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특집
고속도로교회
여행자들이 잠시 휴식과 묵상할 수 있어…주로 독일에 소재
이성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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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21 [07:0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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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떠나는 사람들 · 문화적으로 혼합된 메스티조들이
고속도록교회 , 선교적 교회 통해 풍성한 사회 일궜으면…

 
첫째 딸이 하이델베르크에서 신학을 공부한지 5년이 되었고, 독일 목사후보생 과정의 첫 단계로 작은 독일 마을교회에서 한 달 동안 실습하게 되었다. 지난 8월 17일은 딸이 실습하는 첫 주일이기에 우리 부부는 딸을 위해서 그곳까지 차로 동행해 주었다. 우리는 돌아오면서 메덴박흐의 고속도로교회에서 30분 동안 개인 기도를 하였다. 이때에 고속도로로 이동 중인 독일 사람들이 13명이 이 고속도로 교회를 방문하고 돌아갔다.
 
독일에는 여행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묵상할 수 있는 고속도로교회들이 고속도로 변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세워져 있다. 중세 때에는 도보나 말과 마차로 순례하는 자들을 위해서 길거리에 세워진 십자가와 의자, 또는 교차로의 작은 기도소가 있었지만 지금은 고속도로 교회가 있는 것이다. 
 
첫 번째 고속도로교회는 1958년에 아우구스부르그 주변의 아델스리드에 세워졌다. 고속도로가 1만2천 킬로미터로 확장되어갔고, 고속도로 교회의 숫자도 44개로 늘어났다. 이 중에 개신교가 세운 교회가 19개, 가톨릭이 세운 곳이 8개, 함께 세운 곳이 17 곳이다. 고속도로교회는 스위스, 체코에 한 교회, 오스트리아에 두개의 교회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고 독일에만 존재하는 교회이다.
 
고속도로 교회의 방문자는 매면 백만 명이 넘으며 아이들을 동반하는 가족들과 남성운전자들, 가톨릭 신자들이 더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방문자 5명 중에서 2명은 심심풀이로 방문하지만 이곳에서 영적인 분위기를 맛보고 돌아가는 비신앙인이라고 한다. 매년 6월 3번째 주일은 고속도로교회의 날로 지켜지며, 모든 고속도로교회가 방문자에게 간단한 음료와 인쇄된 기도문과 찬양곡을 제공하고 있다.
 
2014년도에 세워진 시거란드(Siegerland) 지역의 고속도로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 건물로 선정되었고, 독일에서도 최고의 실제적인 건축물의 모범이 되었다. 이 유명세로 인해 매월 4천에서 6천명이 이 교회를 방문하고 있다. 바덴바덴의 고속도로교회는 건축양식과 내부 장식으로 유명한데, 필자는 2016년 2월에 독일 남부의 선교사 자녀학교(Black Forest Academy)를 방문 중에 찾아가기도 하였다.
 
프랑크푸르트 공항과 인천 공항에는 공항교회가 있다. 인천 공항에서 독일로 돌아올 때는 공항의 기도실을 찾아가지만, 언제나 무슬림 형제나 자매만이 기도하고 있음을 본다. 레슬리 뉴비긴이 유럽 사람들이 유럽에서 타종교 사람들이 그들의 종교에 신실한 것을 발견하였다고 지적한 것처럼, 한국에서 무슬림도 자신들의 종교에 신실한 사람들인 것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에 인천 공항 기도실에 무슬림 자매 한명이 나오는 순간에,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 같이 들어갔다. 그런데 그 기도실에는 기도소리가 아닌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한 중년 남성이 코를 골고 자고 있고, 그 옆에는 그의 아내인 듯한 여성이 코고는 자의 파수꾼이 되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기도의 파수꾼이었던 희잡을 쓴 무슬림 자매에게 부끄러워졌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요 14,6). 길은 거리, 인도, 차도, 고속도로, 비행기길, 또한 지도에 나타난 길 등 문자적으로 명백한 뜻을 가진다. 우리는 길을 건너서 진리와 생명으로 나아간다. 유진 피터슨은 “예수님을 예배하고 선포하면서 예수님의 진리에 서둘러 도달하려는 마음에 예수님의 길을 건너뛸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예수님의 길을 따라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진리를 이해하고 예수님이 살아갔던 삶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다. 피터슨이 지적하는 것 같이 길은 수단과 방법을 의미하며, 말하는 방식, 걷는 방식, 외모가 드러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 등을 내포하는 폭넓고도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수님이 길이신 것은 그가 우리의 삶과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우리는 길 떠나는 사람들, 길 위에 있는 사람들, 예수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인간은 자신이 도달한 사람이 아니라 목적지로 가는 사람들로 이해해야 한다. 올바른 위치에 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세상은 이주민과 방랑자의 세상임에 틀림이 없다. 폴 길로이가 지적한 것처럼 현대인들은 자신의 정체를 인종에 두지 않고 노정에 둔 사람들이다. 메킨타이어는 서구에 사는 동시대인들은 “이쪽저쪽도 아닌 중간에서 살아가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이해했다. 중간에 사는 사람은 그렇다고 어느 곳의 시민도 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들의 삶의 모습을 고정된 소속보다는 노정이라는 이동성에 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집도 필요하지만, 영적 쉼터로서 따뜻한 이웃, 길거리 십자가의 휴게소, 고속도로교회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듯 현대인은 뿌리 뽑혀 옮겨지면서 혼혈아가 되어간다. 혼혈아는 스페인어로 ‘메스티조’이다. 멕시코 계 미국인 신학자 버질리오 엘리존도는 “혼혈아인 메스티조는 미래”라고 주장한다. 다양한 혼합을 거치고 있는 사회, 특히 유럽에서는 이 메스티조는 중요한 개념이며 앞으로 그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혼혈아는 그 동안 소외되고 업신여김을 받아왔는데 이제는 이 신분이 독특한  특권을 누리게며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는 ‘혼혈’ 덕분에 다양한 문화유산을 공평하게 나누어 갖기도 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적했듯이 “모든 문화는 혼종적이며, … 한때 이질적인 요소로 간주되었던 것들이 서로 얽혀 있거나 겹쳐 있다.” 메스티조는 두 신분을 모두 긍정하며 두 신분에 새로움을 더한다. 선교사의 자녀인 TCK(Third Culture Kids), 제3 문화 자녀도 지상의 어느 부류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영원히 정착할 도시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인종이나 국가에 충성하지 않고 기독교국가, 순례자 교회에 충성한다.
  
미국은 이민의 용광로이다. 유럽도 한국도 이민 다문화지역이 되어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낯선 고속도로들이 늘어나 있다. 또한 다국적 가정이 늘어나 있고, 외국인 거주자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본다. 한국은 다수의 종교가 평화로운 관계 속에서 있는 독특한 나라이다. 이런 한국에도 “언젠가는 종교의 분쟁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염려도 있지만, “언젠가는 이런 종교 간의 평화가 다른 지역에서는 유지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품어본다.  
 
길 떠나는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혼합된 메스티조들이 고속도로교회, 선교적 교회를 통해 풍성한 사회를 이루어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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