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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읽기(23) - 예루살렘에 공중 화장실은 있었을까?
공중 화장실 있었으나 뒷처리 문제는 ‘글쎄’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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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30 [08:22]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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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로마인과 유대인은 화장실 사용도 “따로따로”

▲ 데가볼리의 하나였던 벳샨의 공중변소, 귀족들은 별도의 1인실 화장실을 사용했다.  © Housesteads Roman Fort(영국 바든 밀)

낯선 곳을 가다가 급하게 화장실을 가야할 상황이 벌어지면 그야말로 난감합니다. 마음과 몸은 급하기만 한데,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상황이 그렇습니다. 공중화장실을 찾지 못하거나 찾았을 때라도 이용 대기자가 많을 때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일상은 등교하거나 출근을 준비하는 아침 시간. 집안에 있는 화장실은 바쁘기만 합니다. 그래서인지 좋은 집의 조건에 화장실수가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가난한 이들이 화장실이 딸려있는 집에 살지 못합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집에 화장실을 갖춘 가정이 많지 않았습니다. 도시의 달동네 지역은 마을 공중변소를 사용했습니다.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 지금은 물론 지난 시절에, 동네 주민들이 공중변소를 사용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야 하는 풍경이 곤혹스럽습니다. 어떤 나라 어떤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강가나 시내물가, 들판에 나가 줄지어 볼일을 보는 진풍경도 벌어집니다. 방뇨의 문제보다 배변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우리에게 화장실 사용은 일상에서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성경에도 화장실이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조금 낯선 주제를 낯선 방식으로 다룹니다. “예루살렘에 공중화장실은 있었을까?”를 떠오르는 질문을 제기하는 식으로 다룹니다. 정답을 찾기 위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너무 당연한 것에 궁금함도 질문도 없이 읽는 성경읽기를 돌아보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성경 속으로

▲ 로마인들의 공중변소 이용법과 뒤처리 도구 및 목욕용품(이스라엘 벳샨)   © 김동문 선교사

성경에서 화장실 이용 풍경을 묘사하는 구절이 이렇습니다. 노천 화장실 이용 풍경이 떠오를 것입니다.
 
네 진영 밖에 변소를 마련하고 그리로 나가되, 네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볼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려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신명기 23:12, 13)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예수 시대 고대 이스라엘 지역의 도시에 변소는 어떤 형편이었을까요? 집 건물 안에 변소를 갖춘 집은 얼마나 있었을까요?  그 옛날 화장실이 딸려있는 집에 살던 이들은 지극히 소수였습니다. 로마식 도시에는 간단한 수세식 공중변소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도 공중변소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로마인을 위한 편의 시설이었습니다. 그 로마인을 위한 화장실을 유대인이 사용할 수 있었을까요? 이방인과 상종하지 않던 유대인이 로마인과 변소를 같이 쓴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로마의 공중변소는 엉덩이를 까고서 앉아서 볼일을 보았습니다. 물론 로마 귀족들을 위한 1인실 화장실이 따로 존재했습니다. 유대인은 통으로 짜진 겉옷과 짧은 치마(?) 바지를 입었습니다. 유대인은 엉덩이를 다른 이에게 노출하는 것을 극한의 수치로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로마 공중변소는 유대인들에게 출입이 통제되었습니다. 
 
문득 많은 이들이 오고가던 예루살렘의 화장실 사용이 궁금합니다. 예루살렘 주민들, 방문자들, 근무자들의 화장실 사용은 어떠하였을까? 예루살렘은, 화려하게 지어진 예루살렘 성전이 자리한 거룩한 도시였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흩어진 유대인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찾았습니다.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로마 제국의 총독부의 힘이 느껴지던 곳이었습니다. 평소 2, 3 만 여 명이 살던 종교 도시였습니다. 유월절을 비롯한 절기가 되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번잡한 곳이었습니다. 공중변소 문제는 도시 밖, 성 밖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널려있는 들판에서 적당하게 일을 치렀을 것입니다. 결국 도시 안, 성 안에서가 문제였습니다.

▲ 데가볼리의 하나였던 벳샨의 공중변소, 작지 않은 규모였다. (이스라엘 벳샨)     © 김동문 선교사

그렇다면 유대인만을 위한 공중변소가 있었을까요?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공중변소가 있었는지는 드러난 것이 없습니다. 물도 귀했고, 화장지도 없이 왼손을 써서 뒤처리를 했습니다. 그 왼손은 냄새가 나곤 했습니다. 그래도 깨끗하게 씻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더러운 왼손으로 거룩한 것을 만져서도, 왼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어서도 안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공중변소가 있었다고 해도 문제가 있습니다. 성전 방문자에 비해 그 규모가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을 이용하여 그 뒤처리를 하는 풍경도 낯설게 다가옵니다. 먹을 물도 귀한 시절에 제사용 물도 귀하기 그지없던 형편에, 화장실로 물을 낭비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유대인 제사장들은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성전을 찾는 이들은 정결탕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으로 스스로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성전 구역에 뒤처리를 위한 화장실이 자리할 수 없었습니다. 급하게 용무를 봐야하는 이들은 어찌했을까요? 이방인의 뜰이나 아예 성전 구역을 벗어나 뒤처리를 하러 갔을까요? 그런데 뒷일을 처리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부정한 상태였습니다. 다시금 정결의식을 치러야 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결탕 근처에 공중변소가 있었을 것이라 추론하기도 합니다.
 
제사장들이나 성전 종교인들은 변소를 어떻게 이용했을까요?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면서 금기가 있었습니다. 이방인이 출입하는 곳을 자유롭게 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중변소가 이방인의 뜰에 있었다고 가상한다면, 그것을 제사장이 출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들 전문 직업 종교인의 화장실 이용은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여자의 뜰이나 이스라엘 남자의 뜰에 공중변소를 만들었을까요? 그렇게 하기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의 공중변소나 화장실을 이용했을 때라도, 번거로운 뒤처리가 과제였습니다. 배변 이후의 뒤처리도 뒤처리였습니다. 더하여 더러워진 몸을 다시 정결케 해야 했습니다. 화장실 이용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신진대사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제사장이나 직업 종교인들은 아무래도 직업병에 시달리지는 않았을까요? 과도하거나 진지하게 정결의식의 실천하려는 이들에게, 예루살렘 체류나 방문은 그야말로 곤혹스런 일이었을 것입니다.

▲ 데가볼리의 하나였던 벳샨의 공중변소, 귀족들은 별도의 1인실 화장실을 사용했다.(이스라엘 벳샨)     © 김동문 선교사

다시 생각하기
 
성경을 특정 시대 특정 지역에 살던 이들의 일상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성경은 자습서나  문답집으로 본다면, 우리는 틀에 박힌 정보만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때 그 자리로 들어오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궁금한 것만큼 그 시대를 살던 이들의 삶의 자리에 머물 수 있습니다. 당연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느린 성경읽기도 필요합니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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