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교회의 현존을 위협하는 사이비 관용
이성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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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1/07 [08:34]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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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춘 선교사(독일, PCK 통합, 바울선교회)
인구의 이동과 도시화의 현상은 유럽과 선진화된 많은 나라에서 다문화 사회를 이루어가고 있다. 한 나라에 국민의 외국인이 5%가 되면, 그 사회는 이미 다문화 사회가 된 것이다. 다문화 사회가 되면 문화갈등이나 종교간의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고 한다. 유럽은 오랫동안 기독교 국가, 기독교 왕국을 이루어 왔다. 그런데 이제는 모슬렘의 사람들이 이주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독일에서는 인구의 4분의 1일 외국인의 뿌리를 둔 사람들이며, 모슬렘은 7%에 이르고 있다. 
 
우리 한국도 2020년이면 외국인 3백만이 되어 5%의 다문화사회가 된다고 한다. 독일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왔지만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할 때에 전철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을 보면 굉장히 낯설게 여겨지면서 쳐다보게 된다. 독일에서는 포용을 외치면서도 한국에서 배제의 모습을 갖는 것 같아 당황스러워 혼란해지기도 한다.
 
이제는 외국으로 선교사로 나가는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다문화 사회 속에서 적응하여 살아가려면 타문화를 이해해야하고, 그들을 포용하며 같은 시민으로 살아가야한다. 타문화 이해와 관용과 포용은 이제 현대인의 중요한 살아가는 방식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와 내 집안이 구분되지 않는 세상이 되어 글로벌 소통의 기술이라는 문화지능인 CQ를 측정하고 높여야 성공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서구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모든 일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을 허용해야 하고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비판도 용납해야 하는 관용과 이해가 요구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더 나아가 타종교에 대한 경계와 비판적인 태도를 금기시해야 하는 사회에서, 드러내 놓고 그들이 두렵다는 속내를 말할 수 없어서 숨죽이며 살아가기도 한다. 테러가 발생할 때에도 극단주의 테러분자의 소행으로 이곳 유럽에 거주하는 다수의 모슬렘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애써 태연하게 여겨야한다. 혹 테러분자와 이곳에서의 모슬렘과의 연관성을 이야기 하면 금단의 열매를 건드리는 것 같은 맹렬한 비판을 당하기도 한다.  
 
기독교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지금까지 누렸던 특권적인 권리들을 타종교와도 나누어 가져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환경속에서 복음선교가 거부되어 가고 있고, 교회는 갈수록 축소되어가며, 심지어 기독교인은 사회의 물결에 휩쓸려 자기의 모습을 상실해가고 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고유의 믿음을 지키며 믿음의 삶을 보여주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제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만이 아니라 복음을 구체적으로 살아내 주어야 한다. 지도자들은 타종교와의 관계에 있어서 그들과 대화를 열어가고, 사회공동체 안에서 평화롭게 살아 가야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감추거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듯이 살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지도자들은 자신만이 아니라 수많은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막중한 사명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개신교와 가톨릭을 대표하는 두 지도자인 베드포어드 스트로흠과 추기경 라인하르드 마르크스는 2016년 10월에 예루살렘의 성전 언덕과 통곡의 벽을 방문했을 때 총회장 신분을 상징하는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하지 않았다. 이 총회장 직무를 상징하는 십자가의 미착용은 그 이후 독일 내에서 빈번히 공개적인 비판을 야기했다. 현지에서 안내하는 모슬렘 지도자의 요청에 의해서 그렇게 했다고 대답했지만, 총회장과 추기경은 자신들의 믿음을 다른 종교인들과의 만남에서 스스로 숨겼다고 비난을 받았다.
 
베드포어드 스트로홈은 모슬렘의 안내로 예루살렘의 성전을 방문하고 통곡의 벽을 방문한 것을 실수로 여겼다. 그는 돌이켜보면 그 때에 그런 형식으로 방문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추기경 마르크스도 이미 11월 11일에 바이에른 라디아방송을 통해 “그곳에 가는 것 자체를 포기했어야 했다”고 동일한 언급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뒤늦은 후회가 되었다. 총회와 총회장의 행위는 경건한 독일 신앙인들에게 상처와 회의를 남겨 버렸기 때문이다. 이 일은 독일에서 교회와 문화재 건물의 탁월한 복원건축자의 한 사람인 불프 벤네르트(바이마르의 호프가르텐) 교수를 교회로부터 탈퇴하도록 이끌었다. 이 교수는 자신이 1990년 세운 회사를 통해서 독일의 상징적인 건물들인 베를린의 브라덴북어거 토어, 아이젠낙흐의 바르트부억, 뇨이쉬바인쉬타인성과 수백 개에 이르는 교회건물들을 보수하였다.
 
이런 유능하며 경건한 신앙인인 벤네르트 교수는 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별다른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지난 2천년 동안의 전체 교회의 유일한 상징인 십자가를 부인하는 행동을 보였다고  크게 실망한 것이다. 그 외에도 2016년 11월의 막데부르그의 독일교회협의회의 총회에서 우파적인 성향의 기독교기관에 대하여 곧 독일의 이슬람화에 대한 경계를 외치는 기관에 대하여 정기적인 조사를 결의하여 신앙과 사상을 검증하게 하는 것이 그의 마음을 교회로 부터 돌이키게 하였다. 교회의 세금이 교인들의 정치적인 성향을 조사하는 일에 사용되는 것은 그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자신이 구공산권 시절에 경험했던 혐오스러운 비밀 조사를 연상시키는 일이었다.
 
독일교회 지도자들의 개인적인 행위들과 총회의 결정들이 얻는 것보다 잃는 것들을 더 많이 생산해 내고 있다.
 
저널리스트이며 경건한 신앙인인 패터 한네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해오고 있는 독일교회의 상황들을 보면서 당시 종교개혁자들의 용기있는 고백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져야한다고 촉구하였다. 한네는 사이비 관용(Pseudotoleranz)이 교회의 현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기독교인의 축제의 날과 전통들이 살아나도록 보존해 갈 때에 미래가 열린다고 강조하였다. 기독교들이 자신의 것들을 보존하고 지켜가야 할 것이다.
 
다문화사회, 다종교사회에서의 열린 시민정신을 견지해야하지만 자신의 기독교인의 신분, 믿음도 숨기지 않으면서 드러내 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할 것이다. 무슬림이 독일에 속한다는 주장들도 있지만 사실은 독일에 거주하는 무슬림이 독일에 속하는 것이라고 정리하면서 기독교인들이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야한다. 

이제는 기독교인이라는 자아의식을 갖고 자신의 기독교인의 얼굴을 지켜가는 것이 새로운 선교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 다문화 · 다종교사회에서의 선교는 결국 기독교인들이 자아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얼굴을 지키면서 사이비 관용에 밀리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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