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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읽기(11) - 양은 선하고 염소는 악하다?
비판적인 교인을 '염소'로 지칭 말아야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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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21 [06:3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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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하다" "염소=악하다" 성경적 근거 없어…염소는 부정한 동물 아냐

▲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무리지어 있는 양떼들의 목축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 김동문 선교사

"양은 선한 것이고, 염소는 악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염소 같은 신자가 되지 말고 양같은 순종하는 신자가 되어야 한다." 이 말은, 기독교인들이 익숙하게 사용하는 고정 관념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말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마 25:31-46) 속에 양과 염소를 가르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이 본문을 대하는 사람들은 양은 선하고 염소는 악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양 같은 신자가 되어야 할 것을 다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근거는 성경일까요? 전혀 아닙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지도 않고, 목축 현장에서 얻는 지혜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 염소는 자신이 위협을 느끼거나 공격을 할 때 뿔을 이용해 상대를 들이받는 습성이 있다.     © 김동문 선교사

성경 속으로
 
그런데 과연 양과 염소를 가르는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본문 중에서 32절을 보면 ”...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는 대목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은 목축이 흔하지 않은 우리들에게 조금은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앞으로 함께 살펴보겠지만, 이것은 인자(그리스도)가 세상에 심판주로 오실 때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확실하게 분별(판단)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지역 어디에서건, 심지어 이집트 시나이 반도나 다른 아랍 국가에서도 목축하는 목자들이 양과 염소를 함께 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중앙아시아 초원에서도 비슷한 목축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목자들은 들에서 양이나 염소를 칠 때는 늘 이 두 동물들을 섞어서 기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양과 염소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지혜였습니다. 양은 모여서 다니는 특성이 있습니다. 염소는 홀로 다니는 습성이 있습니다. 또한 양을 공격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염소는 때로 뿔을 이용하여 상대를 들이받는 등 공격적이기도 합니다. 물론 자신이 위협을 느끼고 방어를 위한 반응이기도 합니다. 
 
양과 염소를 함께 치는 것은 이런 특성을 고려한 것이기도 합니다. 광야의 하루는 심한 일교차가 가장 강한 적입니다. 낮의 뜨거운 햇살과 밤의 차가운 공기는 생존의 위협을 가합니다. 그런데 양은 모여서 자고, 모여서 이동하는 습성이 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때로 양떼의 무리를 이끄는 숫염소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양들과 달리 염소들은 주변을 살피고 경계하는 것에 민감합니다. 아래 본문을 보면, 양떼를 이끄는 숫염소의 지도력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바벨론 가운데에서 도망하라. 갈대아 사람의 땅에서 나오라. 양 떼에 앞서가는 숫염소 같이 하라." (예레미야 50:8)
 
예수님의 마지막 때에 대한 이야기는 의로운 양, 불의한 염소를 나눈다는 것이 아닙니다. 양과 염소를 함께 키우는 것은 양과 염소 모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온 목자는 양과 염소를 갈라서 각각의 우리에 집어넣습니다. 아무리 동물들에 대하여 무지한 사람들이라도 양과 염소를 분별할 수는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 속담에 식은 죽 먹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겉보기에도 양과 염소는 구별이 될 수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거의 전부) 염소는 검은 색이며, 양은 목욕을 안 하였지만 누런색이나 흰색입니다. 생김새도 특성도 다 다릅니다. 마치 고양이와 개를 구별하는 것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양과 염소를 쉽게, 분명하게 분별하듯이 구별하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어디에도 양과 염소 자체의 가치 평가를 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34절 이하에 나오는 오른편에 있는 자들, 왼편에 있는 자들은 오른편, 왼편이라는 가치 개념에 따른 것입니다. 양과 염소와 관련한 것은 아닙니다. 묘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왼편쪽이 강조되지만, 팔레스타인에서는 오른편이 강조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었지, 우의정, 좌의정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좌우를 분별한다고 말하지, 우좌를 분별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팔레스타인 지역 등에서는 오른쪽은 옳은 쪽이며, 동시에 오른 쪽을 말합니다. 왼쪽, 왼손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것은 휴지 없이 왼손으로 화장실의 뒷일을 해결하곤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양은 선한 것이고, 염소는 악한 것인가? 정말로 예수님은 염소는 악한 존재로 묘사하시는 것일까요? 레위기를 비롯한 구약성경애서 번제로 드려지는 주요한 희생 제물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귀한 희생 제물 가운데 염소가 들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빠져나올 때 바쳐졌던 제물 중에도 1년 된 수 염소가 있습니다. 염소가 부정한 짐승이라면 어떻게 하나님께 드려지는 주요한 희생 제물이 될 수 있었을까요?
 
▲ 양 무리 속에 섞여 있는 염소들이 보인다.     © 김동문 선교사

다시 묵상하기
 
오늘도 교회 안팎에서 비판적인 입장의 교인들을 염소 같은 교인, 들이받는 교인이라며 비난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양처럼 순종하는 착한 교인이라는 이상한 가치관에 반문을 해보야 합니다. 양 같은 신자, 염소 같은 신자,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자세는 성경이 말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확인하지도 않고, 성경적인 것 인양 반복하던 것에 합리적인 의심을 던져야 합니다. 내가 알 고 있는 성경 이해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지금 교회는 교회 안팎에서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합리적 질문을 던지고, 책임감을 안고서 창조성 가득한 비판을 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생각하는 힘을 응원하여야 합니다. 강제된 순종과 복종이 아닌 인격적인 판단과 결단에 바탕을 둔 헌신을 격려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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