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선교
선교현장의목소리 ⑭ 루마니아 박천규 선교사
공산정권 벗어난 지난 30년간 개신교는 폭발적 성장
송금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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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23 [06:42]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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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집단 사회화 및 복음화 다민족선교 연결∙개발∙협력
 
“루마니아는 오랜 기간 정교회(Orthodox Church)의 문화와 역사적 토양에 물들여진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슬라빅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라틴계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특이합니다. 지금도 이탈리아와 형제국처럼 지내고 있는데, 이는 1-2세기경 이 지역에 진입한 로마인들이 ‘다키안(Dacian)’이란 원주민들과 혼합해 민족을 형성했기 때문이죠. 루마니아는 영화로 소개되었던 ‘드라큘라 백작’, 독재자 ‘챠우세스코’, 체조의 여왕으로 인정받았던 ‘코마네치’, 그리고 세계 제1의 분포도를 나타내는 집시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부터 27년 전 유럽선교사로 파송받아 루마니아에서 사역하고 있는 박천규 선교사<사진>는 종교적 전통과 제도를 중시하는 루마니아에는 전체인구의 약 90%가 신앙의 본질 즉 거듭남 없이 십자가 형상과 교회건물 그 자체를 신앙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랜 기간의 독재정치로 인해 정서가 피폐해진 루마니아인들에게 이 형식적 신앙관이 오히려 삶의 돌파구가 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나름대로 체육과 예술 활동에 적극적이고 사회 적응력, 타문화 수용력이 강한 이들이 종교적 삶과 세상적 삶의 경계 없이 살아가면서도 자신들은 하나님을 가장 정통적으로 잘 믿고 있다고 자부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그러면서 박 선교사는 이들의 이런 정신세계가 집시들의 낭만적(?), 사회이탈적 삶을 경시하고 질타하면서도 그들과 공존하는 이중적인 삶의 수단도 능숙하게 만들었는데 이러한 형식적 신앙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들에게 진정한 복음이 필요한 이유라고 덧붙인다. 
 
박 선교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재학 당시 “쇠퇴하는 유럽교회의 근본적 이유와 대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1991년 7월 Ambassadors For Christ(AFC) 선교회가 구성한 유럽단기 선교팀에 합류한다. 그리고 같은 해 유럽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이때 박 선교사는 루마니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순회하며 큰 충격을 받고, 결국 하나님께서 루마니아 선교사로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된다. 그리고 1994년 4월 외국인으로서는 흔치 않게 현지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현지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게 된다. 

▲ 박천규 선교사가 루마니아 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장로교 합동교단에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선교현장의 요구와 필요, 그리고 현지인들과의 밀접한 관계성을 지닌 장기적인 사역을 위해서 현지 침례교단에 가입했습니다. 선교적 교회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없었던 시절에도 선교사로서 목회를 했기에 선교하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 그 자체가 선교임을 강조하며 목회했습니다. 기관화된 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전환시키는 것이 선교사 목사로서의 임무라 여기고 다른 지역 교회들도 순회하며 도전하고 있습니다.”
 
박 선교사는 선교사역 초기부터 사회로부터 냉대 받고 비인간적 처우를 당하는 이들에게 복음의 깃발을 들고 다가갔다. 특히 대도시 주변에 게토를 이루며 아무런 직업도 없이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하는 집시종족의 순수성을 잃고 루마니아 사람들처럼 살지만 루마니아인 대우도 받지 못하는 부류의 집시들이 그의 목회 대상이다. 들판에서 비닐움막을 짓고 살면서 진흙과 모래로 벽돌을 만들고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집시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그 동안 국내에서 어느 정도의 열매를 거두었는데, 해외에 있는 집시공동체와도 연결고리를 만들어 해외 집시마을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루마니아는 ‘집시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루마니아에는 인구 2천1백만명 중 비공식적으로 9%가 집시라고 합니다. 그런데다가 루마니아인들은 계속 해외로 빠져 나가고, 집시들은 유럽국가로부터 추방을 당해 루마니아로 귀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면서 박 선교사는 최근 30년 동안의 루마니아 개신교의 복음화 활동은 40년 이상의 오랜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다가 마침내 삶과 신앙의 자유를 되찾으면서 가히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유럽과 북미의 선교적 지원은 실로 엄청났다고 한다.
 
“루마니아 국민들은 1989년 성탄절 즈음에 민중혁명을 일으켜서 독재자를 즉결심판으로 총살 시키고 공산독재 치하에서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30여년이 흐른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있음을 보면서 삶의 양태와 의식의 변화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곳곳마다 개신교의 새로운 예배당 건물이 건축되어지고, 유럽 각지의 루마니아인들이 모여있는 지역에는 ‘루마니안디아스포라 교회’들이 세워지고, 주요도시의 개신교도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교회는 놀랍게도 루마니안 교회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큰 성공을 거둔 듯 보지만 유수한 역사와 전통, 고풍이 넘치는 정교회 건물들과 정교회 문화가 서방세계의 물질문명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내실 있는 개신교의 부흥을 깊이 평가해 볼일입니다.” 

▲ 루마니아 집시마을을 돌며 전도하는 박천규 선교사.     © 크리스찬투데이

2007년 1월1일을 기점으로 루마니아는 유럽공동체에 가입되면서 주민증만으로도 유럽을 왕래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지난 기간 동안 불법적 신분으로 유럽에서 일하던 루마니아인들의 인권이 회복되었고, 좀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한 인구이동이 시작되면서 정교회 신도들도 해외에서 자연스럽게 개신교를 접하게 되었다. 
                                                                                                              박 선교사는 한인디아스포라 교회가 세계선교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것을 상기하며 루마니안디아스포라 교회들을 연계하고 해외거주 성도들과 연결된 또 다른 소수민족들에게 복음을 역수출하고 재생산하는 선교코칭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10년째 소수민족 다아스포라들을 향한 다민족선교연결과 개발, 협력사역을 수행해 오고 있다.
 
“지구촌화된 시대, 다문화·다민족 사회가 된 현대에 알맞은 선교패러다임을 창출하고 실행하기 위해서 북미와 유럽을 왕래해야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루마니아디아스포라 교회가 유럽과 북미에서 선교적 역동성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선교코칭에 집중하는 것이 제게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차세대 세계선교의 핵심주자가 루마니안 성도들이 될 것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 박천규 선교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London Seminary와 루마니아 티미쇼아라 대학원에서 사회복지와 교육심리학을 공부했다. AFC 소속 선교사로 1994년 지역교회 목회를 겸한 Fountain of Life mission을 세우고 산하에 루마니안 선교사훈련원을 설립해 복합문화선교연구원(Intercultural Missions institute)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울러서 생명의샘 선교회 대표로 한인디아스포라 교회들과 선교동역네트워크를 형성해 Bible Telling Mission과 Young Senior Team Action Ministries 선교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 외에 유럽과 북미의 한인디아스포라 교회들의 단기선교연결 및 Spiritual Transformation leadership 세미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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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합니다 하늘정원 18/08/31 [22:07] 수정 삭제
  쉽지 않은 길을 가는 선교사님 그 사역을 감당하고 나가시는 발걸음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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