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긴 머리 소녀
김송자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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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07 [08:2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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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황순원의 단편소설<소나기>을 배경으로 한 짧은 음악 영상물을 보았다. 양평 어딘가의 몰락해 가는 양반 윤 초시 댁 증손녀와 가난한 시골 소년 사이의 순진하고 풋풋한 사랑 이야기다. 소설은 병약하던 소녀가 갑자기 삶을 마감하면서 비극적으로 끝난다. 한줄기 소나기처럼 짧게 끝나버린 안타깝고도 순수한 사랑을 그린 작품은 영화로,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란 노래로, 또 중학교 교과서를 통하여 널리 알려져 있다.

 

감상한 음악은 배경 분위기와 사뭇 동떨어진 듯했지만 의미는 잘 전달되었다. 맑은 개울에 손을 담그고 물장난을 하는 영상 속 소녀의 천진한 모습은 마음을 머물게 했다. 개울 둑에 앉아 이제나 저제나 비켜주기를 기다리며 답답해하는 까까중머리 소년의 난감한 표정은 희미해진 영화 속 장면을 불러왔다. 그렇다, 소녀는 벌써 며칠째,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목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다. 어제까지는 개울 기슭에서, 오늘은 소년이 건너야 할 징검다리 한가운데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누군가 “사랑은 필연必然을 가장한 우연”이라 하였던가? 먼 길 돌아온 두 사람은 운명의 징검다리에서 마주한다. 소녀의 빨간 구두 앞에 주눅 든 검정 고무신 소년은, 수줍은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하고 난처해한다. 도망가는 소년의 감추어둔 속내를 고스란히 훔치기라도 한 듯, 해 맑은 미소로 눈 둘 곳 모르는 마음을 품는다. 차오르는 애틋한 감정을 억누르며 무관심의 동굴 속으로 스스로 움츠러드는 소년의 작은 등줄기를, 게으른 봄날처럼 따사로운 소녀의 눈길이 어루만진다.

 

내 마음 어느새, 영상 속 아이가 되어 신은 신발을 벗고 개울물에 발을 담근다. 동글동글 세월에 닳아진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다, 아련한 기억 저편으로 무명 반바지 소년을 조심조심 따라 가본다. 간 세월 탓하지 않고 다소곳이 가라앉아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는 작은 돌멩이에 아로새긴 노래하나를 건져 내었다. 무심히 들려주려던 노래가 이토록 명치끝이 아리고 콧잔등을 시큰하게 할 줄이야 난 들 알았겠니? 바보같이 나약한 모습을 너에게는 보여 주고 싶지 않았는데, 미처 마음을 보듬을 틈도 없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내가 왜 이러는지, 너는 당연히 모르겠지? 잊은 줄 알았던 시간들이 명주실처럼 풀어지며 느닷없이 숨통을 조이고, 산 그림자 같은 서러움이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야! “……개울 건너 작은 집에 긴 머리 소녀야……” 이 광야 어디쯤에서 나를 버리고 여기까지 온 것인지……? 꿈도 많고 호기심도 많았던 소녀는, 어느 모진 구비를 돌아오느라, 그 고운 날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왔을까? 싶다. 찰랑거리던 긴 머리가 억새처럼 변하도록, 나는 마음 하나 둘 곳 없고, 숨을 곳도 없는 세상이 무서웠다.

 

결 고운 노랫말처럼 정말 이 세상 험한 징검다리를 “......눈먼 아이처럼 귀 먼 아이처럼 조심조심……” 등신等神처럼 건너왔다. 돌아온 굽이굽이 마다 얼마나 참담하고 처절한 모래바람이 불었는지 네가 어떻게 짐작하겠니? 깊은 바다로 떠난 연어가 돌아갈 길을 영영 잃어버린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내일은 또 어떤 모양으로 찾아 올까 두려웠다. 날개 잃은 새, 다리마저 부러뜨리는 인생들 틈에서,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를 만큼 뼛속까지 시리고 아픈 날들이었다. 그래서일까 난 여전히 영악靈惡한 인생들이 낯설다.

