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37년 목회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
이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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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03 [23:4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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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의 Medical magnet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안 것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내에는 두 곳 밖에 없는 특수학교인 것이다. 그 곳에 들어가고 나서 제일 먼저 통보 받은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학교에서 지정해준 대형 병원에서 500시간 이상의 자원 봉사를 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지정해준 종합병원에서 자원 봉사자가 되기 위해선 먼저 그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건강에 이상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절차에 따라 아들은 건강 검사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알았던 아들에게 건강상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병원으로 급하게 연락을 받고 가서 보니 아들의 간에서 cooper가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병원 담당자의 설명에 의하면 아들의 수명이 몇 년 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뇌의 신경에 문제가 있어서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당장 학업을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간 전문 의사를 소개하면서 속히 만나 보라는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 가정에 있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아내의 유방암으로 인하여 온 가족이 힘들어 할 때에 아들에 대한 소식은 글자 그대로 청천병력이었다.
 
누구의 죄 때문인가? 내가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과연 나는 주님이 인정하시는 목사인가? 이러고도 내가 교회를 계속 시무할 수 있을까? 자신이 서지 않았다. 무슨 낯 무슨 명목으로 강단에서 설교 할 수 있단 말인가? 가족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조차 민망해 했다. 특히 아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 볼 수가 없었다.
 
아들 또한 나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정말로 견딜 수 없는 아픔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기도가 되지 않았다. 기도해야 하는 것은 아는데 아무리 기도를 해려해도 기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에게만 말하고 기도원으로 홀로 행했다. 언제 내려온다는 기약도 없이 그냥 무작정 떠난 것이다.
 
그러면서 작정하길 이제 나의 목회는 이것으로 끝이다. 그런 생각에 장로님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주일 예배를 마친 후 기도원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도원에 머무는 동안에도 기도가 되지 않았다. 성경도 읽혀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이게 뭡니까?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쉬지 않고 반복되는 탄식과 한탄만 나올 뿐이었다. 3일 째 되는 수요일 오후였다. 갑자기 세미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David 가 누구의 아들이냐는 것이었다. 그 음성이 나의 뇌리를 강하게 충격을 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David가 나의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세미한 음성을 듣는 순간에 나의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이 있었다. 내 아들이 아니니까? 알아서 하세요! 알아서 하세요! 알아서 하세요! 그 소리만 반복해서 부르짖고 있었다. 그 시간 이후 이상하게 마음의 평안이 찾아 왔다.
 
그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산에서 내려와 수요 저녁 예배를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문 의사를 소개받고 진료를 시작하기 까지는 약 2개월의 시간이 소요 되었다. 그 동안 아들은 학교 수업을 중단해야 했다. 소개 받은 의사는 여자 의사였다. 의사의 지시로 곧 바로 병원에 2주간 동안 입원을 해서 간 조직 검사를 반복해서 해야 했다.
 
기가 막힌 것은 미국의 병원은 어린 환자에게도 병에 대해서 숨김없이 알려 주는 것이다, 그로인하여 아들은 자신의 죽음을 응시하고 있어야 했다. 자신의 병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나만 아니라 가족 모두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이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일주일 후 간 조직 검사 결과를 통보 받기 위해서 병원을 찾았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설 때 담당 의사를 만났을 때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했는데 그런 나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그 순간 아! 틀렸구나! 아들이 살 희망이 없다고 낙심하며 기다려야 했다. 진료실 안으로 두 딸과 집 사람 그리고 아들이 함께 들어갔다. 그 때 까지도 의사는 굳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미소를 주지 않고 있었다. 
 
아들을 진료 대에 눕히고 진찰을 한 후 검사 결과 차드를 읽고 나서 의사는 우리를 향하여 간단하고 짧은 말로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It's normal" 죽을병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난 2달 동안 우리 가족을 두렵고 힘들게 했던 사망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집 사람은 진료실 바다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기쁘기보다도 너무 냉정하고 너무 침착한 의사를 향하여 주먹으로 세차게 치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던 것이다. 이유는 의사는 이미 검사 결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대할 것이 아니라 환한 미소로 맞아 주었더라면 극도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예방 주사의 효과라고 할까? 아들은 그 과정을 통하여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왜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아들은 학교에 돌아가서 열심히 공부하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 아들이 George town 대학을 졸업하고 Stan Ford 대학원에서 국제정치경제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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