래성이 허물어지던 날 아침햇살처럼 물 위를 걸어오신 임은 내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셨다. 그리고 난 다시는 나를 위하여 우는 새가 아니라, 님의 노래를 부르며 나리꽃 피는 새벽 강을 나르겠다고 다짐하였다.

 

긴 기다림의 정점頂點에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영원한 기쁨으로 충만한 새 하늘과 새 땅을 활짝 열어 주신 듯, 솔바람에서, 빗방울에서, 풀잎의 연 이슬에서도 임의 향취를 누린다. 날마다 만물의 찬양을 화답하며 깊고 심오한 님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간다. 은밀한 중에 들려오는 극진한 사랑의 속삭임은 세상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다. 그 놀라움을 어찌 내 어쭙잖은 글로 담아 낼 것인가 말이다. 그저 삶으로 시를 짓고, 삶으로 예배를 드리며 님의 눈동자에 맺히고 싶다. 

 

▲ 김송자 선교사

필자를 소개하는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선교사로 지칭될때가 가장 그녀답다고 느껴진다. 필자는 20세에 브라질로 이민가서 억척으로 일해 부를 일구었으나 극적상황을 통해 부부가 함께 빈민촌 선교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헌신적으로 상파울 판자촌 빈민들을 섬겼으나 그 판자촌 강도들에 의해 남편은 처참히 살해되어 저수지에 던져졌음에도 그녀는 그 판자촌으로 되돌아가 빈민구제에 한결같이 임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이 훌쩍 흘러 필자는 이제까지의 삶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남편 없이 세 아이를 키워 낸 엄마, 사업체를 이끌어온 CEO,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라질 현지 선교에 한결같이 임해온 김송자 선교사의 글은 시인의 섬세한 필력도 돋보이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강인함으로 일궈 왔다는 점에서 문학을 뛰어넘는 큰 영적 감동과 도전이 있다.  

 

저서로는 자서전인 <광야 40년>과 산문집인 <풀꽃의 노래>, <상파울에서 부르신 하나님>, <작은 빛이 되리라> 등 총 6권이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