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그 숲에는
김송자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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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03 [05:2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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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숲에는

 
따사로운 햇살을 한 아름 안고 걷는 길섶엔 온갖 초목이 무성하다. 각양각색의 식물들이 저만의 빛과 향기를 발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단할 것은 없어도 말끔하게 다듬어진 묘목이 있는가 하면, 명성은 그럴 듯하나 벌새 한 마리 쉬어 갈 수 없이 되바라진 것들도 있다. Maria- sem- vergonha! “수치를 모르는 마리아라는
Impatiens walleriana잔인한 세월의 가시덤불을 운명처럼 둘러쓰고도 눈시울이 아리도록 곱다.

 

작고 앙증맞은 것이 시절을 탓하지 않고 꼿꼿하게 피어 습하고 우중충할 계곡을 괴이고 있다. 험한 세파에 시달려도 흔들림 없이 야무지고 당당하지만, 다소곳이 낮고 천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누가, 저에게 수치의 굴레를 씌워 천덕꾸러기로 내몰았을까? 별들도 찾아 들지 않는 여울에 앉아 밤마다 임의 숨결로 꽃물을 드렸나 보다. 태곳적 신비로움을 일러주는 흐트러짐 없는 이파리마다 생명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풋풋하다! 미물은 들레지 않고 함초롬히 하늘의 비밀을 풀어내어 수만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심히 밟고 지나다녔던 논두렁 밭두렁의 이름 모를 풀꽃들의 진지함이 지지 않는 바람꽃처럼 스멀스멀 코끝에 매달린다. 심신을 쉬게 하는 은은한 향기를 되새기며 사각사각 소나무 숲을 지나 집으로 가는 언덕을 오른다. 그곳엔 고향 집 장독대에 어우러지던 우람찬 가죽나무세 그루가 있다. 그 나무 아래 서면 구만리 저편의 아늑한 산천이 다가오고 매미가 운다.

 

동심을 불러오는 가지는 하늘만 의지하고 발 돋음을 하였는지 구름발치에 걸렸다. 아름드리 둥치에 기대서면 영영 돌아올 줄 모르는 사람들이 떠나간 간이역의 처량한 기적소리가 들린다. 연줄이 끊어진다 자지러지던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천 길 그리움이 출렁이고, 코스모스 흐드러진 신작로를 지나면 노란 벼들이 춤을 춘다. 긴 돌 방축을 따라 흐르던 시냇물은 미역감던 아이를 데리고 먼바다로 떠났다가 이제는 돌아가 잔다!

 

발끝에 머뭇거리는 갈잎 사이로 먼 길을 돌아 회귀하는 작은 연어를 만난다. 지나온 생의 구비를 되돌아보면 숱한 사람과 상황을 만나고 경험하였다. 인동초 고리처럼 생의 마디마디를 엮여가던 인연들이 있었다. 때로는 향기롭게 다가왔지만 다시 스쳐서는 안 될 악연으로 끝나기도 하고, 가끔은 잠잠히 목마른 자의 갈증을 해갈하는 깊은 우물 같은 천사를 만나기도 하였다. 감격도 하고 실망도 하며 인간의 행위를 선과 악이라는 도식적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위험을 자행하기도 하였다.

 

인생의 틈바구니에서 긁히고 할퀴고 상하며 하늘만 바라는 억새처럼 꾸역꾸역 속으로 밀어 넣었지만, 절대 선의 기준인 그리스도의 긍휼이 가난한 심령을 덮을 때까지 많이도 억울해하고 많이도 미워하며 감히 정죄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가 내 삶의 소중한 목적이 되고 보니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 확연해 졌다. 인생의 가시 채찍으로 다가온 뼈아픈 인연도, 곱씹기도 무서운 쓴 나물도 모두 나를 나 되게 한소중한 존재들이었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 나로 절망의 깊은 강을 건너 빛으로 나아가게 한 징검다리들이었다. 그들이 있어 더불어 숲을 이루고 후미진 산자락에서도 내가 설 자리를 알아 주의 품속으로 숨어들 수 있었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보니 가슴을 쥐어뜯게 하던 자들의 영혼도 눈물겹도록 고맙고 존귀하다.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그래야만 했었다. 애달픈 인연의 고리로 아픈 매듭을 지으며 척박한 심령을 기경하고 얼크러진 치욕의 쓴 뿌리를 뽑아버린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밑바닥을 경험하는 참담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부서짐도 낮아짐도 감사의 조건이 되고 보니 하늘을 아우르는 고요한 숲처럼 모든 것이 조화롭다. 인생을 의지하지 않으니 넘어질 일이 없고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할 일도 없다. 가끔은 고약하게 비틀어진 심령을 만나기도 하지만, 낮 선 땅에서 마주는 가죽나무 향처럼 소갈머리 없는 사람 내음도 정겹다. 만나고 헤어지는 한 영혼 영혼의 고리들이 내 신앙의 길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 가는 아름다운 동역자들이다.

 

연약한 심령을 품으시는 주님의 마음이다! 이 바보 같은 사람이 이곳에 이르기까지 한 생이 걸렸다. 인생의 대단한 계획도 부질없는 내일의 염려도 그분께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내가 주와 함께 걸어가면 그분의 인도하심 가운데 모든 것이 있음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바뀌는 것들이 나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하고, 내 삶의 목적이고 영원히 함께하시는 주님을 올곧게 따라가며 다함이 없는 사랑과 긍휼이 강같이 흐르도록 할 일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메마른 광야 한복판에서 낙망하고 탄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른 광야에도 샘을 여시고 꽃이 피게 하실 주님이시다. 모든 것이 회복되는 역사와 영광을 보게 하실 주를 찬양하며, 나의 가는 길이 주님의 길이 되고 그분의 뜻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치의 옷을 벗고 주님의 동산으로 들어가면 주가 가꾸신다. 그 숲에는 참 자유가 있고 진정한 기쁨이 있으며 인생의 참된 의미와 주님의 보화가 있다.

 

 

▲ 김송자 선교사

필자를 소개하는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선교사로 지칭될때가 가장 그녀답다고 느껴진다. 필자는 20세에 브라질로 이민가서 억척으로 일해 부를 일구었으나 극적상황을 통해 부부가 함께 빈민촌 선교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헌신적으로 상파울 판자촌 빈민들을 섬겼으나 그 판자촌 강도들에 의해 남편은 처참히 살해되어 저수지에 던져졌음에도 그녀는 그 판자촌으로 되돌아가 빈민구제에 한결같이 임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이 훌쩍 흘러 필자는 이제까지의 삶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남편 없이 세 아이를 키워 낸 엄마, 사업체를 이끌어온 CEO,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라질 현지 선교에 한결같이 임해온 김송자 선교사의 글은 시인의 섬세한 필력도 돋보이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강인함으로 일궈 왔다는 점에서 문학을 뛰어넘는 큰 영적 감동과 도전이 있다.

 

 

저서로는 자서전인 <광야 40년>과 산문집인 <풀꽃의 노래>, <상파울에서 부르신 하나님>, <작은 빛이 되리라> 등 총 6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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