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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전쟁, 크리스천 이것만은 알자[Ⅰ]
피터 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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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28 [01:3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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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폴리티컬 코렉트니스)’은 경계해야 할 프레임

 

 

세실과 모리스가 예배를 드리러 가는 중이었다. 세실이 물었다. “모리스, 자네는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생각하나?” 모리스가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목사님께 한번 여쭤보는 게 어떻겠나?”

 

세실이 먼저 목사님에게 다가가 물었다. “목사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목사님은 정색을 하면서 대답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절대 그럴 순 없지."

 

세실로부터 목사님의 답을 들은 모리스가 말했다. “그건 자네가 질문을 잘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가서 다시 여쭤보겠네.” 이번에는 모리스가 목사님에게 물었다. “목사님, 담배 피우는 중에는 기도를 하면 안 되나요?” 목사님은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네. 담배를 피는 중에도 기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틀을 가지고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 이러한 것을 사람들은 프레임(frame)의 법칙이라고 한다. 최근 미국이나 한국 사회에 때 아닌 프레임 전쟁이 일고 있다. 상황을 바라보는 눈들이야 제각각이지만 해석에 있어서는 크게 두개의 세력으로 양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일한 현상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는 프레임의 원리, 그렇다면 작금의 시대에 광풍과 같이 거세게 불어 닥치는 프레임 전쟁에서 과연 크리스천들은 어떤 시각으로 프레임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이번호와 다음호 두 차례에 걸쳐 토브포럼(Tov Forum) 대표 스테반 오 박사를 통해 들어본다. <편집자 주>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탈성경적 프레임에 현옥되지 말아야

 

▲ 스테반 오 박사(Ph.D 물리학)는 스위스 제네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스탠포드선형가속기센터(SLAC) 등에서 연구했으며, 의료용 단층촬영 진단기구인 단광자방사선단층촬영(SPECT) 개발에 참여한바 있다. 현재 토브포럼(TOV Forum)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TOV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더라”에서‘좋았더라’원어의 영어식 표기다.   © 크리스찬투데이

프레임이란 무엇인가?

 

▷프레임은 한마디로 ‘사물을 인식하는 틀’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인지(認知, Cognition)된 상황은 프레임을 통해 인식(認識, Perception)으로 도출되고, 인식은 행동을 유발하게 됩니다. 따라서 인지를 전인식, 행동을 후인식이라고도 합니다. 하나의 사건을 보고 각기 달리 판단하기도 하는 이유는 바로 각자가 가진 프레임이 다른데서 온다고 볼 수 있는데, 프레임이 “누구에게 프레임을 씌웠다”라고 할 때 ‘누명’이라는 뜻의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수가 동일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어 사회적 현상을 빚게 되면 그 프레임은 사회적 프레임을 이룹니다. 그래서 정당, 정치인 등 사회적 영향력을 얻고자 하는 조직이나 개인은 프레임을 제시하게 되는데, 제시된 프레임이 널리 받아들여지면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은 이 프레임으로 사회의 제반 현상을 인식하게 되어 정당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 정치인은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에는 다양한 조직과 개인이 존재하며 서로 이익이 상충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유리하고 상대에겐 불리한 프레임이나 역프레임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 제시된 프레임이 견해의 차이인 ‘다름’을 벗어나 옳지 않거나 불의 또는 거짓인 ‘틀림’이 되면 개인의 경우 누명이 되고, 사회의 경우 병들어 혼란스러운 사회로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어떤 방향의 프레임이 바람직 한가?

 

▷앞에서 말 한대로 프레임은 판단의 기작(機作, mechanism)이 되기 때문에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프레임은 개인이나 사회를 거의 지배한다고 할 수 있지요.

