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아버지와 사라진 신발
"나의 잊지 못하는 크리스마스 추억은 이렇습니다"
박영실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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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07 [02:2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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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실 사모
대형 마켓마다 포인세티아 나무들이 꼬마 병정들같이 줄을 지어 서 있다. 크리스마스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세월이 박음질해 놓은 흔적들이 서랍장 깊은 곳에서 호흡하고 있다. 그곳에 숨겨놓은 추억 한줌 꺼내며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일이 있다. 이 계절이 되면 나의 유년 시절에 한 획을 남긴 신발에 얽힌 사연을 잊을 수가 없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지상에서 아버지를 뵐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아버지의 사랑이 오롯이 담긴 나의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 생각난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 둔 어느 날, 마을에 많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마을 풍경은 동화 속 그림이었다. 동네를 온통 하얀 솜사탕으로 발라 놓은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준비를 위해 교회에 가려고 하는데 현관에 있던 내 신발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그 당시에 교회를 다니지 않으셨다. 그래서 내가 교회에 갈 수 없도록 내 신발들을 감춘 줄 알았다. 나는 급한 마음에 신발이 없는 상태로 양말만 신고 눈 속을 걸어서 교회에 갔다. 그 눈 속을 어떻게 걸어갔는지 모르겠다. 그날 밤, 온 몸에 심한 열이 났고 몸살감기를 앓기 시작했다. 발은 동상에 걸렸고 그 후로 오랫동안 고생을 해야만 했다. 어머니의 기도와 민간요법이 지속되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완치되었다.
 
왜 신발이 없어졌는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그날, 아버지께서는 내가 교회에 갈 것을 미리 아셨던 것이다. 그래서 내 신발을 따뜻하게 하려고 아궁이에 놓으시고 외출을 하신 상태였다. 내 신발은 아궁이에서 따듯하게 준비되면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던 나는 성급한 마음에 눈이 쌓인 길을 맨발로 교회에 갔다가 동상에 걸린 것이었다.
  
지천명이 된 지금도 크리스마스 계절이 되면 신발장에 놓여 있는 신발들을 보면서 아버지의 우체통에 편지를 띄운다. 수취인이 없어 반송되어 올 우편물이지만 난 오늘도 여전히 아버지의 우체통에 그리움의 우표를 붙인다. 이제 이 지상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더 이상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겨울 추위와 세상 바람결에 얼룩진 나의 신발을 아궁이에 갖다 놓으며 언제나 따뜻하게 해 주실 것 같다.
 
성탄을 맞으며 잠시 상념에 잠긴다. 유년 시절, 나의 어린 마음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아들을 보내시기까지 날 사랑하신 하나님의 그 심정을 더 깊이 헤아리길 원한다. 과연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 시대의 성탄을 맞이하면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기를 소망한다. 특별히 마음이 상하고 가난한 자들, 사망의 그늘 안에 놓여 있는 자들, 불가항력적인 상황 앞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자들에게 임마누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길 원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 세계 곳곳에 흩어진 난민들과 모든 세대,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빛이 비춰지길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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