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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읽기(10) - 광야에서 나무하기
나무모아 쿠킹한 것은 안식일 규정 위반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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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25 [06:1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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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은 ‘나만의 쉼’이 아닌 타인의 쉼도 보장하는 적극적인 실천 강조

때때로 성경을 읽다가 “어, 이게 뭔 일이래?” 싶은 장면들을 마주하곤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출애굽 광야에서 안식일에 나무를 했다고 돌로 쳐서 죽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당혹스런 현장을 찾아갑니다.

▲ 로뎀나무는 대싸리나무다. 잠시동안 작은 그늘이 생길뿐 넉넉하게 쉴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 김동문 선교사

광야로 갑니다.
 
광야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성경에서는 크고 작은 도시 밖 공간을 근접성에 따라 들, 그리고 광야 등으로 표현합니다. 마을 안팎의 들판은 목축이나 농경지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을이 형성되지 않은 공간은 광야로, 아주 드문드문 목자들의 목축하는 목자들이나 유목민들이 자리를 잡고 살았습니다. 그 광야는 뜨거운 햇살과 바람, 높은 일교차, 절대적인 물 부족, 국지성 호우 같은 자연의 위협, 맹수의 위협이 늘 자리하는 공간입니다. 그런 광야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그것은 곧 죽음이었습니다. 그 광야의 들판은 - 모든 곳에 다 적용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 크고 작은 관목들과 발화성이 강한 떨기나무, 종려나무(대추야자), 싯딤나무(아카시아나무), 로뎀나무(대싸리나무) 정도를 겨우 볼 수 있는 환경입니다. 
 
그 광야에서서 문득 로뎀나무 곁의 엘리야(열왕기상 19:4-5)를 떠올려봅니다. 로뎀나무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대싸리나무입니다. 작은 그늘이 일시적으로 생기는 그런 나무 일 뿐입니다. 로뎀나무 아래에 누운 엘리야는 그곳에서 쉼을 누리고 있던 것이 아닙니다. 그가 그늘을 찾고자 했다면 싯딤나무나 종려나무를 찾거나 골짜기 사이나 큰 바위를 찾았을 것입니다. 엘리야 사건을 대하는 우리들은 죽고자 죽을힘을 다해, 살아날 가능성 없는 브엘세바 남쪽 광야를 찾아간 엘리야의 곤혹감을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 싯딤나무 그늘에서 쉼을 누리는 유목민들의 모습이 시원스럽게 다가온다.     © 김동문 선교사

성경 속으로
 
이제 그 광야로 우리의 눈길을 돌려봅니다. 광야 생활의 면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책이 민수기입니다. 출애굽 공동체가 광야에 살던 시절에, 안식일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고 투석형에 처해 죽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 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민수기 15:32-36)”
 
안식일을 위반했다고 공개 투석형이라니, 너무 강하게 처벌한 것 아닌가 하는 의아함이 다가옵니다. 이것을 보고 율법의 시대가 아닌 은혜의 시대에 사는 것에 감사하고픈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반응은 적잖은 오해가 섞여 있습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나무하는' 이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나무를 자르는 것이나 땔감을 마련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무 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고 빵을 굽거나 음식을 준비하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7:12에도 사르밧 과부가 나뭇가지를 줍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표현도 음식을 준비하는 일련의 행동을 묘사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 15장에 등장하는 이 남자의 행동은 그런 점에서 안식일 규정을 적극적으로 위반한 것입니다.
 
구약성경과 그 시절 고대 근동에서, 법의 주체는 20세 이상인 자유민인 성인 남자였습니다. 법은 법이 정한 대상과 장소, 때에 한하여 권리와 의무가 부여됩니다. 20세 이하의 이스라엘 백성, 여성, 노예, 외국인 등은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아니 대부분의 경우 의무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본문 속 사건에서 적발된 사람이 성인 남자였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성인 이스라엘 자유민인 남자가 안식일을 어겼습니다. 자기 자신(자유민, 성인, 남자, 유대인)이 안식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당시의 사회 문화적 상황을 고려해보아야 합니다. 그 성인 남자의 영향권에 있는 선택할 권리가 없는 다른 이로 하여금 안식하지 못하게 해서 저지른 안식일 위반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이런 추론에 근거를 제공하는 몇 가지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안식일 위반 성인 남자에 대한 공개 투석형 처벌은, 안식일을 어긴 죄에 대한 아주 단호한 조치입니다. 그 배경은 함께 쉼을 누리는 것, 쉴 권리를 가진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강력하게 지키는 신성불가침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이 유대인 자유민 성인 남자가 다른 이로 하여금 안식하지 못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여호와께 도전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이렇다할 나무가 없는 광야에서 종려나무 그늘은 오아시스다.    © 김동문 선교사

다시 묵상하기
 
나의 안식을 위하여 누군가를, 그리고 내가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다른 이로 하여금 쉼을 누리지 못하게 하여 안식을 깨뜨리는 행위는 율법주의일 뿐입니다. 타인을 향한 폭력이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교만이며, 다른 이로 하여금 자기의 힘과 권력에 굴복하게 하고 떠받들게 하는, 자기를 추켜세우게 하는 우상숭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안식일 규정 위반자 처벌 사건은 십계명 전체를 위반한 중대한 사건으로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의 쉼을 빼앗는 행위는 단지 개인의 안식을 해친 것을 넘어서서 그의 모든 것을 빼앗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안식하게 하신 하나님의 계명 모두를 부인하는 적극적인 계명 위반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은 ‘나 만의 쉼’이 아니라, 다른 이의 쉼을 보장하는 적극적인 실천입니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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