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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는 돼지고기 먹지 말라는데...
삼겹살 좋아하는 한국인, 그것도 크리스천인데 ‘먹어?’ ‘말어?’
황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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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02 [02:5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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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서 먹지 말라고 했던 돼지. ‘금기’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지금 시대와 살펴볼 필요가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신년을 맞아 교회 멤버들이 모이는 저녁 식사 자리에 나간 A 집사. 모처럼 고깃집에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메뉴를 시키는 중에 멤버 중 하나가 “황금돼지해니까 돼지고기를 시키자”고 했고 대부분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B 집사가 “성경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무슨 돼지고기”라고 반대를 걸었다. 처음에 웃자고 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지만 이내 성경 논란으로 이어졌다.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다”는 것과 “그런 건 잘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 기쁘게 만난 자리는 서로 얼굴을 붉히며 헤어지게 됐다. 그런데 성경에서 정말 돼지를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유대인들이 떠돌던 팔레스타인 지역은 유목에 어울리는 환경을 지녔다. 차갑게 저장하지 않으면 이내 상하는 돼지고기와 같은 것은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돼지고기를 알게 된 것은 이방인을 통해서라고 보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방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그들은 바빌론의 포로 생활을 하면서 이방인의 문화와 생활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돼지는 어쩌면 이방인의 음식이자, 그들을 상징하는 문화 자체로 비쳤을지 모른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돼지에 가진 거리낌은 성경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그중에서 돼지와 관련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씀은 <레위기>  11장 말씀이다. 7절과 8절은 “돼지는 굽이 갈라지고 그 틈이 벌어져 있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짐승의 고기를 먹어서도 안 되고, 그 주검에 몸이 닿아서도 안 된다”라고 한다. 아마 지금을 사는 크리스천 돼지고기 마니아들이 들으면 무서운 표현이다. 


성경적으로 이것을 풀어내려는 이들은 사실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당시 시대상을 반영해 당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있어서 돼지라는 것이 위생 또는 유대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동물이라는 것에는 대체로 같은 의견을 모은다. 특히 성경에서 언급한 ‘굽이 갈라지고 틈이 있으나 새김질하지 않으므로 부정한 것이다’라는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레위기에서 말한 굽이 갈라진 동물로 소, 양, 염소를 생각할 수 있다. 이들과 돼지의 차이점은 바로 ‘새김질’이다. 이것을 하고 안하고가 당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었을까?  

이것의 진위는 유대인 음식에만 붙는다는 코셔(Kosher) 인증을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지금도 뉴욕이나 LA 대도시에 자리한 코셔 인증 식품점에서는 돼지를 팔지 않는다. 역시 같은 이유인데, 돼지는 되새김질하지 않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행위를 하는 동물인 소, 양, 염소의 공통점은 사람이 직접 먹기 힘든 마른 풀, 강한 섬유질 등을 몇 번이고 되새김질을 해 소화해낸다. 다만 돼지는 비교적 섬유소가 적은 먹이를 먹어야 하므로 기르는데 큰 비용과 노력이 든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되새김질에 따른 기르는 비용 때문에 가축을 거르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각 동물에 맞춘 사료 등이 보편화했기 때문. 그러나 사람도 먹을 것이 없는 시대에  풀도 먹지 못하는 돼지와 같은 동물은 꼭 성경에서 금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반가운 가축은 아닐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물고기 역시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어야 코셔 인증을 받는다. 물고기 중에 비늘이 없는 종류는 상어나 고래와 같은 것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오징어와 문어와 같은 것들은 비늘과 지느러미도 없다. 그래서 이들 물고기는 코셔가 아니다. 이 내용도 잘 살펴보면 당시 중동 지방에서는 구경하기가 불가능한 어종들이다. 만약 상어나 고래 고기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바다 건너 이방에서 온 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을까? 

‘돼지’여서 먹지 말라는 것은 그 안에 담긴 ‘금기’ 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당시에 누군가 돼지 사육에 성공해 시장에서 독점권을 갖게 된다면? 혹은 오징어, 문어와 같은 어종을 수입해서 한 몫 단단히 챙길 수 있었다면? 혹은 ‘유대인이라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라는 결속 감이 없었다면? 되새김하는 동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겨보는 의미를 더하지 못한다면? 이 모든 가정이 사실도 됐다면 아마 유대인의 뿌리는 지금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지금 시대에 돼지 사육은 그렇게 비위생적이지도 않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 당장 사람 먹을 것도 없어 돼지를 기르는 것이 사치인 시대도 아니다. 당신이 만약 ‘유대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라는 결속 감을 지켜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돼지’를 금기시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반영되는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성경에 말씀 따라 먹고 안 먹고는 사실 어떤 것이 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이 글을 보는 당신이 신약을 거부하는 유대교인이 아니고 개신교를 믿고 삼겹살을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면 생각의 폭을 넓혀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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