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목사님 뭣이 중헌디요?”
황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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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3/22 [02:4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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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특성상 목회자를 자주 만나다보면 자기 이름을 걸고 무엇을 한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 조심스러운 분들이 있다. 물론 사례별로 그럴수는 있다고 본다. 예를들어 민감한 사안에 대해 기명 처리를 부탁한다든지, 사진 등을 올리지 않거나 연락처를 숨겨달라는 경우도 있다. 기사 특성상 그럴 필요가 있는 성격이라면 취재원 보호 측면에서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단순 정보 차원의 기사까지 그렇게 큰 부담을 느껴야 할까? 현실은 무척이나 그렇다.  
 
본지는 매달 타주 한인교회와 성도 소식을 지면을 통해 전하는 지역판을 만들고 있다.  어떤 주를 소개하고자 하면 가장 먼저 지역의 교회 소식을 그나마 잘 전해줄 수 있는 교회협의회 또는 교역자협의회를 통해 이야기를 듣는다. 만약 그런 협회가 갖춰지지 않은 경우라면 그 지역을 가장 잘 알고, 지역에서 목회 활동도 비교적 오래 해오신 목회자를 소개 받아서 컨택하게 된다. 그런데 이 케이스는 정말 딱 두가지 성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너무 적극적으로 자기를 알리려는 분, 반대는 너무나 부담을 느끼며 사양하는 케이스다.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경우는 아무래도 기사를 통해 교회 소개와 함께 개인이 부각되는 것을 원하는 측면도 느껴진다. 이 경우 기사를 쓰는데 많은 정보가 나오기에 지역 내 다른 교회들과 밸런스를 맞춰가며 좋은 내용을 구성할 수 있다. 후자는 아예 그 지역내 소식을 담을 소스가 없어진다. 그래서 인터넷의 힘을 빌려야 한다. 독자입장에서 볼 때 지역에서 그래도 오래동안 목회를 해오고, 지역을 잘 안다고 여겨지는 목회자가 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분명 차이가 있을 듯. 그래서 언론사에서는 가능하면 그런 목회자가 지역에 대한 내용을 말해주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지역을 대표해 누군가가 이야기를 건넨다는 것이 개인에게는 큰 부담인 것도 사실이다. 특히 집에 숟가락 몇개까지 있는지 알만한 작은 지역 내 한인 사회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분명 시기와 질투가 따를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더 중요한가? 내가 지역 단체장이나 회장은 아니지만,  지역에 오래 살았고 누구보다 지역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오랫동안 이런 가치를 지켜왔다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정말 귀하고 소중한 정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듣고 지역으로 이주해 교회를 찾으려는 이들은 두려움과 떨림보다는 안심과 위안이 설 수 있다. 누군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우리는 더 중요한 가치를 봐야 한다.  

그렇지만 일부 목회자들은 자신이 나서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에 대한 심한 부담과 지나친 겸손으로 인해 긍정적인 측면을 보질 못하는 것 같다. 아니면 정말 그들이 부담으로 여기는 것들이 더 큰 것일까? 거기에는 말못할 개인의 사정도 있을 수 있으니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두려워하고 의식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주변의 시선, 남의 이야기, 눈치 이런 것들이 더 두렵고 앞서는 것이 아닐까. 한때 영화 <곡성>에서 나온 ‘뭣이 중헌디”라는 대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담과 눈치 속에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목사님 ‘뭣이 중헌디’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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