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머물다간 자리
김송자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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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12 [06:1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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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발달로 참으로 편리한 일상을 누리긴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와 불필요한 소식들은 어느새 공해가 되었다. 주말만이라도 오롯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금요일 오후부터 모든 통신망을 꺼놓기 시작했다. 고요한 마음으로 묵상하고 사유하고 관조하니 성령의 감동도 확연해지고 범사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눈곱만한 개미들이 진드기의 아미노산을 발라먹으러 섬약한 가지를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것도 보이고, 어디에다 두었는지 모르던 사물들의 위치파악도 분명해졌다. 사소한 것들이지만 나를 되찾은 느낌으로 가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앗불싸, 너무 행복했던 탓일까? 월요일 아침 노트북을 집에다 두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주말에 노트북 가방을 열어보지 않아 까맣게 잊어버렸다.

 

문득, “초기치매 증상이 아닌가 생각을 하다가 오래전 일이 생각나 웃었다. 학부모 모임에 가려고 옷은 잘 차려입고 구두는 앞모양이 다른 짝짝이를 신고 간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아래쪽으로 모이지 않도록 가능한 가까이서 인사를 하며 위기를 모면했었다. 무언가에 몰두하면 가끔 이런 엉뚱한 사고를 치기도 하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여러 가지 생각이 넘나든다.

 

얼마 전 친구는 무선전화기를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종일 찾아 헤맸는데 나중에 보니 냉장고에 있었다고 한다. 어느새 이런 것들이 남의 이야기도 웃을 이야기도 아닌 듯하다. 자식들의 이름을 어떻게 바꾸어 부를 수가 있는지 물어보던 사람이 이제 세 아들의 이름을 줄줄이 봉창한다. 그렇게 기억 속으로 아스라이 사라지는 것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고 서서히 삶도 생각도 단순해 질 것이다.

 

내일이 어떤 모양으로 다가올 것인지 누구도 호언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총명하고 슬기롭던 엄마가 잔인한 운명처럼 홀연히 정신 줄을 놓았었다. 막내인 나에게 아는 사람 같긴 하지만 자신이 낳은 자식인지는 모르겠다고 하시어 난감했었다. 필름이 뚝 끊어져 버린 듯 타이머신 여행이 시작되고,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날들로 되돌아가, 떠난 지 사십여 년이 지난 고향산천을 종일 맴돌았다

 

장에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일곱 살 때 세상 떠나신 아버지를 기다리기도 하였고, 무논의 황소를 몰고 와야 한다며 아재를 부르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은듯했지만, 한가지 놓지 않는 것이 있었다. 돌변한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몰라 찬양을 불러 드리면 손을 흔들며 따라 부르셨다.

 

당신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것들이 맥없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지만 주님만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환한 미소를 띄우시며 행복해하셨다. 자식들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 추억을 따라다니시다가, 사방에 호랑나비들이 날아다닌다며 저 고운 나비들이 보이지 않느냐 시던 날까지 사셨다.

 

혹독하리만치 고달픈 한 생을 사셨지만 늘 조신하고 꼿꼿하게 눈물도 한숨도 보이지 않으셨다. 언제나 아침처럼 고요했던 그 심령 깊은 곳에서는 한 많은 눈물 강이 흘렀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강인함은 당신이 심어 놓은 뒤뜰의 꽃처럼, 내 삶의 지표로 피어나 오늘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할지 돌아보게 한다.

 

보릿고개를 넘고 초년에 남편을 잃는 환란을 당하고 홀로 오 남매를 부여안고 험난한 세상 바다를 헤쳐오셨다. 의지할 곳 없었던 그늘진 삶 속에서 원통한 가슴을 안고 말없이 숨어든 곳은 아둘람 굴, 주님의 은밀한 품이었다. 긴 세월 지칠 줄 모르던 엄마의 찬양은, 그레고리안 성가 비스름하게 높낮이가 없었지만 혼자는 감사가 넘치고 목이 메도록 간절했다.

 

당신의 기도는 두서가 없어 하나님께 그저 부끄럽고 송구하다며 쑥스러워하셨지만, 골방의 간구는 가뭄을 모르는 개울물처럼 밤이 맞도록 도란도란 흘렀다. 격조가 없어 숨어 부르신다던 찬송과 기도가 생명수의 마중 물이 되어서, 목마른 후손들이 돌아와 마실 주님의 생명 샘을 열어 놓았다. 그리고 오늘 주님은 다함이 없는 사랑과 생명 수의 강으로 우리를 흐른다.

 

어린아이들이었던 손주들의 장성한 가슴에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넘나들던 치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기도하고 찬송하는 고벨화 같은 신앙인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각인된 어머니! 당신이 머물다간 고달픈 삶의 자리에서 눈물로 뿌린 신앙의 씨앗이 주님의 은혜로 꽃이 피고, 이제 후손들의 심령에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다.

 

잔인한 운명을 살아내며 하늘길을 열어 두고 광야를 걸어야 할 후손들에게 인생의 바람이 어떻게 불어오던 피할 곳은 주님의 품이라고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고난의 동굴에 갇혀 홀로 눈물을 흘리며 탄식할 것이 아니라 호흡이 있는 동안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하늘 문을 여는 아둘람이 되게 하고, 머물다 가는 자리마다 오고 오는 세대를 위한 시온의 대로를 열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하며 에셀나무를 심으란다! 할렐루야 아멘!

필자 소개

 

▲ 김송자 선교사     ©크리스찬투데이

필자를 소개하는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선교사로 지칭될때가 가장 그녀답다고 느껴진다필자는 20세에 브라질로 이민가서 억척으로 일해 부를 일구었으나 극적상황을 통해 부부가 함께 빈민촌 선교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헌신적으로 상파울 판자촌 빈민들을 섬겼으나 그 판자촌 강도들에 의해 남편은 처참히 살해되어 저수지에 던져졌음에도 그녀는 그 판자촌으로 되돌아가 빈민구제에 한결같이 임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이 훌쩍 흘러 필자는 이제까지의 삶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남편 없이 세 아이를 키워 낸 엄마사업체를 이끌어온 CEO,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라질 현지 선교에 한결같이 임해온 김송자 선교사의 글은 시인의 섬세한 필력도 돋보이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강인함으로 일궈 왔다는 점에서 문학을 뛰어넘는 큰 영적 감동과 도전이 있다.

 

 저서로는 자서전인 <광야 40>과 산문집인 <풀꽃의 노래>, <상파울에서 부르신 하나님>, <작은 빛이 되리라등 총 6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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