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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김송자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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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14 [07:0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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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을 내려놓고 하루만이라도 조용히 곁에서 지켜봐 주기로 하였다. 기력이 모두 빠져나가 버린 듯 비스듬히 누워 공중의 새들을 따라다니는 눈길이 애처롭다. 표현하지 못하니 저도 답답할 것이고 나 또한 이해하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래도 옆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지 손길이 닿을 때마다 한 번씩 물끄러미 바라본다.

 

봄비가 씻어낸 탓일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인적 없는 바다를 옮겨 놓은 듯하다. 빈 섬으로 호젓하게 휴가를 나온 것처럼 상쾌하다. 부질없이 넘나드는 상념도 내려놓고 왜소한 등을 쓸어주며 오늘만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달랜다. 물이라도 충분히 마시면 좋을 텐데 만사가 귀찮은가 보다. 얄궂다! 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마음을 졸일 사람이라는 것은 나도 몰랐다.

 

송아지만 한 Nico가 우리 곁은 떠나기 전 까지만 해도 집안의 개가 다가오는 것도 놀랄 정도로 모든 동물을 무서워했다. 그래서인지 12년을 함께 살았던 집지킴이를 다정하게 불러준 기억이 없다. 어쩌다 가까이 다가오면 기겁을 하고 저만치 떨어지라고 소리를 지르곤 하였다. 무관심 속에서도 변함없이 꼬리를 흔들다가 이생을 떠나며 소중한 것을 가르쳐주었다.

 

지난 연말 휴가를 떠나는 자식들이 낮 선 약 이름이 빼곡한 처방전을 내밀며 어떻게 Nico를 돌보아야 할 것을 설명하였다.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지만, 약과 음식을 잘 챙겨 먹이면 회복되는 것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늠름하던 모습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튼실하던 다리가 휘청거리고 숨을 헐떡거렸다.

 

벌겋게 달아오른 눈알이 빠져나올 것처럼 겉으로 불거져 고통스러워할 땐 어찌할 바를 몰라 끌어안고 울었다.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어 등을 쓸어주며 눈물을 흘렸다. 싸늘하기만 하던 사람의 품에 안겨 괴로워하면서도 등신처럼 간간이 꼬리를 흔들었다. 이 바보는 뒤늦게 가슴을 쳤다. 병이 이렇게 깊도록 까지 왜 몰랐을까? 살뜰히 보살피지 못한 것이 미안해 수없이 용서를 빌었다.

 

가망이 없음이 확연해지고 제 발 평안히 쉬기를 바라며,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께 간절히 자비를 구하며 여러 날밤을 지새웠다. 자식들이 달려왔다. 암이 사방에 전이되어 손을 쓸 수가 없어 강한 진통제와 소염제를 먹이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난 알았다. 차마 안락사를 할 수 없어 약은 처방 받아 온 것이고 치료가 아니라 남은 시간을 조금 편안하게 해주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 힘이 들어도 평안히 떠나게 하자다짐하며 가물가물 꺼져가는 생명을 품었다. 가누지 못하는 몸을 부여안고 뒤늦게 어쭙잖은 사랑을 고백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어느 날 새벽, 동네 견공들의 심상치 않은 부르짖음 사이로 한 생의 막을 내리는 처연한 신음을 들었다. 이제는 보내야 한다며 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아들의 차 속에서 몽땅한 꼬리를 몇 번 흔든다. 이별을 알기라도 하는 듯 힘겨운 눈을 뜨고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날, 그 깊고 선한 눈동자에 고여 있던 촉촉한 물이 내 가슴에 그렁그렁 맺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떠나보내고도 대문을 들어서면 정원 저편에서 꼬리를 치며 달려올 것 같고, 생명이 다하도록 충실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현관의 버팀목처럼 묵묵히 앉아있던 빈자리가 너무 커서 모두가 힘들어했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다시는 어떤 동물도 기르지도 말고 정 주지 말자합창을 했다. 이별의 아픔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먼저 여기저기 입양할 애견들이 있나 살펴보고 있었다.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무슨 일이냐고 의아해했다. 그리고 몇 달 전 둘째 아들이 겨우 눈을 뜬 길 냥이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주먹만 한 검은 고양이가 그렁그렁 맺혀 있는 맘의 자리라도 채워줄 것처럼 반가웠다. 꼬물꼬물 걸음마를 배우는 것이 가엾기도 하고 사랑스러웠다.

 

“Nori” 란 예쁜 이름을 선물했다. 검정 옷을 입고 찾아온 새끼 고양이는 일찍 죽음의 고비를 넘어야 하였는지, 오자마자 고열에 시달리며 병원을 넘나들었다. 의사는 병이 깊어 머지않은 날 아주 떠날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가족들의 정성과 안타까운 마음이 전해졌는지 기적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 예방주사를 맞고 기진맥진한 것을 지켜보고 있다.

 

지금은 안쓰러워 노심초사하지만, 일이면 털고 일어나 똘똘하게 뛰어다닐 것이라며 다독거린다. “관심견공이 머물다 떠나면서 가르쳐 준 것이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도 충분한 것이 사랑이고 동행이라고그렇다! 내 눈에 보이지 않고 그 음성 들리지 않아도 말없이 동행하시는 주님으로 충분했다. 내가 연약할 때 안타까이 지켜 보셨을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내가 지쳐 쓰러질 때마다 그 품에 안으시고 위로하시며 살아갈 용기를 주시는 그 사랑으로 나의 우주는 가득하다. 할렐루야 아멘!

 

 

▲ 김송자 선교사

필자를 소개하는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선교사로 지칭될때가 가장 그녀답다고 느껴진다. 필자는 20세에 브라질로 이민가서 억척으로 일해 부를 일구었으나 극적상황을 통해 부부가 함께 빈민촌 선교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헌신적으로 상파울 판자촌 빈민들을 섬겼으나 그 판자촌 강도들에 의해 남편은 처참히 살해되어 저수지에 던져졌음에도 그녀는 그 판자촌으로 되돌아가 빈민구제에 한결같이 임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이 훌쩍 흘러 필자는 이제까지의 삶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남편 없이 세 아이를 키워 낸 엄마, 사업체를 이끌어온 CEO,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라질 현지 선교에 한결같이 임해온 김송자 선교사의 글은 시인의 섬세한 필력도 돋보이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강인함으로 일궈 왔다는 점에서 문학을 뛰어넘는 큰 영적 감동과 도전이 있다.

 

 

저서로는 자서전인 <광야 40년>과 산문집인 <풀꽃의 노래>, <상파울에서 부르신 하나님>, <작은 빛이 되리라> 등 총 6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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