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송자 선교사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19/09/08 [10:27]  최종편집: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헐렁거리는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정강이가 없어져 버린 뭉텅한 무릎을 꺼내 보이려고 할 때 눈을 질끈 감았다. 입술을 꽉 깨물며 울면 안 된다, 놀라서도 안 된다! 먼 길을 찾아오며 수없이 울컥거리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다짐했던 말을 떠올렸다. 다행히 뉘엿뉘엿 해가 기우는지 어둑어둑해 가는 실내에 앉아 있는 휠체어의 주인공은 방문객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 듯 머쓱한 미소를 지우며 반긴다.

  

무슨 말을 하여야 할지 마땅한 언어를 찾지 못한 체 애석한 눈길을 둘 곳이 없어 하릴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한 내음과 함께 접시의 음식을 입속으로 퍼 넣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두 노인이 눈에 들어온다. 세월 저편에서 기억도 치아도 모두 잊어버리셨나 보다. 잇몸으로 오물거리는 입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밥알들이 턱받이로 줄줄 흘러내린다. 긴 어둠 속으로 숨어버린 듯한 표정 없는 눈빛은 허공을 헤맨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몰아쉬는 깊은 한숨 사이로 한 많은 여자의 일생이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입 밖으로 끌어내지 못한 대답이 심중에서 웅숭그린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살아야 하고 말고시름들이 주억거리는 귓전으로 먼 길로 오느라 고생했다 미안하다라는 소리가 들린다. 언제나 그랬다. 모든 것이 미안해서 자기 주장도 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여인이다.

  

기구하다!” 다리를 절단하였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줄곧 뇌리를 떠나지 않은 단어다. 사십여 년 전 여느 날 코스모스처럼 하늘거리며 나보다 두 해 먼저 김포공항을 떠나는 모습을 전송하였다. 그리고 1974년 동서라는 이름으로 브라질에서 다시 만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분의 삶은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애달픈 여자의 일생이라지만 곱고 선하기만 한 사람의 한 생이 어이하여 저토록 굴곡지고 기구한지 모르겠다.

  

뒤돌아보면 가족들과 주변 모두에게는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는 참으로 가혹했다. 억울해도 섭섭해도 표현하지 못하고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몸이 반란을 일으킨 것일까? 절단한 부위는 어떻게 아물었으며 또 얼마나 아플까? 이제 어떻게 일어서야 하나? 무엇으로 위로를 하나? 어떻게 하면 다시 걸을 수 있을까? 온갖 생각으로 가슴을 조였는데 막상 환부를 꺼내 보이려고 할 땐 머릿속이 뽀얗게 바랬다.

  

병원에서 의식을 찾고 보니 한쪽 다리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담담히 전하며 쓸쓸한 미소로 문안 온 동서들에게 배려하는 모습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차라리 엉엉 울며 아픔을 토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며 돌아서는 발걸음이 천근이나 되는 듯 무거웠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다음엔 그런 언니가 야속하고 밉기까지 하였다. , 진작 자신을 양지로 끌어내지 못하고 끝까지 주변을 헤아리고 배려하다가 홀로 그늘에 앉아 가슴을 치는가 싶어 서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목이 메고 숲길을 걸으면서도 비구름 몰려오는 하늘처럼 가슴이 먹먹했다. 심드렁한 맘으로 노릇노릇하게 구운 닭 한 마리를 주문하고 포장을 기다리는 동안 신부님 한 분이 닭 두 마리를 주문하신다. 여인은 남은 것은 한 마리 뿐이라며 날렵한 솜씨로 내가 주문한 것을 자른다. 나는 필요 없으니 모두 가지고 가시라고 양보하였지만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반을 나누어 신부님께 드리고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나왔다.

  

찌푸렸던 하늘이 기다리기라도 하였던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무성한 나뭇가지 아래로 몸을 피하기도 전에 흠뻑 젖어버렸지만 후련했다. 한기가 들도록 서늘했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물끄러미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을 내려다본다. 이 작은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내어주지 못하고 무엇 때문에 구차하게 들고 온 것일까? 반 마리가 들어있는 후줄근한 봉다리처럼 초라한 심령이 보인다. 늘 후회하면서도 제자리를 맴도는 부끄러운 심사다.

  

홀로 서 있는 그 나무 아래서 빗물처럼 스며든 주님의 마음이 감추어둔 속내를 슬그머니 꺼내 보이신다. 딱히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도 없는 부화가 부글부글 치밀고 있었다. 몸이 그렇게 되도록 까지 착하기만 한 언니(동서)에게도 화가 나고, 그런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그야말로 반기를 들고 싶을 만큼 속이 상했다. “네가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느냐?”… 참으로 못난 인생이 하늘을 향하여 씩씩거리고 있었다.

  

내 영혼이 상황에 짓눌려 찬양을 잊은 것이다! ‘, 나의 하나님! 연약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성령의 단비를 내려 투정 부리는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씻어 주십시오!” 기도를 드리기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다함이 없는 주님의 사랑을 헤아려본다.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는 주어진 삶의 소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고 있다. 비록 정강이는 잃었지만 원망하지 않고 맑은 영혼으로 살아가도록 보살펴 주셨다. 기쁨도 즐거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오늘을 선물 받았으니 모두 감사의 예배를 드릴 일이다. 할렐루야 아멘!

 

▲ 김송자 선교사

필자를 소개하는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선교사로 지칭될때가 가장 그녀답다고 느껴진다. 필자는 20세에 브라질로 이민가서 억척으로 일해 부를 일구었으나 극적상황을 통해 부부가 함께 빈민촌 선교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헌신적으로 상파울 판자촌 빈민들을 섬겼으나 그 판자촌 강도들에 의해 남편은 처참히 살해되어 저수지에 던져졌음에도 그녀는 그 판자촌으로 되돌아가 빈민구제에 한결같이 임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이 훌쩍 흘러 필자는 이제까지의 삶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남편 없이 세 아이를 키워 낸 엄마, 사업체를 이끌어온 CEO,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라질 현지 선교에 한결같이 임해온 김송자 선교사의 글은 시인의 섬세한 필력도 돋보이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강인함으로 일궈 왔다는 점에서 문학을 뛰어넘는 큰 영적 감동과 도전이 있다.

 

저서로는 자서전인 <광야 40년>과 산문집인 <풀꽃의 노래>, <상파울에서 부르신 하나님>, <작은 빛이 되리라> 등 총 6권이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