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삶
“암 투병 15년...은혜와 감사 뿐”
‘살아 있는 감사’보여주는 이명숙 사모, “고난도 유익”
황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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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1/20 [08:4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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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2013년 11월 20일자에 개제되었던 이명숙 사모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암 투병 15년...은혜와 감사 뿐”

▲     © 크리스찬투데이

아름다운 미소가 돋보이는 이명숙 사모. 15년째 암투병중인 중환자로 보이질 않는 이유는 고난도 유익임을 깨닫고 난후 넘치는 감사로 인함이 아닐까.

만약 당신의 가족 중 하나가 어느날 갑자기 암선고를 받는다면? 그것은 아마 상상하기도 싫은 가슴 철렁한 일이 아닐까 싶다.

 

1999년 6월의 어느날. 이상기 목사(평강교회)의 단란한 가정에 그렇게 가정하지 말아야 할 일이 찾아 들었다. 이명숙 사모에게 선고된 유방암 2기. 이 소식을 처음 접한 이상기 목사는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그날 저녁, 이상기 목사는 가슴이 저미는 소식을 전하고자 가족들과 함께 근사한 레스토랑을 찾았다. 가족 누구도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때마침 비까지 내리자 그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순간 하나님이 계시니 두려워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 목사는 가족 모두의 손을 잡고, 사모의 암소식을 전했다. 사모도 사모지만, 어린 자녀들이 받을 충격이 더 걱정이었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당시암선고를 받은 이명숙 사모는 어떻게 됐을까?

만약 15년전 이야기가‘새드무비’였다면 지금 우리는 이명숙 사모를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본지와의 인터뷰를 위해 환한 미소와 함께 앉아있는 이명숙 사모를 보니, 이것은‘행복한 스토리’임이 분명하다. 또렷한 목소리와 초롱초롱한 눈빛. 암투병의 고통을 겪는 환자의 모습은 그다지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명숙 사모는 현재도 치료중에 있고, 인터뷰를 앞둔 며칠 전에 는 꽤 심각한 수술을 위해 정밀검사를 받아야만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사모에게선 고통의 어두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마디 한마디에선 누군가 그녀를 지켜주고 있는 듯한 힘도 느껴진다. 이명숙 사모는 이것은 모두“하나님의 감사”라는 말로 운을 뗀다. 하나님은 과연 어떻게 그녀의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신 것일까? 15년에 걸친 이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는 하나도

놓칠 것이 없었다.

 

“암이라고요? 그 이야기를 남편으로 들은 그날 밤. 우리 가족 모두는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손을 꼭 붙잡고 하나님이 계시니까 이겨낼 것이라고 서로를 격려했어요. 하지만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큰딸, 대학생인 둘째,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덜컥 겁부터 나더군요. 급히 수술 날짜를 잡

아 수술을 했고 다행히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병상에 누워있는데 하나님이 <시편> 50편 15절 말씀으로 저를 위로하시더군요.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그분의 따뜻한 음성이 지친몸으로 들어오고 나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암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는 이명숙 사모. 펑펑 울어야 하는데, 눈물이 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아이들앞에서 엄마로서 강한 모습을 보이도록 지탱해주신 것이라 말한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새겨 넣은 후로, 회개가 시작됐다. 하나님을 만난 그 처음날부터 지금까지. 되돌아보니 어느 하나도 흡족한 것이 없었다. 교만이 앞섰고, 남편인 목사님을 힘들게 했으며, 사모로서 참예배자의 삶을 살지 못한 자신이 보였다. 지난날 그 숱한 예배에서 어느 하나 그분께 자아를 내려놓지 못했고 의지한다 하지만 의지하지못한 삶이었다. 한없는 후회와, 하나님께 대한 부끄러움.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지만, 딱하나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회개의 나날들이 이어졌지만, 암세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극성을 부렸다.

