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선교
선교현장의 목소리⑯ 우간다 김성환·박마리아 선교사
하나님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송금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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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31 [06:3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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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에 왔을 때 국민의 1/3이 에이즈환자였습니다. 왕성한 젊은이들은 죽고 어린이들과 노인들만 남았었습니다. 내전이 끝난 지 오래 되지 않아 지방에는 여전히 반란군이 남아 있었습니다.”
 
▲ 김성환 선교사와 부인 박마리아 선교사.
아프리카의 진주라 불리는 우간다는 아프리카의 심장부에 위치해 있다.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출발한 나일강은 남수단, 수단, 이집트를 거쳐 지중해로 흘러들어 가는 아프리카의 젖줄이다. 현재 우간다에는 르완다, 콩고, 수단, 부룬디, 소말리아 등 주변 국가들에서 불안한 자국의 정세를 피해 들어온 난민들이 가득하다.
 
1994년 아내와 6살과 4살 된 두 아들을 데리고 우간다에 첫발을 내디딘 김성환 선교사. 그는 처음엔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러 우간다에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자신이 우간다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한국인들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잘 소화시키는 법을 압니다. 그곳에 하나님을 모시고 갔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간섭은 이미 우간다에서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지도자가 외부에서 간 것이 아니라 그곳의 지역사회에 이미 지도자가 있었고 그들을 만나 동역하게 하심을 깨달았습니다.”
 
처음 선교지에 도착해 막막하기만 했던 사역의 시작을 하나님께서는 김 선교사 부부의 가진 달란트를 놓치지 않으셨다. 김 선교사는 도착하기 1년 전 우간다의 장로교단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학교의 교장으로 가게 되었다. 건물 하나 변변히 없는 학교였다. 건축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김 선교사는 수업이 비는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차를 몰고 달려가 돌과 모래를 실어 나르는 열정을 쏟아 부은 결과 얼마 되지 않아 본관건물도 번듯하게 갖추었으며, 3년제 정식 학교로까지 성장하게 되었다. 
 
김 선교사는 교실을 이용해 교회를 개척했다. 그리고 깨끗한 물이 항상 귀한 곳이기에 학교 안에 펌프를 설치하고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했다. 족히 2,000명도 넘는 주민들이 학교 펌프를 이용했다. 박마리아 선교사는 학교가지 않고 노는 어린이들과 성년들을 위해 초등학교와 성인 직업훈련학교를 설립해서 운영했다. 
 
“지도한 학생들이 이제는 성년이 되어 사회각계에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일원으로 받아 주었고, 우리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지역사회와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 건축이 진행 중인 건물에서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지난 2000년 김 선교사 가족은 우간다를 떠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안식년을 갖기 위해 LA로 갔다. 이 기간 동안 김 선교사는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에서 Ph.D과정을 밟고, 박 선교사는 클레어몬트대학원에서 DMA(음악) 과정을 공부했다. 
 
1년의 안식년을 마치고 이듬해인 2001년 우간다로 다시 돌아온 김 선교사 가족은 이전의 성경대학 사역은 다른 선교사들에게 이임한 관계로 보다 전문화되고 보다 높은 단계의 신학과 음악의 지도자양성과 선교훈련을 위한 교육을 생각하게 된다.  
 
이를 위해 김 선교사는 지방과 주변 나라의 신학교육을 위해 뛰기 시작했다. SOW(Seminary On the Way) 프로그램을 위해 부룬디에 갔을 때는 저녁에 숙소에 오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대포 쏘는 소리에, 반군이 도시로 몰려들어 오는 상황의 한가운데 있기도 했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졸업생들과 연계되어 그들과 함께 동역을 했습니다. 멀리 떨어진 지방도시를 가는데 중간에 반란군 출몰지역이 있어서 차로 이동할 때는 군인의 호위를 받았고, 혹은 경비행기로 넘어서 가기도 했습니다”
 
박마리아 선교사는 교회 음악인들의 친교모임을 시작해서 점차 음악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아프리카 음악인들이 모여 세미나, 그룹토론, 그룹작곡, 연주 등을 열어 활기를 북돋았다. 점차 소문이 퍼져 다양한 음악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음악대학을 위한 움직임으로 발전해 나갔다.
 
“박 선교사는 우간다 최고의 국립대학인 마케레레대학(Makerere University)의 MDD(Music, Dancing & Drama)과에서 가르쳤습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많았지만 교육 시설은 엉망이었습니다. 피아노는 망가진 체 방치되어 있었고, 외국에서 악기를 기증받기도 했지만 관리가 되지 않고 지도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여러번 해보았지만 번번이 관료주의에 막혀 좌절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독자적으로 음악대학을 추진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선교대학(ASIS=Africa School of Intercultural Studies)과 음악대학(AIM=Africa Institue of Music)은 우간다 교육부 산하 고등교육위원회에서 영국식 학제에 따라 Certificate, Diploma, Advanced Diplom 등의 학사 동등 인가를 받게 되었다. 현재는 정식 학사와 석사과정을 목표로 계속 발전해 가고 있다. 

▲ 지난 10월 열린 AIM 졸업생 발표회에서 박마리아 선교사의 지휘 아래졸업생들이 합창하고 있다(페이스북 Africa Institute of Music 페이지캡처).     © 크리스찬투데이

음악대학에서는 서양고전음악, 현대음악(밴드음악), 아프리카전통 음악을 종합적으로 가르친다. 성경개론, 기독교세계관, 영어 문법 및 작문 등 기초과목도 가르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악기를 가져와 두 개의 오케스트라를 운영할 정도란다. 아프리카 전통음악 연주팀인 ‘하나님의 북(Ngoma ya Mungu)’은 이미 한국 7회, 중국 2회, 미국 1회의 연주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음악과 성경, 신학, 선교를 전문적으로 가르칠 신실하고 능력 있는 선생님들이 턱없이 부족해 이를 놓고 기도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에 모이는 아공모(아프리카공부모임)는 여러 다른 배경과 단체의 선교사들이 함께 모여 현지 언어와 문화, 아프리카, 선교, 역사, 철학 등을 진지하게 공부한다. 일년에 한 차례는 종교개혁500주년, 동아프리카부흥운동과 같은 제목을 가지고 포럼도 개최하며 출판도 한다. 김 선교사는 이를 발전시켜 연합신학대학원 추진과 우간다 자체 내의 석사와 박사 과정을 개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성환 선교사와 박마리아 선교사는 언젠가 아프리카가 세계선교의 주체가 되는 날이 오기를 꿈꾸고 있다. “건물보다는 사람을 먼저 세워야 하고, 바른 선교신학이 실천에 앞서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아프리카교회가 이웃, 지역, 대륙, 세계의 선교를 책임지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아프리카교회가 자립을 넘어 신학의 체계를 세워나간다면 땅 끝과 세상 끝까지 선교의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아프리카교회가 가난해도 신앙이 바로 서고 성숙해 가는 한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물과 땀, 기도와 간구를 기억하시고 이루실 것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인 아프리카 선교를 오늘도 아프리카의 한 작은 마을에서 묵묵히 써내려가고 있는 김 선교사 내외가 꿈꾸는 날이 오기를 함께 기도하며 기대해 본다.
 
주소: P. O. Box 23155 Kampala, Ug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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