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잡초를 하나씩 손으로 뽑는 마음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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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15 [02:1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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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호 목사(후러싱제일교회, NY)

사순절은 생명의 봄을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며칠 전 예배당 앞에 개나리꽃을 담은 화분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봄이 예배당 안에 일찍 온 것 같습니다. 봄이 오면 옛날 같으면 텃밭을 가꾸기 위한 준비를 하기도 하고 집 앞 잔디 잡초를 뽑을 생각으로 급했었는데 앞마당이 없는 교회사택에서 살다보니 잡초 뽑는 고생도 없지만 그런 재미는 없기도 합니다. 사순절 마음의 잡초를 뽑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 사순절, 내 마음의 잡초를 손으로 느끼며 하나씩 뽑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어느 집사님이 말씀 묵상 나눔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는 것이 잔디의 잡초를 뽑는 것 같은데 기계로 확 밀어버리기 보다는 하나씩 손으로 뽑아야 진정 참 회개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벌써 오래전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여 생각해 보니 나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평생 살아왔는데 정작 내 구원의 문제를 소홀히 한 것 같아 두렵다. 더욱 기도와 말씀에 그리고 말씀에 순종해야 겠다”는 고백을 한 일이 있습니다. 저는 인생의 가을 벌써부터 그 마음이 있습니다.

 

한동안 교회다니는 사람들도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대해 많은 말을 했습니다. 가끔 저도 세속의 것들을 훌훌털고 그 분처럼 산속에서 텃밭을 가꾸며 차 한잔 마시는 인생을 그려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 소시민적 행복추구를 탓할 것은 못됩니다. 그러나 내려놓고 떠날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이 때로 무책임이며 이기적인 사치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무소유’나 ‘내려놓음’, 그 속에 엄청난 삶의 진 리가 담겨져 있지만 삶은 때로 잔인한 현실이기만 합니다. 먹고 사느라 애를 쓰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진리를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무소유’도 때로 가질 수 있는 자들의 허세일 수 있고 ‘내려놓음’도 가졌다는 것을 과시하는 교만일 수 있습니다.

 

4세기경 세상권력과 하나가 되는 로마교회를 떠나 이집트 사막으로 들어갔던 수도승들의 가르침 가운데 “진정한 수도자들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장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우리처럼 세상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수도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란 95% 세상 땅 바닥을 밟으며 살아가신 것이고 5% 정도는 사람들을 피해 조용한 곳에서 보내셨습니다. 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요즘 제가 올해에 은퇴한다는 거짓뉴스가 떠돈다고 합니다. 거의 40년 가까이 목회를 했기에 그런 말이 가능할 것 같기는 하지만 정년은퇴까지 10년은 남았습니다. 언제보다는 어떻게 남은 목회를 제대로 잘할 것인지만 관심가질 뿐입니다.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목회를 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80년대 젊은 시절 ‘현실을 잘 모르는 급진적인 목사’ 또는 ‘좌경화 된 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고 살았는데, 중년에 들어 이민교회로서는 대형교회 목회를 하면서는 전혀 반대되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교회 권력층 마피아’라는 말도 들었고 가까운 후배는 제 목회를 ‘제왕적 목회’라고 노골적으로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다행이도 뉴욕에 와서 목회한지 4년 가까이 되는데 그런 평가는 받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젊은 목회자들이 뭐라도 배울 것이 있다고 여기고 무슨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길을 물으러 찾아오는 자리에도 이른 것 같아 감사할 뿐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내게 잃어버린 것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것들은 나이가 들음에서 오는 것도 있고 좋은 의미에서 현실을 품는 성숙함에서 오는 것들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예수님이 내 목회의 중심이 되는 본질을 놓치면서 생긴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목회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있기에 사순절이 시작되면서 마음의 잡초를 조심스럽게 하나씩 뽑고 싶은 것 같습니다.

 

내 삶을 후회와 고민으로 채우기보다 늘 새롭게 감사와 기쁨으로 채우고 싶습니다. 법정께서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시작을 위해서 우리는 사순절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의 여행길에서, 성금요일 십자가에서 예수님 만나고 부활의 새벽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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