 

“2002년도에 암세포가 뼈로 전이됐어요. 어깨가 아프니까 그저 오십견으로만 알고 있었죠. 이제는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들더군요. 딸이 의사에게 얼마나 살 수 있냐고 물으니 2년 정도라고 했답니다. 2년정도 시간이 지나자, 이번엔 3번과 4번 목뼈로 전이가 됐어요. 정말 죽는구나라고 입술을 꼭 다물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또 한번 저에게 힘이 되셨습니다. 무엇보다 엄청난 이 시련 속에서 이번엔 은혜와 감사를 깨닫도록 만드셨습니다.”

 

인생을 되돌아보는 순간에서, 그녀는 잊고 있었던 한없는 은혜와 감사를 보았다. 1975년 빈손으로 시작한 이민생활. 하나님은 그녀에게 머리를 만지는 손재주를 허락해주었고, 그런 능력을 바탕으로 이명숙 사모는 유능한 헤어 디자이너의 삶을 살수 있었다. 풍족한 물질을 주셨고, 화목한 가정과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도록 그늘막이 되어주셨다. 되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던 그녀에게, 이 모든 것은 은혜와 감사 단지 그것이었다. 이 사모는 암이 뼈로 전이되고 나서도 10년간 이렇게 세상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하심이 가장 큰 감사라고 말한다.

 

“3년전 키모를 예방차원에서했습니다. 피검사를 하는데 암수치가 높다고 해서, 한달에 3번씩 9개월간을 했어요. 계속된 키모로 백혈구 수치는 형편없이 망가졌고, 손과 발이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작년 7월에는 목욕탕에서 넘어졌는데, 암이 엉덩이뼈까지 갔다고 하더군요. 엉덩이뼈 임플란트라는 난생 처음 듣는 시술을 하고, 염증주사가 온몸을 찔렀습니다. 정말 너무 아팠습니다.

 

“그때 또 하나 큰 감사를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렇게 뼈가 하나부러져도 고통이 극심한데,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 얼마나 고통이 크셨을까? 그런 고통으로 우리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에 대한 무한한 감사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런 감사를 알게 되고나니, 이번엔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 이상기 목사는 이명숙 사모에겐 동갑내기 첫사랑이다. 지금까지 이 사모의 투병생활은 남편의 뒷바라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남편이 자칫 교회에 소홀할까, 또는 성도들로부터 괜한 오해나 사지 않을까 이 사모는 늘 마음이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상기 목사는 언제나 “나는 당신이 밥만 먹고 있어도 행복해”라며 너털웃음을 날린다고 한다. 처음엔 이 목사의 이런 착한 성품이 너무도 싫었다고 한다. 성도들에게 언제나 할말도 못하고 속으로 삭히며 늘 조심스러워하는 목회자. 사모 입장에서 볼때 싫은 소리도 좀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투병을 하는 과정에서 남편의 그런 심성을 이해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믿음이 생겼다. 남편의 헌신적인 모습에서 그녀는 예수님의 사랑을 보았다. 가장 몸이 아팠던 지난 3년은 그녀에게

감사와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은 소중한 시간이었고, 고난도 유익이라는 하나님의 큰 뜻을 조건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남편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때 만난 첫사랑. 하얗게 눈이 내린 어느 크리스마스날, 소복히 눈 쌓인 길을 걸으며 조금씩 사랑이 싹텄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고등학교 졸업 무렵부터 조금씩 아프셨어요. 병명은 재생불량성 빈혈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치료가 불가능해서, 여러 도움을 거쳐 미국으로 병을 고치러 가게 되었어요. 미국에 와서도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이 사연을 전해들은 한인사회 모두가 힘을 합쳐 목사님을 도왔어요. 그러자 놀랍게도 1년 후, 재생불량이라

던 피가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병이 나은 뒤 목사님은 청혼을 했습니다. 그때가 22살인가 그랬어요. 목사님이 아플 동안 저는 한국에서 열심으로 기도하고 도움이 되길 바랬습니다. 그때 목사님 곁에서 제가 힘이 된 것이, 지금도 너무 고마운가 봐요. 그래서 저렇게 제 옆에서 떠나질 못하고 계신 듯 합니다.”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하는 이명숙 사모. 요리와 거리가 멀었던 이상기 목사님은 현재, 수준급 요리사가 됐고 청소는 물론 집안일에 전문가가 됐다고 한다. 그런 모습들이, 어쩌면 언젠가 먼저 떠나야 할 자신에게 큰 위로가 된다고 속삭인다.

