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남은 자의 몫
김송자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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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03 [07:5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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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서 뿌리를 내린 작은 묘목들을 정원에 옮겨 심으며 작은 뿌리들의 신비로움과 강인함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씨앗이 잉태한 생명이 움트고 파리한 잎새가 빛을 향하여 머리를 들도록 까지 어둠의 긴 터널에서 나름 답답해하였을 것이다. 계절을 맞추어 심은 것도 아니고, 제대로 환경을 조성해 준 것도 아니지만 기어이 까치발 돋움을 하며 모양새가 잡혀가고 있었다. 이제는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뜻을 펼치라며 구덩이를 파고 심어 주었다.

 

씨앗에서 발아한 것들이야 그렇다 치고, 바닥에 널브러져 짓밟히던 가지들을 주워다 화분 귀퉁이에 꽂아 놓은 것들도 튼실하게 자랐다. 잔인한 시간을 견뎌서일까 붉게 타오르는 잎새가 꼿꼿하게 하늘을 향하고 있는 포인세티아는 늠름하기까지 하다. 홀연히 꺾여 고통을 당하며 피 같은 하얀 수액을 쏟아내며 뒹굴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당당히 일어나 나무의 구실을 하도록 까지 얼마나 외로운 투쟁을 하였을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도록 까지 절망의 깊은 나락에서 사투를 벌였을 것이다. 치열한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일은 누가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저기서 남은 자들의 아픈 이야기가 들려온다. 경험한 바로는 세상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아내를 잃은 지인은 당신이 간 그곳은 평안한지물어본다. 남편을 잃은 작가는 슬픔이 너무 무거워 나눠 가질 수 없다라고 하였다. 필자는 옆 지기가 떠난 줄 알았더니 내가 떠났다고 하였다.

 

세월이 가야 한다고, 세월이 가면 된다고, 그래도 산 자는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힘을 내라는 맥없는 언어들이 무성한 간이역에서 모든 것이 멈추어버린다. 홀연히 찾아온 적막의 밤은 영영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으로 이어지며 잿빛 하늘은 숨통을 조일 것이다. 기적도 울지 않는 녹슨 기차가 어렴풋이 남은 여정을 주행하여야 한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쯤에서야, 그 숱한 말들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세월이 가도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허술하게 잊히는 것이 아니다. 잔인한 현실은 언제나 오늘의 일처럼 빗물에도 바람에도 덧없이 실려 와서 마음을 틀어쥔다.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참담한 생의 벼랑 끝에서 마주하는 세상 바다는 금방이라도 삼켜버릴 듯 무섭게 덤벼든다. 심령이 막막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의 긴 터널을 지나다, “내니 두려워 말라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까지 고난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처절하게 무너져 내린 마음은 기도도 할 수 없다. 조각난 마음을 추슬러 주님을 부르기까지 날마다 천만 길 수렁을 경험한다. 십자가의 주님을 주목하고 묵묵히 따라가는 날이 도래하면 잔인한 상처의 흔적이 서서히 아물어 간다. 죽은 듯 얼어붙은 가슴에 봄을 가꾸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며 온기를 회복하고 생명을 잉태한 본연의 모습을 찾아간다. 긴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잎새마다 이별의 설움이 승화되어 말간 그리움으로 맺힌다.

 

함초롬한 잎새를 피우기까지 한 많은 세월을 살아내야 한다. 그곳에 이르면 아프긴 하였지만, 충분히 살아낼 가치가 있는 삶임을 노래하게 된다. 어쩌면 식물들도 땅속에서 이 음부의 깊음을 이겨내고 생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통하여 싱그러움에 이르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애달픈 일들이 타의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은 정말 기막힐 노릇이다. 요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 당혹스럽게 한다.

 

누군가는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은 자들이 일이라고 한다. 한 때 필자도 그렇게 생각하였던 적이 있었다. 인간이기를 포기 하기 전에는 자행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걸어본 길이라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이유야 어떠하던 남은 자들의 고통은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살아있다 하나 죽은 것 같고, 죽은 듯하나 여전히 살아내야 할 삶이 있어 그야말로 이 땅에서 생지옥을 경험한다.

 

모든 것이 하룻밤의 꿈이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수 천 번 참담한 꿈 속에서 깨어나는 요행을 갈망하게 된다. 누가 무슨 권리로 그리한단 말인가?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남은 가족들의 생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이다. 무슨 연유로 그토록 아픈 대가를 지불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도록 하는가 말이다. 그날은 일상이란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날이다. 뼈아픈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단조로운 일상이 누려야 할 분복이고 천국인 것을 몰랐다.

 

지금도 세상 저편의 누군가는 원치 않는 상황 앞에서 애통하고 있을 것이다. 밀려오는 회한, 낙망과 좌절,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리며 용서라는 과제 앞에 당도하기 전에 털썩 주저앉을 것이다. 그래도 살아내야 한다. 이것이 엄중한 소명이다. 자신을 찍은 도끼에 향을 묻히는 향나무처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도록 까지 살아내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어도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며, 세상 바다를 걷게 하시는 분이 그곳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기가 막힌 이별의 슬픔도, 회한도, 말간 그리움으로 맺히고 고난이 축복의 향기로 바뀌도록 까지 살아내야 할 남은 자의 몫이다.

 

                  필자 소개

 

▲ 김송자 선교사     ©크리스찬투데이

필자를 소개하는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선교사로 지칭될때가 가장 그녀답다고 느껴진다필자는 20세에 브라질로 이민가서 억척으로 일해 부를 일구었으나 극적상황을 통해 부부가 함께 빈민촌 선교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헌신적으로 상파울 판자촌 빈민들을 섬겼으나 그 판자촌 강도들에 의해 남편은 처참히 살해되어 저수지에 던져졌음에도 그녀는 그 판자촌으로 되돌아가 빈민구제에 한결같이 임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이 훌쩍 흘러 필자는 이제까지의 삶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남편 없이 세 아이를 키워 낸 엄마사업체를 이끌어온 CEO,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라질 현지 선교에 한결같이 임해온 김송자 선교사의 글은 시인의 섬세한 필력도 돋보이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강인함으로 일궈 왔다는 점에서 문학을 뛰어넘는 큰 영적 감동과 도전이 있다.

 

 저서로는 자서전인 <광야 40>과 산문집인 <풀꽃의 노래>, <상파울에서 부르신 하나님>, <작은 빛이 되리라등 총 6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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