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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읽기(18)-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
등잔과 기름 그리고 불 붙일 ‘불’ 필요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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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30 [07:0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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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훤히 비추지 못하고 발치만 밝혀주는 등불은 인생에게도 자리분별 돕고 있어

▲ 구약과 신약시대에 사용된 등잔. 등잔에 불을 붙일때 가장 고급스런 기름은 감람유였다.     © 크리스찬투데이

성경을 읽으면서, 등불, 불, 등(잔)이라는 사물을 마주하면서, 그 불빛과 냄새, 색감을 떠올려 본적이 있는지요?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 중에 ‘남포불’, ‘호롱불’, ‘화롯불 ’의 추억과 기억을 갖고 있는 분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불빛과 온기, 냄새가 기억이 나는지요? 궁핍한 살림에 좋은 기름을 쓰지 못해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방안 분위기를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는 어떤 것으로 방안의 어두움을 밝혔을까요? 그것은 등(잔)불이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계층과 계급에 따라 사용하는 기름도 달랐을 것입니다. 가장 좋은 기름은 다름 아닌 감람유 즉 올리브기름이었습니다.
 
참, 등불을 밝히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먼저는 등잔이 있어야 하고요, 다음이 ... 심지 그리고 감람유나 다른 기름이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가 있으면 등불을 밝히는데 문제가 없나요? 아닙니다. 불을 붙여주는 ‘불’이  필요합니다. 부싯돌이나 다른 것을 사용하여 불을 켜야, 심지에 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불을 붙여주는 것이 없으면, 등불을 밝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 속으로
 
꺼져가는 등불 같은 존재는 ‘풍전등화’ 같은 처지에 있는 개인 또는 사회, 나라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스가랴 할 것 없이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나라가 무너지고 깨어지던 풍전등화 같은 처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이사야 42:3)”
 
이미 불이 붙은 등잔불이 커져갑니다. 왜 그럴까요? 기름이 떨어질 때 그렇습니다. 기름이 떨어지면 그을음이 커지고 냄새도 독해집니다. 심지에 붙어있는 불빛이 희미해지고 달랑달랑합니다. 위의 이사야의 표현은 그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 ‘꺼져가는 등불’로 옮긴 것은, ‘꺼져가는 심지’, ‘연기나는 심지’의 뜻입니다. 이 상황을 해결해주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기름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간단한 방법이지요. 그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스가랴에서 살펴봅니다.

▲ 감람나무는 사철 푸른 잎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서 언급된 가장 오래된 나무의 하나이다.   © 크리스찬투데이

감람나무가 되어 주시다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이 있고,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하고 (스가랴 4:2, 3)
 
이 본문에서 등잔대, 등잔, 등잔용 기름 그릇, 기름 관 등은 일반 가정집 풍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마도 성소나 권력자의 통치 공간 등에서나 불 수 있는 풍경입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올리브 나무)의 존재입니다. 감람유의 원천, 즉 등불을 밝히는데 꼭 필요하고 소중한 기름을, 하나님께서 무한하게 영원하게 채워주시겠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성전 안의 등불을 영원히 밝혀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 감람유(올리브 기름)을 짜던 연자맷돌. 맷돌의 윗돌(구멍난 둥근 돌)의 무게는 300 킬로그램이 넘었다.     © 크리스찬투데이

연자 맷돌을 목에 매달고 죽으라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태복음 18:6)”
 
성경 시대에 감람나무 열매와 기름은 아주 요긴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수 십 년 전 참기름, 들기름 같은 것 그 이상이었습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아무나 소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감람유를 짜는 시설 즉 연자 맷돌도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수 십 년 전 한국에서 방앗간 같은 그런 존재감입니다. 그 옛날 감람유를 짜던 곳에 있던 것이 연자 맷돌입니다. 그 맷돌의 무게가 300 킬로그램부터 1톤에 가까웠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그 맷돌을 목에 매고 갈릴리 호수에 빠지는 것이 더 낫겠다는 비난을 받은 이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 등경 위에 올려져 있는 등잔. 성경시대 등잔은 심지가 하나였다.     © 크리스찬투데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5)”
 
등불을 밝혀본 기억이 있나요? 그 등불은 우리 앞을 훤하게 비춰주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발치만 밝혀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 시대의 등(잔)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런 등(잔)불로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앞날에 대해 선명한 밑그림을 갖고 있지 않은 이유를, 하나님을 말씀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앞날을 밝혀주는 것 그 이전에, 우리의 있는 자리를 분별하도록 돕는 것임을 다시 기억합니다.
 
다시 생각하기
 
늘 일상 속에 곁에 있으면서 불빛이 되어주시고, 기름이 되어주시는 감람나무 같은 하나님의 일하심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존재감으로 다가와 있는 것인지요? 성경은 그 시대의 일상을 사는 이들 모두에게, 살갑게 다가온 것입니다. 일상에서 성경을 느끼며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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