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특집
문화로 성경읽기- 들에서 목자를 만나다
특정 시간∙공간∙문화 통해 성경 이해
김동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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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1/07 [08:4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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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땅에서 사는 이들은 우리와 다른 시대와 공간, 문화 속에 살았다. 같은 단어를 들어도 각 사람이나 민족, 지역 주민들은 저마다의 배경을 바탕으로 다른 것을 떠올리며, 다른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정 시간과 공간,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림 언어가 있다. 그것은 목자, 목축에 얽힌 그림 언어이다.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하는 목자와 들녘 풍경을 떠올리면 어떤 그림이 떠오르는가? 성경의 땅에 살던 이들은, 도시 속에 살던 이들이나 농경 생활을 하던 이들도 목축 현장을 일상 속에서 보곤 했다. 목축 현장, 목축 생활은 가장 상식적인 그림언어이다. 들로 나가서 목축 현장을 마주하면서, 시편을 다시 느껴보면 좋겠다.

푸른 초장

성경의 땅에서, 특별히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푸른 초장을 가진 광야는 드물다. 예루살렘 북쪽 사마리아 산지나 갈릴리 지방은 물론 예외이다. 그것은 사시사철 푸르른 들판과 산림이 우거져 있다. 그러나 그곳은 목축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소를 방목하는 것을 더 쉽게 볼 수 있다. 유대산지의 벧세메스 지역이나 족장길을 따라 이어지는 사마리아 산지와 바산 산지 등은 푸르른 초원이 있다. 양떼를 치는 곳은 그런 푸르른 초원 지대, 산지가 아니다. 메마르게 보이는 광야가 목축의 무대이다.

겨울 우기가 끝나고 봄이 되면, 누런빛의 들판은 온갖 푸름으로 가득 차오른다. 그러나 이것은 사시사철 보이는 풍경이 아니다. 풍성한 이슬이 맺혀서 흘러가는 곳이나 시내가 흐르는 그 물길 주변 자리에는 푸르른 풀이 덮이곤 한다. 이 또한 모든 광야에서 넓게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게다가 이 푸른 초장은 유럽풍의 전원이 아니고, 앞서 말한 사마리아 산지나 바산, 골란 지역을 비롯한 갈릴리 호수 주변과 요단강 상류지역의 산림지역의 푸르른 산천도 아니다. 거친 광야에 있는 푸르른 풀보다 덤불과 가시나무가 더 많은 거친 들판이 대부분이다.

시인이 노래하는 푸른 초장이 바로 이 들판이다. 봄철이 되어야만 잠시 동안 푸른 풀과 들꽃이 덮이는 들판도 푸른 초장이다. 곡식을 베고 난 뒤의 들녘도 푸른 초장이다. 게다가 푸른 초장은 평평한 들판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가파른 산골짜기 비탈길도 푸른 초장이다. 그곳에는 우리가 보기에 먹임직해 보이지 않는 마른 풀이나 가시덤불이 있어도 그것이 푸른 초장이다. 푸른 초장은 양떼를 돌보는 목자가, 양떼들이 활동할 수 있다고 양떼를 풀어놓는 공간이다. 그곳에는 적절한 먹거리가 있고, 목자의 눈에 위험으로부터 차단된 채 양떼가 노닐 수 있는 공간이다. 이 푸른 초장은 양의 눈에 보이는 푸른 초장이 아니라, 목자의 눈에 푸른 초장이다.

쉴만한 물가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심 안에는 다양한 그림 언어가 가득하다. 쉼, 물, 물가, 인도 같은 단어는 내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쉴만한 물가. 성경의 무대 특히 광야에는 물을 보기 힘들다.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개울을 만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사실 성경의 땅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개울이나 시냇물은 강으로 부른다. 강은, 사시사철 물이 흐르면 강이다. 그 물의 수심이나 폭은 중요하지 않다. 물의 수질도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물 자체가 귀한 곳이기 때문이다. 비가 내려 형성된 웅덩이나 또랑, 마른 시내도 ‘쉴만한 물가’이다.

양은 흐르는 물에서 물을 마시지를 못한다. 잔잔한 물, 고여 있는 물에서야 편안하게 물을 마시곤 한다. 양떼는, 물을 마시기 위하여 물가에 몰려들지도 않는다. 몇 마리씩 교대로 물을 마시곤 한다. 어떤 질서가 양 무리 가운데 존재한다. 목자가 일일이 명령하거나 통제하지 않아도, 차례차례 물을 마시는 양떼는 이상스럽게도 질서가 있다. 본문에서 말하는 쉴만한 물가는 그래서 다른 그림 언어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쉼터로 사용하는 맑은 시냇물가의 그늘 좋은 자리가 쉴만한 물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잔잔한 물이 있는 곳 또는 고여 있는 물이 있는 곳, 그곳이 양무리에게 쉴만한 물가이다.

그런데 이런 장소는 양떼가 꼴을 뜯는 하루 일과 중에 한 번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들을 가면서, 양떼가 꼴을 뜯고 있는 주변을 살펴봐도 어떤 형태의 개울이나 물웅덩이, 또랑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작은 물웅덩이 하나가 있어도, 아니면 목자가 챙겨둔 물가죽부대에서 양떼를 위해 부어주는 물통에 담긴 물조차도 쉴만한 물가가 된다. 또, 이른 아침에 목자가 양떼를 몰아서 들로 나가면, 그곳에는, 이슬을 잔뜩 머금은 들풀이 가득하다, 그 풀에서 물을 섭취하곤 한다. 이것 또한 쉴만한 물가인 것 같다.

인도하심

아침이면 양의 우리에서 목자의 인도를 받아 들판으로 길을 나선다. 그리고 목자가 이끌어준 들판에서 온 종일 물을 뜯는다. 저녁 무렵이 되면, 목자를 양떼를 인도하여 다시금 양의 우리로 인도한다. 그런 이유로 ‘인도’라는단어를마주할때, 내게는 ‘먹임’과 ‘쉼을 줌’이라는 두 단어가 다가온다. 목자가 양떼를 이끌고 가는 길은 평지만이 아니다. 때로는 비탈길을 내리닫기도 하고, 골짜기를 지나기도 한다.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것도 다반사이다. 평지가 아닌 경우, 양들은 양의 길을 따라 이동한다.

목자가 양떼를 몰고 가는 분위기는 아주 자연스럽다. 양떼의 맨 앞에서 목자가 양떼를 몰고 가는 장면은 아주 드물다. 양떼가 이동할 때면, 저마다 정해진 듯 양 무리들이 한무리를 지어 줄을 지어 이동한다. 이 무리마다 그 앞에 양떼의 우두머리들이 목에 방울을 달고 앞서 간다. 그 양떼의 우두머리 앞에는 예외 없이 나귀가 길을 가고 있다. 목자가 없어도 나귀만 앞서가도, 양떼는 목자의 인도함을 받는다. 그러기에 목자가 양떼를 인도하는 분위기는 차분하고 고요하게만 다가온다. 그야말로 전원 풍경이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그 말씀은 허공에서 일방적으로 외쳐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한복판에서 일상의 언어, 현장의 언어로 나눠진 것이다. 성경은 아주 일상적인 삶을 사는 이들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의 눈과 귀, 온 감각을 열어 성경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 필자 김동문 선교사는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사역했으며 <오감으로 성경읽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미주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선교전략과 성경의 땅에 대해 폭넓게 조명하는 세미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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