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그대 이름은
김송자 선교사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19/07/17 [03:33]  최종편집: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하룻밤 꿈처럼 지나온 세월이 참 많이도 흘러갔다. 살아온 날보다 더 조금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보는 날이 많아진 것을 보니 철이 들어가나 보다. 끝까지 여물지 않을 땡감처럼 찬 서리가 내리도록 부질없는 것에 퍼렇게 날을 세우고 온 듯하다. 애써 돌아보지 않아도 진중하게 살아내지 못한 소중한 순간들이 저만치 어른거린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고리처럼 거울 속 내 얼굴에 중첩되는 어머니 모습이 익숙해져 간다. 

 

이따금, 텅 빈 들녘처럼 몰아 쉬는 한숨의 이유를 묻던 자리에 어느새 내가 서 있다. 어머니의 대답은 늘 하나였다. 갈잎 같은 미소와 함께“그저”라고 하셨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듣는 나에게는 모두가 너무나 소소한 것들이었다. 뒤늦게 왜, 그런 것들은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하시고 싶으신지 되묻곤 하였었다. 당신의 순례를 마치고 본향으로 떠나신 후에야 골 깊은 한숨의 연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해묵은 반짇고리에 숨어있던 낡은 공책에, 표지가 닳도록 품고 계시던 성경책 갈피에 애절함을 담아 놓으셨다. 하나뿐인 손아래 동서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자부에게, 자식들에게 다하지 못한 사랑과 그리움을 빼곡히 적어놓으셨다. 문득 생각이 날 때마다 이어 적은 듯한 글들은 군데군데 얼룩진 자국이 선명했다. 보고 싶은 이들을 만나서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이 소상히 적혀있는 보내지 못한 편지도 여러 통이 있었다. 당신이 간절히 바라고 그리던 것들을 사소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생의 나이테가 하나씩 늘어가면서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들이 어머니에게는 소중한 꿈이고 가장 돌아가고 싶었던 시간이었음을 알았다. 꽃나무를 손질하다가, 텅 빈 집을 서성이다가,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다가도 불효했던 기억들이 회한 찬 심중을 틀어쥔다. 강인한 여인으로 굴곡진 생을 말없이 살아내며 얼마나 많은 꿈을 접어야 했을지는 가늠해보기도 버겁다.  아득함이 차오를 때마다 펼쳐놓았을 낡은 공책 속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쩌면 그것은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지탱하는 방편이고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또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고 본디의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도 연약한 인생이라 하나님을 부여잡고 가면서도 주저앉고 싶은 날이 많았을 것이다. 가혹한 삶에 짓눌려 누리지 못한 일상이 시간이 허락한다면 어머니가 다시 살아보고 싶은 이유다. 나는 왜, 옹기 그릇처럼 소박한 꿈을 이루어드리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몇 해 전 뒤뜰의 잔디를 두어 평 걷어내고 손바닥만 한 텃밭을 일구었다. 채소를 심고 꽃나무를 가꾸며 어머니가 그토록 살아보고 싶어 했던 길을 찾아간다. 정원에 어울리지 않는“들깨 씨”를 뿌린다며 짜증을 내고, 이름 없는 꽃을 심는다고 불평하던 마음이, 그야말로 “촌스럽게” 고추씨, 배추씨, 상추씨를 마구 뿌린다. 서툰 손짓으로 파종을 하며 눈물을 뿌리고, 애지중지 모종을 옮겨 심으며 후회를 한다. 왜, 진작 이리하지 못했는지 천만번 돌아보아도 송구할 가슴이 미어진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아들이 묻는다! 내가 무심히 던지던 질문을 어느새 장성한 아들이 한다. 다행히 나처럼 불평은 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몰아 쉬는 한숨 사이로 새 나온 어정쩡한 대답은 “응, 그냥……”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일일이 설명할 수 없어 “그저”라고 하셨을 엄마! 아무렇지도 않은 소소한 것에서 의미를 찾고 잊어버린 기쁨을 회복하는 섭리를 발견하였을 것이다. 일상에서 누리는 “소박한 행복!” 그 무엇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하나님 선물임을 절감한다.

 

삶의 끝자락까지 고이 간직하셨던 어머니의“소박한 꿈”속으로 천천히 따라 들어가 보니 “행복이란”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에서도 섭리와 의미를 발견하고, 창조주의 지혜와 명철로 살아가며 주어진 일상의 분복을 누리는 것이었다. 신앙과 삶의 경륜을 통하여 은총 받은 자의 삶을 살아가는 법을 몸소 보여주시며 불효자식을 축복의 문으로 인도하고 싶었던 어머니의 간절함을 읽는다. 

 

참으로 지혜롭고 현숙한 여인이다! 누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질까! 이생이 깊어가는 가을의 능선에서, 오고 오는 세대를 위하여 자식이 무엇을 하여야 할지 걸어가신 자국마다 새겨 놓았다. 한 생을 다 내어 주고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시며 척박한 마음 밭에 생명을 심어 놓고 굽이마다 환한 미소와 애달픈 흔적을 남기셨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다함이 없는 주의 사랑을 아낌없이 나누다가 긴 그리움으로 나를 흘러가는 그대 이름은 “어머니” 박꽃 같은 나의어머니, 예수그리스도로 행복한 신부의 발자취를 조심조심 따라갑니다!

 

필자 소개

 

▲ 김송자 선교사

필자를 소개하는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선교사로 지칭될때가 가장 그녀답다고 느껴진다. 필자는 20세에 브라질로 이민가서 억척으로 일해 부를 일구었으나 극적상황을 통해 부부가 함께 빈민촌 선교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헌신적으로 상파울 판자촌 빈민들을 섬겼으나 그 판자촌 강도들에 의해 남편은 처참히 살해되어 저수지에 던져졌음에도 그녀는 그 판자촌으로 되돌아가 빈민구제에 한결같이 임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이 훌쩍 흘러 필자는 이제까지의 삶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남편 없이 세 아이를 키워 낸 엄마, 사업체를 이끌어온 CEO,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라질 현지 선교에 한결같이 임해온 김송자 선교사의 글은 시인의 섬세한 필력도 돋보이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강인함으로 일궈 왔다는 점에서 문학을 뛰어넘는 큰 영적 감동과 도전이 있다.

 

저서로는 자서전인 <광야 40년>과 산문집인 <풀꽃의 노래>, <상파울에서 부르신 하나님>, <작은 빛이 되리라> 등 총 6권이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