 

너는 “왜? 하나님께서 계시면……” 이란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때는 나도 날마다 하늘을 향해 비슷한 질문을 던졌었다. 왜냐고……? 왜, 그리하셔야만 하는지...... 내가 얼마나 더 울면 이 눈물이 멈출 것인지 물었다. 가끔은 “이렇게 만신창이를 만들고 속이 시원하신지?” 묻기도 했다. 여쭈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었다. 그러나 이젠 없다! 고난의 까닭을 알았고, 벼랑 끝에 선 위태한 날들마다 한 번도 나를 외면 한 적이 없었고, 나보다 나를 더 아파하며 날 다듬어 가시는 손길의 실체가 현현顯現 하셨기 때문이다.

 

땅에서 나서 육신으로 살다 육신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흙에서 나온 몸을 입었으나 하늘을 살도록 다듬으신 것이다. 그러기에 한 없이 여린 나도 여기까지 왔고, 또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오늘의 내가 있다. 아픈 날들을 통하여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배웠고,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 잊고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잠시 안타까워한 것은 내일을 살기 위하여, “영원한 오늘”을 살지 못했던 회한이다. 이젠 오늘의 삶이 내일의 예언豫言 임을 알아 하루하루를 너와 나, 또 주변을 품고 사랑하며 살고 싶다.

 

허울 좋은 겉치레의 옷을 벗고 들어가 보는 동심童心의 개울물에, 얼 비추인 노을의 잔영 같은 내 낯선 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그러나 나 다시 살아도 이 삶을 살 것이다. 아리디 아린 시간을 통하여 슬픈 별들이 남몰래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알았고, 성난 파도에 부서지는 갯바위의 몸부림이 무엇인지 알았다. 잔인한 겨울 강을 건너 새봄이 오듯, 무참히 짓밟히던 길섶 무명초도 꽃망울을 맺는다. 영의 눈을 뜨게 해주시어, 근원根源을 찾았고, 실체實體를 만났으니, “그 은혜가 내게 족하다!”

 

하늘이 들어 쉬었다 갈, 맑음과 순전純全함을 품은 산골 소년의 순수한 영혼이 나를 쉬게 한다. 참 사랑은, “나의 가장 귀한 것을 주는 것이라” 하더라! 내가 목숨처럼 여기며 품고 온 “ 흰 돌”을 너에게 꼭 주고 싶다. 영원히 네 가슴에 초롱이 품어야 할 존귀한 돌이다. 그리고, “형체도 없는 저 물 뿌리를 알 수 없다 하였지?” 가자……! 일어나 손 꼭 잡고 이 징검다리 건너, 세기世紀를 말없이 흐르는 저 강의 근원지根源地로 가자! 지식知識과 재덕才德을 겸비兼備한 너에게 없는 한 가지, 모든 것의 모든 것인 실상實相을 만날 것이다.

 

그날 그곳에서는 혼인예식이 있을 것이다. 

네가 건너야 할 징검다리에 시름들이 앉아 있던 아이가, 

이 세상에서 너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선물이다!

 

필자 소개

 

▲ 김송자 선교사

필자를 소개하는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선교사로 지칭될때가 가장 그녀답다고 느껴진다. 필자는 20세에 브라질로 이민가서 억척으로 일해 부를 일구었으나 극적상황을 통해 부부가 함께 빈민촌 선교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헌신적으로 상파울 판자촌 빈민들을 섬겼으나 그 판자촌 강도들에 의해 남편은 처참히 살해되어 저수지에 던져졌음에도 그녀는 그 판자촌으로 되돌아가 빈민구제에 한결같이 임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이 훌쩍 흘러 필자는 이제까지의 삶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남편 없이 세 아이를 키워 낸 엄마, 사업체를 이끌어온 CEO,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라질 현지 선교에 한결같이 임해온 김송자 선교사의 글은 시인의 섬세한 필력도 돋보이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강인함으로 일궈 왔다는 점에서 문학을 뛰어넘는 큰 영적 감동과 도전이 있다.

 

저서로는 자서전인 <광야 40년>과 산문집인 <풀꽃의 노래>, <상파울에서 부르신 하나님>, <작은 빛이 되리라> 등 총 6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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