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미래 이민교회의 관심
송금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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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5/05 [08:1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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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아간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솔직히 표현하자면 문명의 이기를 적절히 활용하고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정보와 과학기술을 좇아가는 것 내지는 친하게 지내는 것이 아닐까.

 

본지 창간 20주년을 맞아 <한인 이민교회의 미래 풍향계> 기사를 준비하면서 급속도로 가속화되는 사회변화와 첨단 과학문명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20년 후의 청사진을 그려본다는 것이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3차원적인 공간 속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본향을 꿈꾸는 크리스천들에게는 어찌 보면 우리 앞에 어떠한 미래가 도래한들 능히 감당해야 할 ‘시대’라는 비장함마저 들게 했다.

 

교계 각 분야 전문가들의 대답은 한마디로 ‘암울’이었다. 반이민정책과 유학생 수의 급감, 이에 맞물려 이민교회의 청년 유입 감소와 저출산으로 인한 상대적인 교회의 고령화, 선교인력 부족, 각종 사고와 전쟁과 테러 등으로 인한 장애인 수의 증가, 첨단과학과 낙후의 양극화에서 오는 부의 불균형과 갈등, 각종 질병과 스트레스 등 미래의 환경과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부정적일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21세기의 멀티미디어 시대는 인류가 꿈꾸던 유토피아가 아님을 우리는 직감한다. 또한 인공지능 AI의 실현은 방대한 면에서 인류에게 각광을 받지만 반면에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이 세상의 시대적 흐름을 좇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시대를 주도하면서 변화시킬 것인가? 이 같은 물음은 특히 시대의 전환기에는 첨예하게 교회에 제기되어 왔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상황을 맞을 때마다 적어도 세 가지 반응을 보였다. ‘적응’, ‘거부’, ‘변혁’. 이러한 자세는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겠지만, 특정 시대를 결정하는 동력 그 자체는 결국 인간에 대한 어떠한 전이해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다고 보여진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다. 또한 인류에게 “번성하고, 충만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미래를 향한 명령을 주셨다. 그러나 인간의 자기자랑과 자기만족으로 지칠 줄 모르는 노력들은 절대자의 영역까지 침범해 그 자리를 대신하는데 까지 가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일까? 아니면 또 하나의 거대한 바벨탑일까?

 

다원화 시대에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기계가 인류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한다고 해도 현대와 미래를 살아갈 우리들이 옛사람들과 다를게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영적인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며, 무엇을 밝혀야 할 것인가? 한마디로, 시대를 앞당기기 위함도, 빨리 적응하는 것도, 반대로 저지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것은 교회가 관심 가져야 할 본질적인 사항이 아니다. 다만 교회는 다가오는 시대를 살아야 하는 ‘인간’을 문제 삼아야 한다. 교회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인류의 구원’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신이 없이도 완벽한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미래문명에 대해, 교회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소망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뿐임을 단호하게 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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