 

예를 들면 인류 최초로 우주에 다녀온 소련 우주인 유리 가가린은 “우주에 나가 아무리 둘러봐도 하나님은 없더라”고 했지만, 미국 우주인은 “우주에서 보는 지구와 별들이 너무 아름다워 하나님의 존재를 느꼈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레임이 다르니 같은 것을 보고도 정반대로 인식하게 되는거죠. 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사람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의 삶의 지향점과 방식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삶에 무엇이 좋고 싫으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평등이고, 공정이고, 정의인지, 삶을 재미찾기(fun seeking)로 살아야 하는지 의미찾기(meaning seeking)로 살아야 하는지 등 다시 말해 폭넓은 의미에서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역사관… 이런 것들이 개인들마다 그동안 쌓여온 프레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나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 그 사람을 정의할까요? 외모, 지위, 소유, 관계 등이 모두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가진 생각 즉 사고방식을 이루는 프레임이 그 사람을 규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회를 규정하려면 그 사회가 가진 프레임을 종합해보면 됩니다. 이데올로기도 하나의 프레임이고 문화도 여러 프레임으로 이루어집니다. 또 시대마다 풍미하는 프레임이 있기도 합니다. 일종의 사조(思潮)라고 말하죠. 그래서 제시된 프레임이 건강해야 건강한 사회가 됩니다. 

 

예를 들자면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프레임은 패배와 절망에 허우적이던 한국사회를 신명과 희망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세계가 그 결과를 기적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 상황은 잘못된 퇴행적 프레임으로 인한 좌절과 분노가 사회 곳곳에 가득차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의 대표적인 프레임 사례가 있다면.

 

▷프레임 없는 사회는 없습니다. 정치란 프레임 설정이고 설정된 프레임을 국민에게 설득시켜 행동을 유발하게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프레임 예로는 ‘맥카시 선풍(McCarthy 旋風)’을 들 수 있습니다. 맥카시선풍은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이었습니다.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맥카시가 미국 안에 공산주의자들이 암약하고 있으며 자신은 그 명단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대부분 공산주의와 관련이 없던 많은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직업을 잃었습니다. 당시 민주당 정부였던 미국이 공산주의 영향을 크게 두려워 한 풍조를 이용한 프레임이었습니다. 1953년 공화당이 집권하며 매카시즘에 대한 매력을 상실해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니 일종의 집권 프레임이었던 셈입니다.

 

최근의 예로는 트럼프가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프레임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미국사회는 아직 비교적 건전해서 근거 없는 프레임에 휩쓸리는 경우가 적어 보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이라 불리는 PC(Political Correctness)는 지도자나 기독교인이 경계해야 할 프레임 중 하나입니다. 언뜻 옳게 들리는 이 프레임의 결과는 그름을 그르다고 명확히 주장하지 못하게 하고, 때로는 옳음조차 말하지 못하게 합니다. 즉 매력적으로 들리는 ‘인권’이나 ‘평화’나 ‘포용’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개인의 ‘자유’나 ‘권리’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권 즉 ‘개인의 존엄’이 묵인되거나 말살되는 역차별을 가져오는 “정치적 위선 완장질”이라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용어는 이미지를 주입하고, 주입된 이미지는 프레임을 구성합니다. 프레임은 대상의 평판을 만들고, 평판은 대중의 선택이라는 행동을 유도하게 합니다. 

 

일례로 적법하지 않게 미국에 체류하는 사람들을 공화당은 ‘불법외국인(Illegal Alien)’으로 부르지만 민주당은 ‘서류미비 이민자(undocumented immigrant)’라고 부릅니다. 공화당이 나쁘게 보이고 민주당이 좋게 여겨지게 합니다. 또 서류미비 이민자라는 말은 불법체류자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립니다. 그만큼 용어는 프레임 설정에 핵심적 역할을 합니다. 불법체류자의 자녀를 꿈꾸는 사람 즉 ‘드리머(Dreamer)’로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은 불법체류자의 자녀만 꿈꾸는 게 아닙니다.

 

또 하나 짚을 것은 ‘소수자 인권’ 프레임입니다. 소수자 인권! 좋게 들립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온 것이 ‘동성애 프레임’입니다. 동성애 옹호는 앞서 말한 PC와 결부되어 이미 미국 사회에 많이 받아들여져 있고, 또 많은 분들이 말하고 있으니 더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크리스천들이 한 가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PC와 소수자 인권은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탈성경적, 탈중심적, 탈이성적, 다원적 사고인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절대 주권자, 절대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따르는 기독교의 정신과는 전혀 상반된 것으로 허울 좋게 포장된 프레임에 현옥되지 않도록 근신하며 깨어있어야 합니다.

 

프레임 전쟁, 크리스천들 이것만은 알자 [Ⅱ]는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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