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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읽기(34) - 여호수아는속은 것일까? 속아준 것일까?
가짜 뉴스, 거짓말을 멀리할 수 있는 안목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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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28 [01:2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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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고대 근동의 빵은 공기에 노출되면 굳어버렸다. 하루를 위한 빵이었다.     © 김동문 선교사

 

글을 읽다보면 질문이 쏟아질 때가 있습니다. 질문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예 모르기 때문이거나 다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던지는 질문은 어떤 점에서는 아는 만큼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버린 돌’이 있습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시편 118:22). 이 구절을 마주하면서, 별다른 궁금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돌로 집을 짓는 지역에 자리한 도시에서 이뤄지던 집 짓는 현장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 절대 다수의 농민과 도시 서민은 움집 같은 곳이나 동굴 거주를 하곤 했습니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도 진흙을 이겨 만든 벽돌로 왕궁도 관공서도 지었습니다. 그런데 신전 건축물과 무덤만은 돌을 깎아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의 시 안에 등장하는 이 건축자는 무엇을 만들고 있던 것일까요? 돌로 지은 집에 살고 있던 이는 누구였을까요? 이렇듯 질문은 그때 그 자리에 서게 될 때 다가오곤 합니다. 이제 오늘의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창세기에는 에덴에서부터 속고 속는, 속이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성경 통독을 한 이들이나 교회에서 성경학교를 경험한 이들이나 설교 좀 들어본 이들이라면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를 속였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거짓말에 속은 것일까요? 속아준 것일까요?

 

성경 속에서

 

▲ 고대 근동 종족과 사람은 상이한 의식주 문화를 갖고 있었다. 겉모습 만으로도 구별되었다.     © 김동문 선교사

 

나귀, 묵은 포도주가 든 낡은 가죽부대, 곰팡이 난 떡과 낡은 신과 옷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제는 여호수아 시대로 시간 여행을 시작합니다. 아래 이야기의 배경은 여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요단강 건너는 것에서부터 이어지던 일련의 맥락을 따라 볼 때 그렇습니다.

 

우리의 이 떡은,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떠나던 날에, 우리들의 집에서 아직도 뜨거운 것을 양식으로 가지고 왔으나, 보소서 이제 말랐고 곰팡이가 났으며, 또 우리가 포도주를 담은 이 가죽 부대도 새 것이었으나, 찢어지게 되었으며, 우리의 이 옷과 신도 여행이 매우 길었으므로, 낡아졌나이다 한지라. (여호수아 9:12, 13)

 

기브온 주민의 말을 사실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것이 봄철, 대략 4월의 일이었다면, 여름 건기, 고온 건조한 상황에서 기브온 주민은 인위적으로 곰팡이 난 빵을 만들었습니다. 떡(빵)도 그렇습니다. 빵의 모양과 재료도 나라별 지역별 지위에 따라 다양했습니다. 또한 빵에 곰팡이가 필 가능성은 지극히 드물었습니다. 공기 중에 노출되면 딱딱해지는 속성이 있었습니다. 그날 필요한 빵을 그날 만들어 사용하던 일반적인 생활 방식을 고려하여야 합니다.

 

나귀는 사막 지형을 통과할 수 없는 교통수단, 운송 수단입니다. 나귀타고 아니면 나귀에 짐을 실고 온 이 무리는 그들이 속인다고 하여도 한계가 있습니다. 나귀타고 이동할 수 있는 거리와 자연 환경이 설명되어야 합니다. 낡은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지는 않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넣습니다. 그런 점에서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부대'와 포도주 발효 상태는 연관성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신은 신을 신은 이의 사회적 지위와 계층, 인종, 지역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낡아서 기운 신'의 상태는 이들이 주장하는 바의 사실 관계를 판단할 수 있는 실마리입니다. 물론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낡은 옷'도 이들의 주장과 사실 관계를 짚어낼 수 있습니다. 

 

▲ 고대 근동에서는 세계관과 문화, 인종에 따라 아주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었다. 통역 문제는 심각했다.     © 김동문 선교사

 

무엇보다도 고대 근동에서 머리 스타일이나 수염의 모양은 지역, 나라, 인종, 지위에 따라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대화는 어떤 언어로 진행되었을까? 기브온 선발대(?)는 자기들끼리 어느 말을 사용했을까요? 여호수아와 이들 사이에는 누가 통역을 했을까요? 국제 교류가 많지 않았던 성경 속 여호수아 시대를 염두에 두고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 고대 이집트는 당시 고대 근동의 모든 문명이 만나던 곳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곳에서, 그리고 출애굽 여정에서 다인종 다민족 문화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모세 당시에 가나안 정탐꾼은 지금의 레바논 북쪽까지 둘러봤습니다. 다양한 종족과 생활 문화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국제 경험이 많지 않았을 기브온 주민들이 연출할 수 있는 '위장' 계획을 분별할 수 있는 실마리를 가득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의 이야기를 보면 기브온 선발대(?)의 위장이 들통 난 정황이 보입니다. 발뺌을 하느라 애를 먹고 있는 기브온 사람의 표정과 몸짓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조약을 맺을 수 있으랴 하나 (여호수아 9:6, 7)

 

다시 생각하기

 

거짓말과 가짜뉴스는 닮은 듯 다른 것 같습니다. 성경에도 가짜뉴스가 등장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에게 던진 이야기도 가짜였고, 사사기에서 레위인의 자신의 첩의 죽음에 얽힌 가짜뉴스를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예수를 모함하는 거짓 증거는 물론 예수의 부활을 희석시키기 위한 거짓말도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쉼 없이 질문하고 있습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런데 가짜뉴스나 거짓말 모두 상식과 맥락을 짚어봄을 통해, 질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습관을 통해 멀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근신하는 마음, 즉 안목이라 말합니다. 다시 질문합니다. 과연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의 위장술에 속은 것일까요? 아니면 속은 척 했을까요? 당연히 여호수아는 기브온 지도자들의 거짓에 속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가 왜 속은 척 한 것인가는 또 다른 궁금함을 자극하지만 말입니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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