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수십 년간 쌓아온 신뢰를 한 순간에 잃을 뻔하다!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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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06 [03:56]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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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필자는 27-8년 동안 쌓아온 두터운 신뢰의 관계를 맺어온 여러 사람들과 나의 잘못된 판단과 부주의로 한 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을 뻔한 일로 마음을 졸여야 했던 일이 있었다. 지난 두 달 동안 25년을 넘게 살던 집을 리모델링을 하던 때였다. 공사를 맡은 책임자는 이곳에서 태어난 멕시코계 사람이었다.
 
공사를 그 사람에게 맡긴 이유는 신뢰를 받은 만큼 나도 그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Cali 이었다. 오래전에 이름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California에서 태어나서 Cali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었다. 그를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은 그가 섬기는 교회가 우리 교회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한 지붕 아래 두 교회, 한인교회와 멕시칸 교회가 시간을 달리해서 예배당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31년 전에 교회당을 구입하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멕시칸 목사님이 찾아 오셨다. 예배 처소를 구하고 있는데 우리가 사용하지 아니하는 시간에 교회당을 사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한인교회가 다른 인종의 교회와 교회당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흔치 아니하던 시절 이었다. 37년 전에 우리도 교회를 처음 시작하면서 예배 처소를 구하지 못해서 두 달 동안 공원에서 야외 예배를 드리다가 어렵게 허락 받은 곳이 흑인 교회당이었다. 그곳에서 5 년 반 동안 셋방살이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려웠던 시절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였다. 그러면서도 행여나 우리가 생각지 못한 일들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지 아니할까하는 염려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예배당 사용을 허락한 것이다. 처음에는 잠시 우리 교회를 사용하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함께 교회당을 사용해 오고 있는 것이다. 
 
멕시칸 교회가 재정실력이 약해서 정한 헌금을 매월 이행치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보다 교회 건물을 너무 잘 관리해 주기 때문이다. 교회 건물이 90여년이 넘은 극장 건물이기에 시도 때도 없이 수리를 해야 할 일들이 많았었다. 그럴 때마다 멕시칸 교인들이 밤을 새워가며 
 
몇날 며칠씩 자비량으로 교회당을 수리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항상 Cali가 있었고 그가 모든 공사를 진두지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에 우리는 큰 감동을 늘 받고 있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주중에는 서너 명의 여성 교인들이 와서 예배당 구석구석을 말끔하게 정리 정돈을 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저들이 더 교회를 아끼고 돌보는 것이다. 그런 저들을 보면서 평강교회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멕시칸 교인들이다 라고 교인들 앞에서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이 시대 그런 사람,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어느 날 Cali에게 예수를 언제 어떻게 믿게 되었는가를 물어 보았다. 
20살 이었을 때에 사거리 큰 길을 건너다 마주 오는 자동차에 치어 20여 미터 거리로 날아가 던져 졌다는 것이다. 그 일로 전신 마비가 되어 수년 동안 고생을 하다가 신유 은사를 행하는 목사님에게 기도 받은 후 걷게 되어 그 때부터 지금까지 주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충성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이기에 교회 건물에 문제가 생기면 우선적으로 그와 상의하여 그가 지시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오곤 했었던 것이다. 금번에도 집을 보수하려고 하는데 와서 보고 조언을 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자기가 그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할 것에 대해서 묻지도 않았는데 방법을 말하는 것이었다. 
 
공사를 전체 맡기면 큰돈이 들어가므로 공사에 들어가는 재료비만을 지불하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당으로 지불하라는 것이었다. 서너 명이 일을 했다. 저들이 하나 같이 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이기에 나도 최선을 다하여 일하는 동안 저들을 섬기며 기뻐했다. 점심을 제공하고 수시로 음료수와 다과를 대접했다. 
 
그러다가 한 달여 만에 집안 공사가 끝나갈 때 부엌에서 아끼던 냄비 두 개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늦게 발견한 것은 그 동안 부엌을 사용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럴 수가 있는가? 나름대로 저들을 정성으로 섬겼는데 나에게 이런 배신을 때릴 수가 있을까? 일하는 서너 명의 사람 중 누가 이런 일을 했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한 사람이 지목되었다. 틀림없이 그 사람이 가져갔을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그 사람에게 가져간 냄비를 가져오라고 말을 하려고 하다가 몇 번을 참았다. 그냥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자! 그러다가도 다시 말을 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주고 싶었던 것이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말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그리고 한 주 일 후 그 냄비가 구석진 곳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참치 못하고 성급하게 생각한대로 지목한 사람을 향하여 책망하며 냄비를 가져오라고 했더라면 그 일로 저들이 받아야 했던 충격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일로 수십 년 쌓아온 신뢰가 살아져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님 나의 섣부른 잘못된 판단을 용서해 주세요! 잠시나마 애매한 사람을 죄인으로 지목하고 정죄하며 속으로 비난했던 잘못된 나의 속단이 저들 앞에서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라며 주님께 용소를 구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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