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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성경읽기 (9) - 악한 아비가 있겠느냐?
절실함으로 구하는 이에게 좋은것 주시고자 간절해하시는 하나님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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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8/29 [23:24]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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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끌어 올리고 있다.     © 김동문 선교사 제공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는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아래의 비유입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누가복음 11:11-12)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태복음 6:9-10)

이 두 가지 닮은 본문에서 다음의 세 가지가 비교되고 있습니다. 생선 : 뱀, 알 : 전갈, 떡 : 돌입니다. 이 세 쌍의 단어 조합이 어떻게 다가오는지요? 어울리는 조합일까요? 이 셋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요? 서로 무관한 것만 같은 이 3가지 조합을 따라 가보겠습니다. 이 대응되는 존재들은 같은 공간에 공존하거나 뒤섞여 있는 존재였을까요? 맞습니다. 같은 공간에 뒤섞이거나 어우러져 존재했던 것들입니다.

성경 속으로

▲ 차돌 위에서 익어 가는 빵. 고대 이스라엘의 일상적인 그림언어이다.(이스라엘 가나)     © 김동문 선교사 제공


첫 번째 장면은 집과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빵은 날마다 새롭게 구워야 했습니다. 공기 중에 노출되면, 금방 딱딱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얇게 구운 것이라면 쉽게 부서지고, 두터운 빵은 돌같이 단단한 빵, 즉 고생의 떡이 되었습니다. 5~6인 가정 한 가정에서 필요한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정주부가 3~4 시간의 노동을 했습니다. 직접 곡식을 빻고 반죽을 하고 숯불을 피우고 그 불로 빵을 구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굶는 것이 일상이었던 서민들이 많았습니다. 보릿고개가 아닐 지라도 로마 지배 하에서 혹독한 세금과 일자리 부족, 싼 인건비 등으로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빵을 굽는 장면을 떠올려봅니다. 숯불 위에 얇은 돌이나 낙타 똥 등을 으깨서 만든 번개탄 같이 생긴 판 위에 올려서 구웠습니다. 물론 낙타 똥을 으깬 연료도 귀한 것이었습니다. 여유 있는 집에는 가정용 화덕도 있었습니다. 빵을 만들어 파는 화덕을 갖춘 빵집도 있었습니다. 이 화덕은 진흙으로 만든 것입니다. 예수 시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빵집에는 화덕 안에 돌을 올려두었습니다. 그것은 불이 꺼지더라도 달궈진 돌 위에서 빵이나 다른 음식을 익힐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시대 사람들에게 달궈진 돌 위에서 빵이 익어가는 장면은 일상적인 기억입니다. 달궈진 돌 그리고 익어가는 빵은 한 조합이었습니다. 그러나 빵 한 쪽도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빵 달라는 아이에게 빵조차 마음껏 집어줄 수 없었던 너무 가난한 아버지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갈릴리 호수입니다. 예수 시대 이스라엘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곳은 지중해와 홍해, 그리고 작은 강과 시내,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개울 수준의 몇 개의 강이 있었습니다. 기손 시내, 요단강, 기드론 시내, 디르사 강 등 그 수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 민물에서도 물고기가 살았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다시 흘러내리는 요단강 물은 진흙이 뒤섞인 수질로 메기 같은 물고기도 어렵지 않게 잡아 올리곤 했습니다. 지중해변은 바람이 강하게 불기 때문에 오늘날의 가자 지구 해변이나 몇 몇 해변을 제외하면 어촌이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은 가장 다양한 물고기가 잡히는 곳은 역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어촌 지역하면 갈릴리 호수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잡아 올린 생선들은 유대의 음식법에 따라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별하여, 돈이 될 만한 것은 날마다 아침마다 열리는 어시장에 납품되었습니다. 물고기는 어부들이 먹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잡아 올린 생선 중에서 물 장어 또는 물뱀으로 물리는 물고기도 있었습니다. 비늘이 없는 이 생선은 유대인에게는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주요 고객이었던 로마인들도 즐기지 않던 가치 없는 생선이었습니다.

▲ 비둘기집. 비둘기 고기와 알은 고급스런 영양식품이었다.(이스라엘 교외)     © 김동문 선교사 제공


이 시대에 생선은 아주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서민들의 식탁에는 구경도 못할 것이었습니다. 말린 생선은 더더욱 값나가는 음식이었습니다. 어부 가정에 식탁에 올려 진 생선들은 상품가치가 없는 버려진 것들이 주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알과 전갈들로 나가봅니다. 이 ‘알’은 달걀은 아니었습니다. 예수 시대에 닭은 일반 가정에서 사육하던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흔하지도 않았습니다. 서민들부터 부유한 계층까지 익숙한 새가 비둘기였습니다. 마당에 흙으로 탑 형식으로 비둘기 집을 짓거나 굴을 파서 비둘기 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유대 산지와 블레셋 평야 사이에 자리한 ‘벧 구부린’이나 ‘마사다’ 요새 같은 곳에도 집단 비둘기 사육장인 ‘콜롬바리움’이 있었습니다. 필요한 경우에 비둘기 집에서 알을 챙기거나 비둘기를 잡아서 요리하기도 했습니다.

전갈은 사막에도 메마른 광야에도 존재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는 10여 가지 이상의 종류가 있었는데 독이 없는 전갈이 일반적이었다고도 합니다. 전갈은 몸을 둥글게 움크리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흰색 전갈도 있었습니다. 광야 길에서 흰색 비둘기 알을 볼 수도 있었습니다. 비둘기 알 사이에 숨어있는 전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알은 귀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30~40년 전 한국에서 계란 후라이(?)가 아주 귀한 음식이었던 것 그 이상으로 말입니다. 알을 달라는 아이에게 부담 없이 알을 쥐어줄 부유한 아비들은 많지 않았던 시대입니다.

다시 묵상하기

▲ 밤이 맞도록 수고한 어부가 물고기를 옮기고 있다.(이스라엘 갈릴리 호수)     © 김동문 선교사 제공

 

예수 시대는 생선도 귀하고, 새알도 너무 귀하고, 빵 한 조각도 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호숫가로, 집과 마을로 그리고 들판으로 이끕니다. 그곳에서 귀한 것을 달라는 자식의 소리를 외면하여야만 했던 아비들의 고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그 귀한 것을 자식에게 쥐어주는 아비, 그 아비보다 더 크신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게 합니다.

빵, 생선, 알이 너무 귀한 시절에 그것을 먹고 싶어 했던 아이의 간절함처럼 기도하는 것, 그리고 가난한 처지에도 그것을 아이 손에 쥐어주고 싶어 했을 그 아비의 안타까움처럼 반응하는 것, 그것이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속에 그려집니다. 절실함으로 구하는 이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자 간절해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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