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특집
“종교개혁은 원천으로 돌아가는 운동”
“이민교계가 500주년 역사적 의미 현시대에 맞춰 재해석 못한 아쉬움 커”
송금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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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23 [09:2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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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종교개혁은 교회 안팎의 인간우상과 물질숭배 척결하는 것”

인터뷰 / 이상명 총장(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종교개혁 500주년인 올해 이를 기념하는 미주교계 단체들의 크고 작은 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이제 그 많던 기념행사들도 막을 내리고, 500년이란 상징의 해인 2017년도 저물어 가고 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과연 이러한 행사들이 이름만 거창했던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는 아니었는 지, 아니면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살리고 새롭게 교회가 나가야할 방향을 제시했는지를 여러 세미나와 포럼의 주강사로 500주년 행사의 일익을 담당한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이상명 목사를 만나 못 다한 얘기와 반성할 점과 앞으로 미주교회들이 헤쳐 나가야할 과제에 대해서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식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편집자 주>

▲ 이상명 총장은 “죄로부터 돌아서 끊임없이 하나님과 그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종교개혁의 핵심이다”라고 말한다.     © 크리스찬투데이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이 이민교회에 던져준 의미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 사건을 조명하고 그것을 상품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의 찬연한 유산을 그저 회고만 한다면 과거 영광의 자리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과거를 회고하는 것은 우리의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함입니다. 과거 사건이 지닌 의미를 현시대에 살려내기 위해서는 해석이 필요합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당시에도 이 사건이 지닌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 이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개혁자들조차 이 혁명적 사건의 전개 과정과 그 이후의 결과를 예측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시간이 상당히 지난 다음 인류는 종교개혁이 유럽과 세계 역사에 남긴 다양한 파장과 중대한 결과를 그때서야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역사는 해석을 필요로 하고 해석되지 않은 역사는 역사가 될 수 없습니다. 역사학자 E.H. 카가 주장한 대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이런 대화는 교회현장에서도 요청됩니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않는 사람은 동일한 역사를 되풀이하게 됩니다. 500년 전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살려 현재화하는 것이 이민교회의 사명입니다.
 
한인 이민교계에서 치러진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들을 보며 느낀 점이 있다면.
△과거 부패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실상을 알리면서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종교개혁자들의 위대함을 돋보이려는 행사로만 끝낸 것은 아니었는지 물어볼 일입니다. 실제 개혁되고 청산되어야 할 대상은 외부가 아닌 우리 내부에 있는데도 과거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한 실상만을 고발했다면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후예가 아닐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 필립 멜란히톤, 울리히 쯔빙글리, 장 칼뱅과 같은 걸출한 종교개혁자들의 업적과 유산만을 부각시켰다면 그 또한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를 제대로 되살린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보다 결실 있는 행사가 되기 위해 작년부터 면밀히 기획하고 준비했어야 하는데 급조된 행사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몇몇 행사들은 종교개혁이 갖는 의의를 되짚어보는 유의미한 결실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종교개혁과는 동떨어진 행사임에도 그 이름으로 치러진 행사들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민교계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서 종교개혁의 전통과 유산을 함께 기리고 현 개신교회 현장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었는데 그 또한 제대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물론 5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만 기념하고 개혁의 기치를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500주년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현시대에 되살려 해석하여 적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은 우리 이민교계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봅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종교개혁은 무엇인가?
△우상타파에 앞장섰던 개혁자들을 우리가 영웅시하는 것은 그들의 뜻도 아니며, 하나님의 뜻은 더욱 아닐 것 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영웅주의를 철저히 배격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들의 종교개혁은 교회 안팎의 인간 우상들과 물신숭배를 척결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반대로 현시대 성도와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는 너무 많이 무너졌습니다. 권위에 해당되는 헬라어 단어인 ‘엑수시아’의 어원적 의미는 ‘본질(우시아)’로부터 ‘나오다(엑스)’입니다. 다시 말해 권위는 ‘본질로부터 나온다’는 뜻입니다. 성도와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가 무너지고 개혁의 대상이 되고만 것은 본질로 부터 멀어졌단 얘깁니다.
 
종교개혁은 원천으로 돌아가는 운동입니다. 원천은 다름 아닌 기독교 정신의 원류인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가장 원초적 정신인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원천으로 돌아갈 때에만 성도와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는 회복되고 사회를 갱신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영적 센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회개’는 마음 상태의 변화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불신앙으로부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회개란 모든 종교에서 찾을 수 있는 영적 각성이나 도덕적 회심이나 성례전적 고해보다 더 근원적인 변화와 갱신과 전향입니다. 따라서 회개는 죄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전인적 결단이고 실천입니다. 중심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갈라놓아 언저리로 밀어내는 원심력을 ‘죄’라고 한다면 ‘회개’는 그 죄로 인해 벌어진 관계를 다시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구심력인 셈입니다. 물론 그러한 구심력을 추동하는 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옛 자아의 청산과 그 결과로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즉 하나님 형상의 회복까지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끊임없이 하나님과 그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종교개혁의 핵심이어야 합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뒤로하며 우리의 취해야할 자세와 과제가 있다면.
△종교개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들의 역할과 함께 당대의 사회·역사적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필요로 합니다. 종교개혁자들 사이에 오간 수많은 신학적 논쟁, 로마 교황청을 포함한 독일과 유럽의 정치적 역학 관계, 루터와 제후와의 관계, 당대 시민들의 의식구조, 농민전쟁, 구텐베르크 동판 인쇄술의 발명 등을 총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한 개혁자들이 지닌 한계와 문제점을 냉철히 살펴보는 것도 끊임없는 개혁을 이뤄나가야 할 종교개혁자들의 후예인 우리 몫입니다. 무엇보다도 일반 역사가의 눈에 포착되지 않는 하나님의 활동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보내며 새롭게 나가야할 우리의 자세여야 합니다. 
 
아울러 초과학시대로 들어가는 21세기에 종교의 퇴락을 예고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교회는 심각한 내부의 갱신도 해결해야 할 과제지만 과거에 비해 더 파괴력 있는 외부의 도전에도 직면해 있습니다.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많은 바벨탑들이 교회 안팎에 세워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늘 그러하셨듯이 새로운 구원 역사를 계속해서 주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 뒤안길에 숨어 그 현장을 외면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외려 이 땅을 창조와 회복과 생명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런 점에서 중세시대 교권주의자들의 손으로부터 교회를 회복시킨 개혁자들의 사상과 유산을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다시 해석하여 살려내는 것이 우리 과제입니다. 개혁을 위해 희생한 신앙 선진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교회는 개혁의 쟁기를 들고서 교회 텃밭부터 기경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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