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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읽기(24) - 예수는 실제로 태어나셨습니다
목자 · 동방박사의 예수 탄생 축하는 혈통과 사회적 장벽 뛰어넘은 복음 상징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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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27 [08:3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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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언제나 등장하는 친숙한 그림과 장식이 있습니다. 마굿간 배경으로 아기 예수님이 마리아의 품에 안겨 있거나 말구유에 누워 있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 말을 비롯한 양과 몇 마리 가축들이 등장합니다. 마리아, 요셉이 목자들, 머리에 관까지 쓴 화려한 옷차림의 ‘동방박사 세 사람’이 자리를 채웁니다. 그리고 그 마구간 주변은 눈 내린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이 장면은 성경이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절도 맞지 않고, 목자와 동방박사의 만남도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눈 내리를 겨울 성탄절은 더더욱 적절하지 못한 상상일 뿐입니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눅 2:7)라고 적고 있을 뿐이다. 오해를 풀기 위하여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 낙타. 사막을 횡단할 때 거의 유일한 이동 수단이다. 동방박사들은 이 낙타에 가득 짐을 싣고 먼길을 오갔을 것입니다(요르단 사해).     © 김동문 선교사

예수는 AD 0년에 태어났습니다?
 
"예수의 나심으로 BC와 AD가 나뉘었습니다. 30세가 되던 30년에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33년에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언급에 따른다면, 예수님은 AD 0년에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냐고요? 예수님 탄생 배경은 가이사(아구스도)가 황제로 다스리고, 헤롯(대)왕이 유대의 왕으로 다스리던 시절의 어느 날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옥타비아누스로 잘 알려진 황제입니다. 통치 기간은 기원전 37년부터 기원후 14년입니다. 그런데 헤롯왕은 언제 통치했을까요? 기원전 37년부터 4년까지 33년간입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통치 시기가 만나는 시점은 기원전 37년부터 4년까지입니다. 헤롯(대)왕이 통치하고 있을 때 태어난 예수님은 최소한 기원전 4년 이어야 합니다. 게다가 성경은 동방박사를 만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다 죽이라고 명령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것을 고려하면 예수의 탄생 연대는 기원전 4년 이전 6년 사이가 될 것입니다.

▲ 구유. 자연 동굴을 다듬어서 생활공간과 동물의 구유로 사용하곤 했다. 예수탄생의 구유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헤브론 광야).     © 김동문 선교사

아기는 말구유에 누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 현황에 대한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베들레헴 인구는 최대 300명 정도였습니다. 종교적 중심지 예루살렘은 거주 인구가 최대 3만 명이 되지 않았고요. 걸어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예루살렘을 오가는 사람들이 굳이 베들레헴에 숙소를 잡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기반을 둔 고의 종교인이나 부자들의 제수용품 양과 염소를 위탁받은 삯을 받는 목자들이었습니다. 이 3백여 명의 주민도 몰려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오래전의 화전민 마을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살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사는 곳도 일반 가옥이 아니라 자연 동굴을 중심으로 형성된 곳이었습니다. 많아도 30~40가구가 안되었을 것입니다. 각 집에 새로 태어난 아기가 있었다면 몇 명이나 되었을까요? 
 
‘구유’는 마구간의 말구유가 아닙니다. 베들레헴에서는 당시 말이나 소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또한 베들레헴이나 예루살렘은 물론 헤브론도 겨울철에는 눈이 내립니다. 50센티미터 1미터가 넘는 폭설도 쏟아집니다. ‘이른 비’로 표현하는 늦가을에서 초겨울이 되면 들에서 양을 치더라도 밤을 그곳에서 보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목자의 삶은 그야말로 3D 업종이었습니다. 최소한 낮이건 밤이건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는 직업이었기 때문입니다. 양떼를 훔쳐가려는 도둑은 물론 맹수와 맞서야 했습니다. 더위와 추위도 일상적이었습니다. 게다가 품삯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처지였고, 사람들은 그들을 백정 취급했습니다. 

▲ 눈에 덮힌 예루살렘.     © 김동문 선교사

페르시아에서 점성술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다”는 짧은 표현 안에는 3, 4개월이 넘는 긴 거리를 온 동방박사의 쉽지 않은 여정이 담겨 잇습니다. 물론 동방박사 세 사람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몇 명인지 알 수 없는 이들은, 파르티아 제국의 조로아스터교 사제 즉 점성술사로 이해합니다. 당시 파르티아 제국은 로마 제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적대 국가였습니다. 그 이동 거기가 자그마치 비행기로도 3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육로를 이용했을 텐데, 족히 3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당연히 낙타를 이용하여야 했고, 여행 중의 추위와 더위, 강도의 위협을 넘어서 예루살렘을 오갔을 것입니다. 그 먼 길을 오가면서 이들을 지키던 호위무사, 낙타에 잔뜩 실려 있는 장거리 여행을 위한 물품을 떠올려 보세요. 이들의 옷차림새와 말투, 분위기를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언어가 달랐습니다. 생김새도 달랐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소동을 벌입니다. 무슨 소동일까요? 다짜고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만나겠다는 것입니다. 70세 가까운 헤롯왕에게 새로운 왕자가 태어났다는 말입니까? (헤롯왕은 기원전 74년부터 4년까지 70년을 살았습니다.) 후계자조차 견제하던 헤롯왕이나 헤롯왕의 뒤를 노리고 있던 왕자 진영 모두에게 동방박사들의 말은 논쟁거리였습니다. 예루살렘 경계를 서던 로마군도 긴장하기는 마차가지였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예루살렘에 소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 목자. 옛날부터 목자는 천직이고 힘든 직업이다. 추위와 더위, 도적과 맹수의 위협, 낮은 평판 속에 살아야 했다(유대광야).     © 김동문 선교사

맺는 말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 탄생을 축하한 이들은 목자, 동방박사입니다. 혈통을 절대시하는 이들에게 이방인 그것도 이교도 이방인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평판과 질서를 강조하던 유대인에게 목자를 율법을 지키지 않고 거짓을 일삼는 부정탄 존재였습니다. 이들의 축하를 받은 것이 전부인 예수 탄생 축하 현장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예수 탄생은 바로 그 멀리 이방 땅에서 조차 혈통의 벽을 넘어 사회적 경계를 넘어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하나님나라 복음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수 탄생은 동화입니까? 역사는 역사답게 읽어야 합니다. 동화가 아닌 역사로 예수 탄생을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중동 지도 위에 동방박사의 여정도 표시하고, 그 옷차림과 먹거리, 탈거리도 표시하고, 목자의 삶도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동방박사는 누구일는지, 목자 같은 이는 어떤 이일는지 되새겨보면 좋겠습니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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