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선교
문화로 성경 읽기(19)-포도나무와 가지, 서로를 빛나게 하는 존재
연약한 가지 '제자' · 풍성한 포도 송이 '예수'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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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22 [07:36]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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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약하지만 제자들 통해야만 복음의 생명력 전개할 수 있음에 주목해야

▲ 헤브론 지역의 포도원 풍경. 고목같은 포도나무와 가늘기만한 가지가 인상적이다. 포도나무의 힘으로 열매를 맺는다.     © 김동문 선교사

성경에는 다양한 식물이 대화의 주요한 소재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한 두 번 밖에 안 나오는 식물인데도 아주 익숙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 익숙함이 때로는 오해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쥐엄나무입니다. 세례요한이 먹은 메뚜기가 바로 이 쥐엄나무입니다. 당황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그러나 사실입니다. 흔해 빠진 나무 열매, 이스라엘에서만 나는 식물, 가난의 상징, 보잘 것 없는 식물...? 쥐엄 열매에 대한 이 같은 오해는 아무래도 아래 성경 본문에 대한 오해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눅 15:16) '

▲ 쥐엄나무는 세례요한이 먹은 (식물성) 메뚜기이다. 저지방 고단백질 식품으로, 경제성 높은 식품이었다.     © 김동문 선교사

그러나 로마제국에서 돼지고기는 음식으로보다 신들을 위한 제물로서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로마제국에서 양과 돼지, 소가 가장 귀한 제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희생 제물용 돼지 치는 음식이었던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한국에서 녹차 먹인 돼지, 인삼 먹인 돼지 하는 식이었습니다. 또한 고대 이집트의 문헌에 따르면 이집트 중왕국 이후에는 이집트에도 쥐엄나무가 재배되고, 쥐엄 열매가 귀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람세스 3세 때 파라오가 신들에게 바친 봉헌 제물 목록에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쥐엄나무로 만든 가구도 귀한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그런데 쥐엄나무에 대한 오해 이상으로 우리들이 조금 더 생각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포도나무와_가지>입니다. 예수의 비유 중에 자신을 포도나무로 표현한 경우가 있습니다. 포도나무, 포도나무 가지를 떠올릴 때 우리는 무엇을 떠올리나요?
 
성경 속으로

▲ 눈에 덮힌 백합화(아네모네). 고정관념으로 성경 속 식물을 읽을 때 오해도 많다.     © 김동문 선교사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신약성경 요한복음 15:5,6)
 
이 포도나무 비유를 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성경이 보증하는 최고의 포도 산지인 헤브론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포도나무 과수원이 있는 곳은 ‘어디에서나’는 아니었습니다. 유대 산지 헤브론이나 북부 골란고원 등 특별한 지역이었습니다, 그것은 포도나무가 자라기에 좋은 자연 환경 덕분이었습니다. 농업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아무데서나 포도원을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적당히 거친 자연 환경과 바람이 많이 불어주고 일조량이 많고 일교차가 큰 곳이 포도원 농사의 적격지입니다.
 
해발고도 1,000미터 안팎에 이르는 지역입니다. 겨울철에 다른 지역보다 비나 눈도 많이 내립니다. 가을철에 맛보는 헤브론 포도의 맛은 기가 막힙니다. 골란고원과 헐몬산 자락 등 산지에서 자라는 포도의 맛도 아주 좋습니다.
 
헤브론 지역 등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모양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그곳의 포도나무는 정말 특별합니다. 포도나무는 굵고 단단한 고목(?) 수준입니다. 또한 포도원지기들은 수년간 포도나무를 다듬고 가꾸면서 포도나무의 모양을 Y자 또는 T자에 가까운 형태로 다듬어 놓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지지대 역할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또한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포도나무 가지가 땅으로만 쳐지는 것도 아닙니다. 포도원 농사는 봄철부터 시작한다. 계절적으로는 건기입니다. 이스라엘은 겨울 우기와 여름 건기로 구분한다. 포도나무 농사는 건기에 시작하여 건기에 마무리됩니다. 땅에 닿은 (포도나무 가지) 부분이 우기에 습기로 인해 썩는다는 생각은 오해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비하면 가지는 그야말로 작고 가늘고 연약하게만 보입니다. 이 포도나무 가지가 마르면 그것을 모아서 숯불을 피울 때 아주 적절한 땔감입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로뎀나무(대싸리나무) 가지와 같이 가장 양질의 숯불을 피울 수 있는 숯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연약한 가지에서도 튼실한 포도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런 포도나무에서 맺히는 튼실한 포도송이는 그 가지의 힘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포도나무 자체의 힘입니다. 헤브론의 맛좋고 실한 포도는 그 가지의 힘이 아니라 튼실한 포도나무 덕분에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예수님과 그 무리들은 이 본문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의 힘(존재) 때문에 실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철학적, 현학적이거나 이른바 영적인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다분히 일상적인 이해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다시 생각하기

▲ 헤브론 시장의 포도열매가 맛과 향으로 다가온다. 헤브론은 전통적으로 포도로 유명하다.     © 김동문 선교사

'예수는 포도나무, 예수 믿는 자는 가지'라는 표현을 2018년의 언어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 수 있을까요? '예수는 수원지요, 예수 믿는 자는 수도꼭지이니 ...'?
 
그렇지만 포도나무는 가지가 아무리 연약해도, 그 가지가 없이는 포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맛있고, 큼지막한 포도를 맺는 포도나무라도, 아무리 작고 가늘고 약해 보이는 그 가지가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가지입니다. 예수의 생명력이 아무리 크고 위대하고 아름답다고 하여도,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 없이는 그 생명력이 드러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자는, 예수로 인해 위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자들입니다. 비록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크고 위대한 존재입니다. 예수 생명력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르심을 다시 당당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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