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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읽기(21)- 솔로몬 성전 놋 바다와 물두멍
54톤 이상의 거대한 양의 물을 성전으로 길어올린 이들의 수고 기억해야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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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28 [01:4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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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을 길어나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     © 김동문 선교사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성경 본문의 길고 짧음이나 특정 단어의 사용 빈도 등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짧은 표현에도 긴 기간, 깊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가 단지 숫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솔로몬 왕이 세운 성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가운데 ‘놋 바다’로 부르던 물그릇이 오늘의 관찰 과제입니다. 놋바다나 물두멍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에 주목합니다. 그런데 이 주제를 다루면서 갖는 어려움은 실제 모습을 사진으로 소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글은 모두 관련 사진 자료를 사용했는데 말입니다.
 
성경 속으로

▲ 품앗이를 하며 벽을 쌓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     © 김동문 선교사

구약성경 열왕기상 7:23절-26절에는 이스라엘 왕국의 3대왕 솔로몬이 지었다는 신전 건축물에 대한 소개가 담겨있습니다. 그 가운데, 놋 바다가 나옵니다. 물 저수조(물 대야)로 부를 수 있는 ‘놋 바다’는 지름이 5미터, 높이 약 2.5미터에 달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둘레는 장정 8명 이상이 둘러쌀 정도로 큰 약 15미터 정도(왕상 7:23)였습니다.
 
1. 45톤이나 되는 바다같이 엄청나게 많은 물이 담겨있던 ‘놋 바다’
 
이 물 대야(놋 바다)는 제사에 사용할 물을 담아두는 그릇이었습니다. 이 그릇에 담겨 있는 물의 용도는 무엇인가요? 제사장들이 자기 몸을 씻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놋바다에는 얼마 만큼의 물을 담아둘 수 있었을까요? 이 물 저수조(놋 바다)에 담겨있는 물의 양은 ‘2,000 밧’(7:26)이었습니다. 최대 3,000 밧(역대하 4:5)으로 적고 있습니다. 1천 밧은 얼마만큼의 용량일까요? 1밧은 22.7리터입니다. 그렇다면 45,400리터(최대 68,100리터)의 물이 담겨있었던 것입니다. 45톤(최대 68톤)이나 되는 물, 엄청난 양입니다.
 
그래서 이 많은 양의 물을 보고 바다로 불렀던 것입니다. 그 옛날 성경에서 바다로 번역되곤 하는 단어는 ‘많은 물’이라는 뜻으로도 사용했습니다. 놋으로 만든 물 저수조에 바다같이 많은 물이 담겨있었습니다.  뚜껑이 없는 물 저수조에 가득히 채워져 있는 물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느낌이 다가오는지요?
 
2. 물을 길어나르던 이들
 
그런데, 이 물은 어디서 길어다 부어놓은 것일까요? 이 물을 길어 날라야 했던 이들(느디님 사람들, 여호수아 9:27절)은 얼마나 수고를 했을까요? 한 번에 길어 나를 수 있었던 물의 양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어떤 도구를 이용하여 물을 날랐을까요? 물지게 같은 것이 있었을까요? 물통은 있었을까요? 물통의 재질은 금속이었을까, 토기였을까요? 한 번에 30리터의 물을 길어 날랐다고 하여도, 1500번을 아니면 2300번을 오가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30리터의 물도 무겁습니다. 나귀나 수레를 동원했을까요? 집 안에 펌프가 없던 시절,  수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던 그 시절에, 도시에서는 수돗가에서 아침저녁 물을 길어나르던 생각이 납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나르던 시절도 떠오릅니다. 한국의 오래전보다 더 오래전인 3천 년 전 예루살렘의 형편은 더욱 열악했을 것입니다.
 
물을 길어 나르는 것도 문제지만, 또 어려운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높이가 2.5 미터나 되는 이 물 대야에 물을 붓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솔로몬 성전 구역까지 물을 길어나르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그 물을, 솔로몬 성전 북동쪽 가까이 있었을 베데스다 연못이 아니라 성전 남동쪽 기드론 골짜기의 기혼 샘에서 물을 길어 올려야 했다면 어떤 장면이 연출되었을까요? 몇 백 미터 정도나 되었을까요? 그 거리감은 물론, 경사진 것 등을 생각하면, 물 긷는 이들이 겪었을 힘겨움에 아찔한 느낌이 듭니다.
 
3. 0.9톤의 물이 담겨있던 물두멍이 10개
 
이와는 별도로 10개의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그 용도는 희생 번제물을 씻기 위한 것(대하 4:6)이었습니다. 신전 뜰을 청소하는데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희생제물을 잡을 때도 적잖은 물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물두멍 한 개당 사십 밧(왕상 7:38) 즉 900리터 정도의 물이 담겨 있었습니다. 거의 9톤이 넘는 물이 번제물을 씻는 용도 등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것도 엄청난 용량입니다. 그러면 놋 바다와 물 무멍에 채워져야 했던 물의 양은 54(최대 77)톤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한 번 담아둔 물은 얼마동안 사용할 수 있었을까요? 늘 최대치를 채워두는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필요할 때마다 예루살렘 성의 주요한 물 근원인 기드론 시내로 내려가서 물을 길어다 놋 바다에 부어서 다시 사용한 것일까요? 어떤 경우이든 성전에서 제물을 바칠 때 긴요하였던 물, 그 물을 길어올리던 이들의 수고는 이만 저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 제사 장면을 떠올리는 성경 독자들에게 그들의 수고는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생각하기

▲ 물항아리로 물을 나르고 있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 김동문 선교사

성경 읽기를 하면서, 장소 이름과 사물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살펴본 것처럼 우리가 생각한 것 그 이상의 현장감 가득한 내용이 성경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실체가 눈앞에 그려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 질문하고,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자료와 정보를 찾아보고, 할 수 있는 한, 성경 본문 속 그 때 그 자리에 서는 수고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문득, 그 옛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물 긷고, 장작 패는 수고를 한 이들의 수고를 생각합니다. 가정, 교회, 회사, 사회, 나라에서,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의 수고와 애씀이 귀함도 느낍니다. 그럼에도 투명인간처럼, 아니면 당연히 그냥 하나의 배경처럼 우리가 눈길을 주지 않는 이들도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그들에게 눈길 한 번 더 주고 말 한 번 더 걸어보는 하루하루면 좋겠습니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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