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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읽기(31) - 하나님, 내게 귀빈대접을 해주시다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가 우리를 보듬어 주신다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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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04 [15:5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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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 다시 읽기

 

가장 애송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암송까지 해왔던 구절을 대할 때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치 주기도문을 달달 암송하고 고백하지만, 그 뜻을 물으면 망설여지는 것처럼, 익숙한 본문 앞에서도 주춤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시편 23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면서 눈앞에 입체적으로 이 시가 담고 있는 현장이 다가오는지요? 온 감각이 자극되는 지요? 몸으로 이 시편이 느껴지는지요? 아니라면 이 시편을 처음 대하듯이, 그때 그 사람들이 느꼈을 그 세계로 시간 여행을 떠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들에서 꼴을 뜯던 양과 염소가 다시 목자의 장막으로 돌아오면, 물과 꼴을 제공받는다. 이것을 시편 23편에서 시인은‘상’으로 묘사한다.     ©김동문 선교사

 

성경 속으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

 

이 시를 읽으면서 시에 등장하는 3가지 장면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상, 기름, 잔 같은 소품도 확인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 바닥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 식사하던 그 옛날, 상(식탁)을 이용하여 식사하는 경우는 아주 존귀한 이들의 몫이었습니다. 평민들은 그런 기회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에서도 서민들의 식사는 바닥에서 이뤄졌습니다. 왕도 식탁에 앉아 식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기능의 식탁용 탁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상’은 오늘날로 치면 보조 탁자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 ‘상’은 다윗 왕 당시 최고의 문명을 구가하던 이집트에서도, 심지어 파라오도 등받이가 없는 걸상에 앉아, 음식을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크기의 보 조 탁자를 사용할 뿐이었습니다. 귀족들의 경우에도,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걸상에 앉아 탁자 위에 놓인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잔치 자리에서 탁자(상)를 사용하는 권한은 대단히 존귀한 존재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별상을 받는 것은, 잔치 자리에서도 예외적인 사람만이 누리는 혜택이었습니다. 잔치에 초대 받는 것도 큰 명예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바닥에 그 서열을 따라 자리 잡았을 뿐입니다. 큰 잔치가 열리는 경우에도 모든 손님이 앉을 수 있는 큰 식탁은 없었습니다. 돗자리를 펴 놓고 앉아야 했습니다. 음식은 손을 사용하여 먹었습니다. 식사 때 사용하는 이 탁자의 높이는 높지 않았습니다. 무릎 정도까지 오는 정도로, 음식을 올려놓는 기능으로 사용했습니다. 이 시절, 떡 상의 존재는 왕실이나 일부 귀족들이 사용할 수 있는 아 주 드문 것이었으며, 같은 식탁에 앉아 함께 식사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렇게 별상 대접을 받는 귀빈은 의자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별 상을 받은 사람은 잔치 자리에서도 모든 사람의 눈길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시고 : 유목민 천막에 초대받아 가거나, 유목 전통을 지키는 가정에 초대 받아 갈 때면, 식사를 전후하여 손을 씻을 물을 제공받습니다. 천막에 들어가 자리에 앉기 전에 장막문 곁에서 족장 아들들이 미리 준비된 물을 내 손에 부어주었습니다. 손으로 준비된 양고기 음식을 먹기를 마치자, 다시금 따스한 물을 내 손에 부 어 주었습니다. 

 

▲ 새끼 염소를 품에 안은 유목민 아이, 대개 6개월 이상된 양이나 염소는 목자를 따라 들로 나가지만, 어린 것은 목자의 천막 주변에도 돌봄을 받는다.     © 김동문 선교사

 

옛날에는, 잔치집이나 가정(장막)에 초대받았을 때, 식사 자리에 손님 을 맞이하기 위하여 손님의 머리에 귀한 올리브기름을 발라주곤 했습니다. 잔칫집에서 손님을 극진한 맞이할 때의 장면입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잔치에 초대한다, 잔치 자리에 맞아들이다 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환영, 환대의 표현이었습니다. 올리브기름을 바르고 발을 씻기고 잔치용 옷을 갈아입히는 등의 장면은 권세 있는 잔치 자리의 풍경입니다. 여기에, 손님맞이 환대 모습이 있습니다. (손)발 씻을 물을 제공, 거룩한 입맞춤으로, 어깨를 어긋 맞겨서 맞이하고, 머리에 올리브기름을 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은 존귀로 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아예 화관(재 대신 화관을...)이라고 불리는 기름 넣은 모자를 머리에 씌워주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은 왕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잔치 자리에서 내내 잔치에 초대받았거나, 잔치의 주인공의 머리에, 잔치 내내 향을 뿜어내는, 향유가 가득 담긴 통을 머리에 쓰는 것을 뜻합니다. 잔치 자리의 주빈, 귀빈을 그렇게 대접했습니다.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 8:5)”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 까지 내림 같고(시 133:2)”

 

내 잔을 가득 채워주시고  : 다윗 왕이 살던 시대 는 금잔이나 은잔, 청동 잔 같은 금속으로 만든 잔은 그야말로 왕실에 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귀족들이라고 하여도 진흙을 구워서 만든, 채색도 하지 않은 초벌구이한 토기 잔이었습니다. 이런 잔은 재질에 관계없이 귀한 것이었습니다. 10센티미터 x 15센티미터 안팎 정도하는 작은 잔이었습니다. 이런 잔에 술이나 그냥 찬물만 담아 마셔도 품위 있는 삶으로 간주되는 것이었습니다. 잔을 가득 채움을 받는 다는 것은, ‘존귀한 자로 인정한다’는 표현입니다. 그것도 잔을 가득 채움을 받는 다는 것은 극진하게 환대를 받음, 잔치의 주인공으로 높이 추겨 세움 받음을 말합니다.

 

▲ 광야의 전통 유목민 천막은, 때때로 양떼만을 위한 천막으로 사용된다. 이것은 주인의 장막이며 동시에 양떼의 우리이다. 염소털로 짠 검은 빛의 천막은, 통풍과 환기, 보온이 완전한 주거공간이다.   © 김동문 선교사

 

다시 생각하기

 

시 23편은 목축현장과 도시 공간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 잔치 자리를 이중으로 보여줍니다. 잔치 자리의 귀빈과 잔치집 주인, 나와 하나님, 목자와 양을 비교해줍니다. 이 3가지 장면을 떠올리며 이 구절을 다시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이 장면은 광야에서 꼴을 뜯다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은 삶의 위협을 목자 덕에 넘기고, 주인의 장막에 돌아와 주인의 보살핌을 받는 양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다치고 놀란 가슴의 양에게 별도로 꼴을 제공하고, 상처 부위에 올리브기름을 발라주고, 구유(물통)에 마실 물을 가득 부어주는 목자, 그의 돌봄을 받는 양의 풍경을 다시 그려봅니다. 

 

양이 추위와 더위, 맹수의 위협, 물난리 등 온갖 위험을 벌어날 수 있었던 것은 양의 능력이나 지혜 덕분이 아닙니다. 온전히 목자의 지혜와 수고 덕분입니다. 동일하게 우리도 그런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보듬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최고로 대우해주시고, 최선을 다해 우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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