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특집
문화로 성경읽기(20)-로뎀나무 곁의 죽어가는 엘리야, 그의 그늘이 되신 하나님
광야의 로뎀나무 곁에 앉은 것은 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 시도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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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24 [06:0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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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야는 나무도 산도 들과 골짜기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곳은 뜨거운 폭염과 추위가 가득한 곳이다. - 브엘세바 남쪽 신광야     © 김동문 선교사

폭염으로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뉴스를 봅니다. 폭염, 뜨거운 햇살은 위협적입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광야는 낮에는 뜨거움이 밤에는 추위가 가득한 땅이기도 합니다. 그 광야, 햇살, 그늘을 떠올리면서 문득 엘리야가 다가옵니다.
 
로뎀나무 곁의 엘리야를 떠올리면서 ‘쉼’, ‘회복’을 쉽게 말합니다. 로뎀나무 하면, 우리에게는 쉼의 이미지로 가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로뎀나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나무가 아닌 (대)싸리나무로 그늘을 제공하기에 넉넉하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그늘이 될 만한 나무는 로뎀나무가 아닙니다. 엘리야는 쉴 곳이 없어, 광야로 간 것일까요? 광야에서 쉬기 위하여 그늘을 찾은 것일까요? 그 그늘을 위해 로뎀나무를 찾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로뎀나무를 찾은 엘리야가 선택한 것은 ‘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 앉은 것이나 그곳에서 하나님께 '죽여 달라거나,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는 것에서 그의 비참한 심정이 가득합니다.
 
성경 속으로

▲ 로뎀나무는 대싸리나무입니다. 광야에서 잠시 동안의 그늘을 제공해줄 수 있지만, 그곳은 쉴만한 공간이 아닙니다. - 광야의 로뎀나무     © 김동문 선교사

1. 엘리야의 피난길
 
엘리야가 광야로 나갔습니다. 왜 광야로 간 것일까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싸움에서 이긴 직후, 이세벨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죽지 않으려고, 살기 위하여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 엘리야가 살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여 그가 찾았던 도피처는 광야였습니다. 수행원을 데리고, 나귀를 타고 이스라엘의 최남단 도시 브엘세바로 향했다. 그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을 것입니다. 혹시나 이세벨 왕비가 보낸 자객(?)의 위협을 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10여일 이상이 걸리는 도망길이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요단강 동편 길르앗 지방에 살던 이민자였습니다. 그가 북 왕국 이스라엘 왕의 위협을 피해 남왕국 유대 왕국의 끝자락까지 발걸음을 옮긴 것입니다. 그 길이 익숙하였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지나 산지길을 따라 예루살렘, 헤브론을 거쳐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브엘세바 지역에 도착해서는 거기서 혼자 하룻길을 더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걸어들어갑니다. 그곳은 완전한 광야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아주 뜨거운 초여름 날씨가 기다리는 곳이었습니다.
 
2. 우편의 그늘 되시는 분
 
봄 여름의 브엘세바 광야는 아주 뜨겁다. 40~50도를 오르내린다. 때때로 강한 바람이 불어 닥칩니다. 광야에는 폭풍과 바람도 무서운 복병이다. 종종 도둑들의 공격을 받는 곳입니다. 그야말로 광야는 보호막이 없는 공간입니다.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앞쪽은 모압 땅 해 돋는 편, 즉 동쪽이었습니다. 서쪽은, ‘뒤편’으로 표현하였는데, 지중해(대해 또는 서해)를 지목했습니다. 오른쪽은 남방(네게브 사막) 지역을, 왼쪽은 북방 갈릴리를 비롯한 산지를 가리켰습니다. 
 
예루살렘의 우편 지역, 이스라엘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람으로서 살기가 가장 험악한 지역 브엘세바 이남 지역인 남방(네게브) 지역은 그야말로 그늘이 필요한 지역이었습니다. 아울러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는 악한 자가 지배하는 땅, 마귀가 다스리는 공간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원수를 발등상 되게(굴복시키게) 하셔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편에 그늘이 되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3. 로뎀나무 곁에 눕다
 
광야에 그늘이 될 만한 나무는 많지 않습니다. 싯딤나무(아카시아 나무)와 종려나무(대추야자 나무) 정도가 제대로 된 그늘을 제공할 뿐입니다. 
 
거기에 비해서도 대싸리나무인 로뎀나무는 긴 시간을 보호해주는 그런 그늘이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그늘도 없이 햇살에 온몸을 노출하는 것은 그야말로 죽을 짓입니다. 엘리야는 그것을 시도한 것입니다. 
 
아예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 잠을 청합니다. 하나님께 죽여 달라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죽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가 선택한 것은 진짜 죽음이었습니다.
 
4. 돌로구운 빵
 
그를 찾아온 한 존재, 그가 엘리야를 위하여 준비한 것이 있었다.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이었습니다. 물론 이 표현은, 우리 식의 현대적 표현입니다. 당시에 유리병은 없었습니다. 불에 구운 떡은, 사실 뜨거운 돌 위에서 익힌 빵입니다. 
 
엘리야 이야기에 등장하는 '뜨거운 돌로 구운 빵'이 주는 시각적인 느낌이 남다릅니다. 뙤약볕에 의해 땅과 돌도 다 달궈져 있습니다. 달걀이 그냥 익을 정도입니다. 숯불에 달궈진 돌이 아닌, 태양열로 달궈진 그 뜨거운 돌 위에 빵이 익어가는 풍경이 묘하기만 합니다.
 
다시 생각하기

▲ 엘리야가 홀로 광야로 걸어들어가 로뎀나무 곁에 앉은 것은 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 시도였습니다.     © 김동문 선교사

엘리야가 죽기 위하여 찾았던 땅, 봄에서 여름 사이, 낮 기온이 50도를 오르내리던 뜨거운 광야였습니다. 죽겠다고 누워버린 엘리야.. 그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엘리야의 그 뜨거운 고통의 마음은 타오르고, 타들어가고, 점점 불이 꺼져갑니다. 그 순간, 태양열에 달궈진 뜨거운 돌에 익어가는 빵은, 생명으로 냄새 가득합니다. 그 돌 위에 빵을 구운 느낌... 확 다가오지 않는지요? 
 
그런 절박함과 절망가운데 있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그늘과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하십니다. 삶의 막바지까지 스스로 내달렸던 엘리야와 함께 하셨습니다. 엘리야의 행동을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하여 그곳까지 찾아오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그냥 그 곁에 같이 계셨습니다. 그의 우편에 그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에게 빵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광야, 죽음의 자리에서도 ‘임마누엘’이셨습니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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