 

회개, 감사, 은혜, 그리고 잊고 있었던 소중함들이 이 사모에게 찾아 들면서부터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이제는 꿀송이보다 더 달기만 하다고 고백한다. 찬송 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를 매일 매일따라 부르며,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근심과 고통을 맡긴 인생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요즘 너무나 절실히 느낀다고 한다. 그것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며 강조한다.

 

“키모 알약이 재밌게도 세알이에요. 그것을 한 알씩 입에 넣을 때마다, 성부감사, 성자감사, 성령감사라고 고백합니다. 나를 긍휼히 여겨주세요 라고 할 때 마다 나도 남을 긍휼이 여길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하나님께 또한 감사한 것은 이런 깨달음을 통해 나도 남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거에요. 부족하지만 저를 위해 중보기도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힘으로 10년을 건강하게 버틴 것 같아요. 이런 감사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요즘은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제 중보기도의 영역을 넓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참예배자가 되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늘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이것은 이사모가 최근에 가장 아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아픈 와중에도 교회가 흔들리지 않게 해주셨고, 교만함을 제거해주셨고, 목회자의 고충을 알게 해주셨으며 내려놓고 의지하게 만드셨다고 말한다. 아이들도 모두 건강하게 자라나, 사회에 힘이 되는 일꾼으로 성장했다. 자신이 만약 아프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하나님의 감사가 눈에 보일 수 있었을까라고 되묻는 이명숙 사모. 하나님이 주신 이런 축복과 은혜에 관해 알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몇번이나 강조한다.

 

11월 감사의 달을 맞아, 교회들마다 하나님의 감사를 깨닫자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일년에 한번씩 외치는 인스턴트 감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보다 15년간 투병기로부터 깨달은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

하나님이 이명숙 사모를 극심한 병마와 싸우면서도 미소를 잃게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그녀로 하여금 우리에게‘살아있는 감사’를 보이게 하심이 아닐까라는 믿음이 생긴다. 범사에 감사하고 함께 기도하는 참예배자가 되겠다는 이명숙 사모의 바람이, 이땅에서 꺼져가는 심령들을 되살릴 작은 불씨로 타오르고 있다.

 

황인상 기자

 

남편인 이상기 목사와의 인터뷰---------------------------------------------

 

"밥해줄, 밥 먹어줄 와이프만 있어도 감사해야"

암투병하는 아내 15년째 수발드는 남편 이상기 목사

 

 

▲     © 크리스찬투데이

허허. 그런 질문을 받으면 저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밥해주는 와이프 있으면 무조건 감사하세요. 같이 앉아 밥먹어줄 와이프만 있어도 감사해야 해요”

 

정말 내 몸 챙기듯, 어린아이 키우듯 아픈 아내를 위해 수발을 들고 있는 그것도 15년째 한결같이 해오고 있는 이상기 목사에게 던진 “얼마나 힘드냐?”는 질문에 그는 아주 심플하게 그렇게 답했다. 특히 젊은 부부들에게는 더욱 강조해 주곤 한단다.

 

이 목사 자신도 불치의 병으로 간주되던 재생불량성 빈혈이 있어서 사투를 벌여 살아난 적이 있어 암투병하는 아내를 더욱 보듬어주고 힘을 보태어 주는 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말미에 이명숙 사모는 남편에게 이제껏“사랑해요”라는 말을 제대로 해보질 못했다고 쑥쑤러워 하자 기자는 얼른 행복 포즈를 취하게 했다. “사랑해요...”라는말과 눈빛이 60대 초 부부를 무척이나 예쁘게서로를 보듬어 주고 있었다.

 

이 상기 목사는 현재 로스엔젤레스에 소재한 평강교회 담임으로 33년째 사역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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