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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전도 전략이 절실하다”
교회는 늘었으나 교인은 줄고 있는 현실...교회의 신뢰성 회복 앞서야
황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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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04 [14:4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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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를 벗어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창의적 전도가 요구된다.     © 크리스찬투데이


성령강림절에 재조명해 보는 ‘전도’

 

믿는자들에게 성령강림절은 기독교의 그 어떤 절기보다 더욱더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이날은 예수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로 <사도행전>에서는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기 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 전하고 있다. 그렇게 50일이 지나 그 약속대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오셨다. 이날부터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을 증거하는 성지가 되었다.

 

이 같은 의미를 가진 성령강림절에 우리는 한 단어를 떠올려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전도’다. 성령이 임해 예수를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된 우리는 그 약속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전해야 할 사명을 가진다. 그러나 요즘 전도하는 사람도 보기 힘들거니와 그 방법도 2019년이나 2009년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오렌지카운티 지역에서 20년간 마켓 앞에서 전도지를 나누어 주고 있는 A 권사는 해가 갈수록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이 있다. 오늘도 전도지를 내민 손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기도가 부족한 모양이야”라고 말한다. A 권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를 알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더 일찍 나오고 전도지를 나눠주는 지역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푯말을 들면서 전도를 하는 C 집사 역시 10년 전과 바로 1년 전 반응이 다 다르다며 무엇보다 사람들의 외면이 시간이 갈수록 더 크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원인을 외적인 부분보다는 내적인 부족함을 말한다. 지금 들고 있는 배너나 마이크 음량이 조금 더 커진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기도가 부족하고, 들고 있는 푯대가 낮아서 전도가 안 되는 것일까? 물론 그런 생각들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살펴볼 부분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패러다임의 변화다. 기독교계에서는 지난 20년간 교회 커뮤니티의 변화에 주목했다. 그것은 교회수가 늘지만 교인이 준다는 현상이다. 지난해 한 기독언론이 발표한 한국 교단 통계에 따르면 예장통합은 1년 새 교인이 약 6만명이 줄고 목회자는 오히려 590명이 늘었다. 감리교의 경우는 8년 연속 교인이 줄었지만, 교회는 오히려 79개가 늘어났다. 대체로 다른 교단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한때 크리스천이지만 교회를 나가지 않는 성도를 가리켜 ‘안 나가’를 거꾸로 읽는 ‘가나안 성도’라는 시대적 풍자는 지금도 별반 다름이 없다.

 

이것은 곧 지금 시대에 실천하는 ‘전도’가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이냐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교회의 성장은 곧 전도의 전략과 수행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기서 전략이란 대상, 훈련, 방법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요소는 항상 시대적 흐름과 패러다임의 변화와 직면하게 된다. 인원과 대대적 행사가 수반되는 대규모 전도 프로그램이 효과를 냈던 시대가 있었다. 70년대를 경험한 성도들이라면 한국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를 기억할 것이다. 1973년 5월 31일부터 열린 전도 집회는 마지막 날인 6월 3일 약 110만명의 성도가 결집해 전 세계 크리스천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시대의 전도는 어떻게든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게 하는 것에 집중된 경향이 짙었다. 이로 인해 일선에 서는 전도자들에게 교회는 그야말로 전쟁과 같은 각오를 심어주게 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전도폭발’, ‘특공대’, ‘전도 총동원’ 등과 같은 군사용어들이 전도의 현장에서 선호되기 시작했다. 2000년 중반 이후 교계 일부에서 이 같은 표현의 순화를 요청하고 나서기도 했지만 2019년인 지금도 이런 표현을 쓰는 교회들이 적지 않다. 이는 곧 교회의 방향과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그룹에서 여전히 ‘규모의 전도’나 획일적인 프로그램을 통과한 잘 훈련된 병사를 내세워 현장에서 전도 특공대로서 활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또한 “과거에 해보니 그게 먹히더라”라는 생각도 깨지기 힘든 것 같다.

 

한국교회는 케리그마적 전도에 몰두

 

김남식 박사(서울신대)는 한국 교회의 전도 패러다임과 관련 영국 신학자 C.H. 다드의 견해를 예로 들며 한국 교회는 대중에서 구원의 소식을 알리는 케리그마적 전도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박사는 한국교회의 전도는 일단 사람을 데려오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로 인해 건물과 부대시설에 더 많이 집중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진단을 내렸다.

 

전도에 대한 일방적인 밀어붙이기 전략, 전도자들에게 전투의 병사를 요구하는 교회, 그리고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는 모습들은 결국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앞서 지적한 교회는 늘었지만, 교인은 줄고 성도지만 교회에 나오지 않는 ‘가나안’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전도는 앞으로 어떤 방향을 걸어야 할까? 전문가들은 전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받아들이고 실천해 나아가길 당부한다. 말이 무척 어려운 것 같지만 지금까지 실천해 온 것들에 변화를 준다면 패러다임의 전환은 생각보다 쉽게 다가올 수 있다.

 

먼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며 일단 교회로 오게 만드는 전략에 대한 검토와 수정이 필요하다. 이 같은 방법을 고수해온 입장에서는 전도가 안되는 이유를 ‘기도의 부족’, ‘도구의 확장’에서 찾는다. 이 때문에 더 큰 마이크와 시설을 원하고 배너의 높이와 크기도 커진다.

 

교회 신뢰성 회복이 전략의 으뜸

 

하지만 일방적인 전도가 먹히지 않는 이유는 이제 전도 대상자가 교회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LA 지역 마켓에서 노방전도를 하는 C 장로는 “요즘 사람들 교회를 너무 잘 아니까 교회를 더 멀리하더라. 전도가 더 어려운 것 같다”고 언급한다. 이 말은 곧 교회의 신뢰성과 연결된다. 이 때문에 전도는 우선 교회의 신뢰성 회복에 중점을 둔 전략으로 바뀌어 나가는 것이 좋다. 한 예로 무조건 교회로 나오라는 전도지 배포보다는 교회 구성원들이 정기적 봉사운동을 펼치며 지역사회에 영향을 주고, 그와 같은 선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불신자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주며 복음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면 이는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전도에 있어서 70년대 스타일의 전투용어 사용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여성을 비롯해 한인 차세대들에게 더욱 교회를 멀리하고 반감을 가지게 만드는 요인일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표현을 강요하며 따르게 강제하는 것은 지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보다 더 다양한 계층을 수용하고 전도자들에게 더 많은 참여 기회를 주고자 한다면 이제는 바뀔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단지 세상이 변하는 것에 맞춰 교회가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비록 전환의 기반은 될 수 있겠지만 결국 한 영혼을 구원해오는 것은 프로그램이나 트렌드 수용과 같은 외적인 부분이 아닌 결국 복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 인류는 사회 문화 경제 전반에 걸쳐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놓여있다. 교회의 지속과 성장에 영향을 주는 ‘전도’ 역시도 이 같은 시대를 비껴갈 수는 없다. 과거로부터 배울 것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이나 해봤던 방법만을 고수하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교회 수와 반비례로 느는 교인 수의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성령강림절을 맞아 초대교회 성도들이 경험한 성령을 지금 어떻게 전도하고 알릴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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